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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 기자 | 입력 2014-12-01 오후 04:32:03 | 수정 2014-12-01 오후 04:43:23 | 관련기사 0건
2012년 가을에 부산에서 산청 신안면 외고리 구담마을으로 귀촌해 농사를 지으며, 전업작가로 활동하는 소설가 이인규 씨의 세 번째 소설집이자 첫 번째 장편소설 "아름다운 사람"을 소개한다.
이 소설은 실제 교도소에서 일어났던 내용(일부)을 토대로 주인공 ‘나’가 그 당시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돼 작가적 상상을 보태어 그 안에 또 하나의 주인공이 있는 1인칭 액자소설 형태이자, 2007년 제 9회 공무원 문예대전에서 소설 부문 장려상을 받았던 ‘비상’이라는 단편을 장편으로 개작한 작품이다.
작품을 통해 젊은 날, 불의에 저항하는 힘과 약자에 대한 배려 그리고 공공선에 대한 경계가어디까지인가를 말하고, 현 시대에 어쩔 수 없이 무너지고 있는 남녀(부부)간의 사랑을 순수하게 지키고 있는 한 아름다운 사람의 기구한 운명과 사랑이야기를 담았다.
▲ 이인규 작가 |
이인규 작가 프로필
1962년 부산출생.
2007년 제 9회 공무원문예대전 장려상 수상,
2008년 경남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내안의 아이’ 당선
2012년 가을에 지리멸렬한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지리산, 산청으로 귀촌.
작품집:「내안의 아이(2009. 청어)」「지리산 가는 길(2012. 북두칠성)」
창작음반집 : 보헤미안 영혼을 위한 여덟곡의 랩소디(2009) (오선지에 감춰진 슬픔 등 8곡)
2012년 경남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2014년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창작지원금 수혜
현)부산작가회의 및 소설가협회 회원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회원
이메일 : leeingu62@naver.com
블로그 : http://blog.naver.com/leeingu62
장편소설 ‘아름다운 사람’ 에 대한 「작가의 말」
이 소설은 오래 전에 발표한 내 첫 번째 소설집 ‘내안의 아이’에 수록된 단편소설 ‘비상(飛上)’을 개작한 것이다. 여러모로 암울했던 직장생활 때 쓴 이 작품이 어떤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만큼 애착이 가던 작품이어서 이다음에 시간이 되면 꼭 장편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기회가 온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직장을 전전했지만 젊은 시절에 처음 직장이랍시고 들어간 곳이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교도소였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만났던 어떤 재소자의 기구한 운명과 사랑에 관한 일화가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는데, 사실 살아오면서 그런 운명적인 사랑이 과연 존재할까, 하는 게 평생의 의문이었고 풀어야 할 숙제였다.
이태 전에 도시의 안정된 직장을 접고 산골로 들어온 이후 아직까지 지인들은 내게 시골의 삶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다. 그 중 그들과 나를 진지하게 만드는 질문 하나가 있다.
“두렵지 않던가.”
“….”
그에 대한 답은… 물론 두려웠고 아직도 그렇다, 이다. 도시의 풍요와 편의를 뒤로한 채 생면부지의 땅에 살려고 오는데 어디 두려움뿐이겠는가. 때론 낯선 환경과 까닭모를 외로움에 괜스레 우울해지기도 했고 소설 속의 ‘사각형의 완벽한 요새’에서 사는 것 같아 탈출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초월하기 위해 나는 시골집 다락방에서, 어떤 땐 읍내의 P.C 방에서 이 소설을 썼다. 글을 쓰는 내내 나는 이십 대 젊은 청춘으로 머물렀다. 깊게 몰입을 하다 보니 당시의 그 장소에 내가 서 있는 것 같았고 그때 그 사람과 실제 만나고 있었다. 나는 그 공간에서 격하게 울고 또 웃었다.
그때 그 ‘아름다운 사람’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때로 수평선 너머에 있는 신기루를 쫓기 위해 고통의 바다를 각자의 배로 가는 것이다.’
나는 이제 그 바다를 혼자 건넜다.
이 소설을 출간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지역작가에게 기회를 준 (재)경남문화예술진흥원,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여러모로 질책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도서출판 ㈜해성의 김성배 대표님, 정확하면서 세심한 교정과 교열을 해준 조수진님, 언제나 내 블로그를 확인하며 책을 기다리는 친구 정욱 그리고 민들레 대안학교(산청, 고1) 출판부에 있는 아들 솔파, 도산초등학교(산청, 초4)에 다니는 나의 예쁜 딸, 미래에게도 그렇다.
14. 11.
산청, 지리산(智異山) 자락에서 이 인 규
작품의 내용
1. 모든 세상살이에 지친, 시인(詩人)을 꿈꾸는 주인공 나는 어느 날 불현 듯 도시를 등지고 홀로 시골로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아무 일도 않고 오로지 시만 쓰는 나에게 한날, 외삼촌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아들이 사업을 하다 실수로 아주 오래전에 내가 근무했던 K교도소에 들어가 있으니 면회를 가달라는 것입니다. 망설임 끝에 결국 그곳에 간 나는 외사촌형의 면회를 마치고 옛 동기생이자 동료인 박 형을 만나 오랜만에 술자리를 가집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박 형의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건 나로 하여금 당시에 그 직장을 그만 두게 한 어떤 재소자, 수형번호가 2154번이었던 강신재가 출감을 하여 나를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젊은 시절 날 폭풍 속으로 밀어 넣었던 그 장소와 그를 만나러 과거로 떠나게 됩니다.
