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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인터넷뉴스 | 입력 2020-10-20 오후 12:06:51 | 수정 2020-10-20 오후 12:06:51 | 관련기사 건
이상근 전 통영상공회의소 회장이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제44회 방송대 문학상에서 에세이 부문에서 ‘가족’이라는 작품을 내 당선됐다.
이상근 씨는 현재 한국방송대 일본어학과 3학년에 재학하고 있다.
작품 바로 읽기☞https://weekly.knou.ac.kr/articles/view.do?artcUn=1480
『가족 』
나는 달려도 달려도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은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달리고 있다, 검은 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오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차창으로 마스크를 쓴 나의 얼굴이 그로테스크하게 비추어진다. 나는 서울에서 내려오고 있는 아들을 데리려 읍내 버스 터미널로 가고 있다. 서울발 시외버스는 오후 8시경에 터미널에 도착한다고 했다.
명절에도 바쁘다면서 오지 않던 아들이 고향에 내려와서 당분간 있어야겠다고 연락이 왔다. 아들이 서울에서 생활한 지가 8년이 가까이 되어간다. 아들은 프리랜서 작가이며 축구 평론가다. 그 분야에서는 꽤 이름이 나 있지만, 수입은 변변찮아 보인다. 집에서 생활비를 보태 줄 정도는 아니지만, 보장이 되지 않는 수입이었다. 나는 아들에게 “축구선수를 해도 먹고 살기 힘들 건데, 축구작가나 방송해설 수입으로 생활이 보장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차라리 고향에 내려와서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도 회유도 해봤지만, 그럴 때마다 아들은 듣기 싫어하는 반응을 보이곤 했다. 아무리 좋은 충고도 한두 번이지, 이러다가는 부자지간에 마음의 간격만 더 커질 것 같았다.
읍내 거리에는 차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불빛이 꺼져버린 상가나 아파트의 건물이 괴물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갑자기 세상이 닫혀 버릴 수가 있을까. 도대체 그놈의 정체가 무엇일까. 그놈들은 지금 무서운 침묵의 무법자로, 어느 날 갑자기 좀비 모습을 하고, 우리 곳곳을 침투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연일 터져 나오는 그 검은 좀비들은 지금 우리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아들은 나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 무엇이 아들에게서 서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게 할까. 서울이라는 곳이 아들에게 도피처인가, 아니면 희망의 땅인가. 어릴 때부터 축구가 좋아서 축구에 대한 지식을 쌓았던 아들은 중학교 1학년 때 브라질 축구에 관한 책을 내어 방송과 언론에 크게 났었다.
시간이 되니 어둠을 헤치고 버스 한 대가 터미널 안으로 들어간다. 이제 오는가 보다. 나는 차 문을 열고 터미널 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승객이라곤 몇 명 되지 않아 보인다. 거의 텅 비다시피한 버스 안에서 검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아들이 내려온다. 가방을 멘 검은 외투 차림의 아들은 어느 전선에서 전투를 치르고 가까스로 귀향하는 전사 같은 모습을 하고 나에게 다가온다. 나는 아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들은 나를 알아보고는 그냥 표정 없이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를 한다. “왔나?” 나 역시 별말 없이 아들의 인사를 받고는 차 문을 열어 주었다.
아들은 차 안으로 들어와서 옆 좌석에 앉는다. “괜찮나?” 나의 말에, 아들은 “예” 하면서 연신 두 눈은 차의 불빛을 응시하고 있다. 나 역시 묵묵히 차를 몰고 다시 긴 터널 같은 어둠을 헤치고 있었다.
지금 코로나와의 전쟁은 정말 무섭지만,
아들과 화해한 이후로는 어떤 어려움이라도 이겨 낼 것 같은
희망과 자신감이 생겼다. 오직 가족애 만이 더없이 강하고
안전한 백신이 아니겠는가.
나의 답답한 가슴이 일시에 시원하게 쓸려 내려가듯이 통쾌했다.
그리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감이 솟았다.
며칠 전 아내는 아들에게서 당분간 서울을 떠나서 집으로 내려오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나 역시 아들이 처한 현재의 상황이 궁금했었다. 최근에 와서 아내는 나 모르게 아들에게 생활비 일부를 지원해주는 것 같은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진작에 내 말을 들었어야지.” 발끈하는 내 말에, 아내는 코로나 때문에 수입이 끊겼다는데 어떡하느냐면서 모른 척하고 있으라고 사정을 했다. 아내는 아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기 싫은 모양이었다. 한편으로 나는 속으로 잘 됐다 싶었다.
아들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또 한 번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그동안 축구에 관한 책을 몇 권 더 출간했고, 그 공로로 국가에서 주는 21세기 우수인재상을 수상해서 대통령 장학금까지 받았고, 대학도 수시특별전형으로 합격하는 등 한동안 우리 지역에서 소문이 크게 났었다.