2. 1989년 한 해는 표면적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지는 듯 했으나 정치, 사회적으로 각종 사건과 시위가 많이 일어난 해였습니다. 연초에 군 부재자 투표 선거부정을 고발한 육군 이동균 대위와 김종대 중위의 시국선언이 있었고, 5월에는 부산 동의대 사건, 그리고 6월 초에는 전교조 전북지부가 최초로 생겼으며 6월 말에는 임수경의 평양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가 있었습니다.
그보다 일 년 전, 호송 중이던 교도관을 따돌리고 서울의 한 주택에서 가족을 인질로 잡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며 난동을 부렸던 지강헌 사건으로 법무부에서는 부족한 교도관 인력을 보강하고 근무형태를 2교대에서 3교대로 바꾸어 신규직원을 모집하였는데 그게 내가 시험을 치러 합격한 기수부터였습니다.
어쨌든 그날 나는 이 완벽한 사각형의 요새에 출근하여 9동에서 근무를 서고 있는데 비상벨이 울렸습니다. 목공장의 소지(소 내에서 청소 혹은 서무를 맡은 재소자)가 교도관을 인질로 잡아 이감을 가지 않으려 난동을 벌인 것입니다. 그 재소자가 후에 내가 7동의 담당을 맡을 때 우리 동소지로 온 강신재입니다. 당시 교도관 생활은 힘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야간에 사동에 때는 연탄 두어 장으로는 도저히 추위를 참을 수 없었고, 식당운영은 자격 있는 조리사가 하는 게 아니라 재소가가 맡아 매일 허연 국 한 그릇과 군대보다 못한 부식 때문에 고통스러웠습니다. 게다가 근무형태도 완전한 3교대가 아니라 2교대와 절충한 근무라 사흘에 한번 꼴은 야간을 해야 했기에 우리 신규직원들의 불만은 쌓여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을부에서 이런 사항들을 언론에 알리고 소 내에서 집회를 하려 비밀리에 계획을 하다, 그만 내부자의 밀고로 법무부 교정국 수사요원들에게 소환을 당하고 맙니다. 결국 주동자이던 영규는 옷을 바꿔 입었고 몇몇은 사표를 내고 이곳을 떠나버립니다.
나는 그때 이곳에 완전히 실망을 하고 맙니다만, 동기생들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버티다 마침내 7동 상의 고정담당으로 가게 됩니다. 그때 직원을 인질로 잡고 난동을 부리던 2154번 강신재와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를 자주 접할수록 그때 난동을 부리던 그런 이미지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일반 재소자와는 다른 면모를 보게 됩니다. 그는 소지로서 일도 잘할뿐더러 악한 구석이 전혀 없는 그냥 일반 시민 같았습니다. 그러던 한날 우리 사동에 조그만 사건이 일어납니다. 휴일 아침배식 때 6동 반장이 강신재가 배식조에게 넘겨받아 오던 부식을 힘으로 빼앗아 가버리자 그는 단숨에 반장을 제압해버리고 맙니다. 교도소 내에서 반장이란 야전군의 중대장 같은 직위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폭력 앞에 비굴하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날, 내가 일근 근무 때 어떤 여자가 면회를 왔지만 주민등록증을 가져오지 않아 쓸쓸하게 돌아간 일이 있었는데 그녀가 강신재의 약혼녀라는 사실을 후에 박형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나는 즉시 소 내에 있는 분류심사과의 동기생을 찾아가 그의 기록을 넘겨받았습니다. 그는 나이는 나와 동갑이었고 교도소와 멀지 않은 곳에 홀어머니와 약혼녀가 살고 있으며 약혼녀의 이복오빠를 죽인 살인죄로 20년형을 받았는데 정당방위임에도 항소를 하지 않았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 직원을 인질로 잡고 난동을 부린 이유는 이감 때문이었습니다.
혹시라도 자신을 면회 올 모친과 다리가 불편한 약혼녀 때문에 그는 이곳에 남아야했습니다.
그리하여 며칠 후 나는 야간근무 때에 그를 관구실로 불러내어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처음엔 약간 어색해 하던 그는 막상 자신의 말을 내가 잘 들어주자, 그만 기구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풀어냅니다.