어둠 속을 허우적거리면서 아들을 태운 차는 가고 있었다. 사방은 칠흑같은 어둠, 초저녁인데도 불빛 하나 보이지않는 주위, 공습경보를 받고 전부 불을 꺼버린 전시상태와 같았다, 터미널에서 집에까지 10여 분의 시간이 몇 시간이나 지난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 침묵을 벗어나려고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는 온통 재난 특보 수준의 뉴스다. 갈수록 불어나는 확진자들과 사망자들, 발병의 원인과 결과를 놓고 벌이는 정치권의 공방, 지역 봉쇄령, 억측이 구구한 유언비어들, 간장을 끊을 것 같은 라디오 안에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의 트라우마. 나는 라디오를 꺼버렸다. 아들이 순간 움찔하는 기색이다. 집에 올 때까지 우리는 한마디 대화도 없었다.
대문 앞에서 아내는 쭈쭈를 안고 기다리고 있었다. 쭈쭈, 15년을 우리와 함께 살아온 가족같은 반려견이다. 나이를 먹어 폐수종과 치매(인지장애)를 앓고 있다. 정말 아내의 극진한 간호 덕분에 아직까지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우리 아들! 잘 왔네.” 아내가 환하게 웃고 있다. 마스크를 쓴 아내의 입이 기쁨으로 흔들거린다. 아들은 아내에게 “왔어요.” 무뚝뚝하게 인사를 한다. 쭈쭈가 아들을 알아보고 징징거리며 운다. 병들기 전에는 아들이 오면 너무 좋아해서 달려들어 아들의 발을 비비고 난리법석을 떨던 쭈쭈였다.
이제는 병세가 악화돼 아들을 간신히 알아보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아들은 쭈쭈에게 다가가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는 집으로 휑하니 들어가 버린다.
아들 역시 쭈쭈를 너무 좋아했었다. 매일같이 아내와 통화하면 쭈쭈의 안부부터 먼저 물을 정도였다. 축구에 관한 아들의 전문지식은 자타가 공인할 수준이었다. 그가 방송하는 유튜브 축구방송이나 라디오 방송을 들어보면 그의 해박하고 논리정연한 해설은 격이 있어 보이면서 재미도 있었다.
아들은 간혹가다 아르바이트로 모 인터넷 방송이나 다른 채널에 비제이(VJ)로 출연하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아내가 그런 사실을 알고 시청을 하면서 별풍선을 싸주곤 했는데, 아들은 그것을 알고 나서부터는 출연을 하지 않았다. 아내보고는 자기 방송을 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황당하다면서 불만을 터뜨렸다. 아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 자체가 매우 부끄러웠던 모양이었다.
아들은 욕실에서 샤워하고 나오면서 여전히 썰렁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 나오지 않는다. 설마 나오겠지, 대화를 기대한 나는 그동안 참았던 화가 끓기 시작했다.
“저놈이 무엇이 불만이지, 지금까지 우리가 최선을 다했는데. 자기를 위해서 우리가 얼마나 해주었는데…….” 나의 입에서는 쉴새 없이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내는 그런 나의 눈치를 살피랴 쭈주를 돌보랴 아들의 저녁 식사를 챙기랴 정신이 없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방송에는 코로나 19가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다고 했다. 읍내 한 식당 주인이 생활고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어느 면 지역의 모 식당은 음식 잘하기로 소문이 나 있어 평소에 손님들로 북적댔는데, 그 식당의 주인이 코로나 19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 종교단체의 교인이라는 소문이 난 뒤로는 손님의 발길이 끊어져 식당을 폐업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나는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며 아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아들을 불렀다. 억지로 끌려 나오듯이 하는 아들은 쭈쭈를 안고 있는 아내에게 대뜸 달려들 듯이 화를 낸다.
“지금 세상에 난리가 났는데, 쭈쭈도 살 만큼 살았고 우리도 최선을 다했잖아요. 억지로 생명을 연장시킬 필요가 있어요? 이제 정리하세요.”
평소에 아들답지 않은 뚱딴지같은 소리다. 아내는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정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데, 그래, 억지로 죽이란 말이냐. 우리 편하려고 이런 애를 내버리란 말이냐. 나는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래도 아직까지 너를 알아보고 우리를 알아보는데 정리하라고? 병들어 힘들어하는 쭈쭈가 불쌍하지도 않나, 이놈아! 15년을 가족처럼 같이 살았는데 네가 마음대로 정리하라 말라 하냐. 네 입에서 어찌 그런 말이 나오나, 이게 너의 본심이냐, 어디서 코로나 핑계를 대, 못난 놈!”
평소에 아들에게 너무나 헌신적이었던 아내는 아들의 돌변에 충격을 받았는지, 실성한 사람같이 거의 울부짖을 정도였다. 나 역시 그동안 참았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놈아. 하고 싶은 일을 하더라도 먹고사는 게 안정이 돼야 마음 놓고 할 수 있다. 도대체 너는 밥벌이나 제대로 하고 있나 물어보자. 서울서 제대로 성공하지 못할 것 같으면 지방에 내려와서 먹고 살 일을 걱정해야지, 네 나이에 지금 결혼해서 아이가 있어도 있을 나인데, 네 처지가 도대체 뭐냐, 네가 지금 코로나 핑계로 도망 내려온 것 아니고 뭐냐. 정신 상태부터 고쳐라!”
나는 여지없이 아들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면서 그동안 못다 한 불만을 실컷 쏟아냈다. 아들은 우리를 무섭게 쳐다보다가 벌떡 일어나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아들의 문 닫는 소리가 지축을 흔들 정도이다.
“저 새끼가!” 내 입에서 막말이 터져 나오는 동시에 손에는 뭔가를 잡고 던지려는 찰라,“보이소!” 아내의 외침에 나의 손과 몸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잠결에 순간, 바깥 인기척에 눈을 떴다. 거실이 환하다. 새벽녘인 것 같다. 아내의 부산한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쭈쭈가 낑낑대는 소리가 들린다.
아들은 근래에 와서 자기의 현실과 나의 요구에 대해서 고민하고 갈등이 많았던 것 같았다. 그동안 아들은 번번이 구직 노력을 해보았지만, 아들의 화려한 이력을 보고는 대부분 부담스러워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들은 구직을 포기하고 프리랜서의 길을 택했던 것인데 그것조차 이번 비상사태로 일감마저 끊어져 버린 것이다.
“안락사?”
나의 의식에서 어찌 안락사란 말이 튀어나왔을까. 이것들이 평소에 나의 마음속에 잠재돼 있었던 것일까. 주위에서도 우리의 처지를 알고는 스스럼없이 반려견 요양소나 안락사를 얘기했다. 혹시나 그런 나쁜 마음을 먹을까 우리를 걱정하던 아들이었다. 쭈쭈 때문에 고생하는 엄마를 매일 전화로 확인하듯이 위로하던 아들이었는데 간밤에 아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나 역시 순간, 안락사를 떠올린 것이 아내에게 죄스럽고 부끄러웠다. 아내는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의 카톡방에서 수시로 반려견 정보를 수집하고 교류한다. 그러면서 그들에 비하면 우리 쭈쭈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20년을 살다가 보낸 사람도 있고, 쭈쭈보다 더 심각한 처지에 고통받고 있으면서 주인에게 헌신과 사랑받는 반려견도 있다면서, 우리가 쭈쭈에게 하는 일은 그 사람들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얘기하는 아내의 심정을 이해했다. 생활비 중에서 쭈쭈의 병원비나 약값으로 들어가는 것이 적지않음을 아는 아내는 내심으로 미안해하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당당하다고 해명했다.
나는 안방 문을 열었다. 순간 내 눈앞에는 상상하지 못한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거실에서 아들은 쭈쭈를 안고 있으면서 산소호흡기를 쭈쭈의 코에 대고 있었다. 아들은 나를 보더니 “쭈쭈가 폐수종이 왔는가 심하게 기침을 해서요.” 하면서 무안한 듯이 씩! 웃는다. 쭈쭈를 안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보기가 좋았다. 아들에게 안긴 쭈쭈의 모습도 너무 편안해 보였다. 아내 역시 간밤의 소란과 충격은 언제였냐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는 밝게 웃으면서 부엌과 거실로 부지런히 들락거렸다.
“아버지, 며칠 동안 여기 있다가 코로나 사태가 좀 안정되면 서울로 가서 모두 정리하고 내려올게요, 형님에게도 전화해서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정리할 시간을 달라고요. 아버지, 엄마도 쭈쭈 때문에 건강이 안 좋아요. 걱정입니다. 제가 옆에서 도와 드릴게요.”
모처럼 저녁 식탁에 마주 앉아서 아들은 그동안 참았던 대화를 쏟아내었다. 나는 “좋지! 그래라.” 기분 좋게 허락했다.
지금 코로나와의 전쟁은 정말 무섭지만, 아들과 화해한 이후로는 어떤 어려움이라도 이겨 낼 것 같은 희망과 자신감이 생겼다. 오직 가족애 만이 더없이 강하고 안전한 백신이 아니겠는가. 나의 답답한 가슴이 일시에 시원하게 쓸려 내려가듯이 통쾌했다. 그리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감이 솟았다.
이 환란을 피하지 못할 것 같으면 차라리 부딪치면서 이겨내야 한다. 코로나 균은 앞으로도 죽거나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 균들은 긴 시간을 거쳐 우리의 약점 속에서 숨어 있다가, 부지불식간에 좀비처럼 들고일어나 우리를 죽이거나 괴롭힐 것이다. 오직 이 세상에 자기 사랑과 겸손, 화해. 그리고 삶에 대한 끊임없는 희망만이 무엇보다도 가장 강하고 안전한 면역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바위처럼 든든해 보이는 아들을 힘껏 껴안아 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상근 일본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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