그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지방에서 서울에 있는 M대학에 입학한 때가 1981년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이미 대학가요제를 목표로 하여 음악을 하던 저는 선택의 여지없이 그간 가요제 가수를 많이 배출했던 이 학교를 택하였습니다. 그러나 광주사태가 끝난 그 이듬해 대학생활인 만큼 최루탄과 휴강이 많았던 때라 마음 놓고 할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겨우겨우 학교생활을 하던 어느 날, 어떤 전문대학 여학생들과 미팅을 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나는 나보다 한 살이나 많은, 고향이 동향인 ‘선주’라는 발랄하면서도 우울한 분위기의 여자를 만납니다. 첫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세련된 화술과 처세로 날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그날 우리는 신촌에서 일차를 하고 이차로 그녀가 사는 자취집 근처의 포장마차로 가서 술을 먹었습니다. 비록 헤어질 때 전화번호를 따거나 약속 같은 것은 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럼에도 선주와 나와의 만남은 그 후로 계속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만날수록 나는 이상한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었는데, 한날 다툼 끝에 그녀의 고백을 들은 나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녀는 예상대로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가르치는 교수 그리고 육체를 대가로 후원을 해주는 중년의 남자를 만나면서 자신의 꿈인 프랑스 유학을 가고 싶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완전히 빠진 나는 그녀의 제안대로 그녀의 고향인 남해바닷가로 마지막 여행을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놀랍게도 자신의 동생인, 민주를 내게 부탁하며 며칠 후 프랑스로 떠납니다.
그 후 모든 것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해서 복무를 하던 중 어느 날 나는 어떤 모르는 여자로부터 면회가 왔는데 그 여자는 바로 선주의 동생, 민주였습니다. 그녀로부터 프랑스에 있는 선주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민주는 언니의 유해를 남해바다에 뿌릴 것을 부탁합니다. 그리하여 휴가 때 둘은 남해바다로 가서 유해를 뿌리고 그곳에서 선주의 부탁, 즉 그녀의 동생인 민주의 연인이 되는 기이한 연을 맺습니다.
민주는 언니와는 다르게 비록 한쪽 다리를 절지만 참하고 착한 여자였습니다. 선주는 프랑스에서 그녀를 위해 용돈과 학비를 대주면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 모양입니다. 그때 민주는 자신의 가족이야기를 했습니다.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양아버지 밑에 있었는데 인간 같지 않은 이복오빠가 선주를 성폭행을 해서 어머니는 충격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고 언니가 그리 살 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해 제대말년에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몸져누운 어머니를 보고 나는 복학을 포기하고 민주가 다니는 회사 근처에 있는 공장에 들어갔습니다. 민주는 어렵게 어머니를 설득하여 함께 한 집에서 살게 됩니다. 나는 민주의 양아버지와 병원에 있는 어머니를 만나 결혼을 승낙 받았습니다. 그렇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중 한날, 선주를 성폭행했던 민주의 이복오빠가 마찬가지로 민주를 괴롭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민주의 월급날에 맞춰 유흥비를 갈취했던 것입니다.
나는 처음부터 그를 죽일 생각은 없었습니다. 단지 그가 원하는 금액을 주고 두 번 다시는 민주 앞에 나타나지 말 것을 이야기 하던 중 상황이 꼬여 우발적으로 그의 머리를 친 게 그만 그를 죽이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나 때문에 충격을 받아 거동을 못하시는 어머니를 한 번 만이라도 만나보는 게 제 소원입니다."
그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나는 모골이 송연했습니다. 그의 기이하고도 슬픈 사랑이야기도 그렇지만 평범한 한 젊은이가 한 순간에 살인을 저질러 이런 곳에서 이십년이나 지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와의 면담이 끝난 며칠 뒤에 나는 박형과 같이 교회에 지원 나갔을 때 다른 조의 주임으로부터 강신재의 이감 소식을 듣게 됩니다. 순간 나는 그와 배치부장에게 그가 이곳에서 얼마나 성실히 수형생활을 하는지, 또 이감을 가선 안 되는 사정을 조목조목 이야기 하며 따졌으나 돌아 온 대답은 이교도관이 그 새끼에게 뭘 받아먹었어, 하는 경멸적인 말뿐이었습니다.
절망한 나는 그날 밤에 무엇인가에 묶여있는 날 발견했습니다. 그건 비상을 꿈꾸는 나비의 애벌레가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고치가 너무 견고하여 도저히 헤쳐 나올 수 없다는 나약한 생각의 실타래였습니다. 나는 그 실타래를 단번에 풀어 나오고 싶었습니다. 그게 안 된다면 한 올, 한 올, 풀어서라도 헤쳐 나와 세상을 날고 싶어졌습니다.
다음 날 나는 그전부터 어금니가 썩어 진통제로 버티고 있던 강신재에게 왜래 진료를 제안했습니다. 영치금이 얼마 없다는 그에게 내가 먼저 지불하고 후에 그녀의 약혼녀에게 받을 테니 전화번호를 받았습니다. 나는 침착하게 그날 있을 일을 그녀에게 전화로 설명하고 보안과장에게 사정을 하여 날을 받았습니다. 이감 하루 전날, 나는 같은 부의 고참부장과 함께 강신재를 호송하여 인근 병원을 찾았습니다. 원무과에서 수속을 하던 부장에게 시간절약 상 먼저 이층에 올라간다며 그를 데리고 진료실 앞에 있는 화장실로 갔습니다.
“2154번! 잘 들어.”
그는 갑작스런 나의 명령 투의 말에 약간 당황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를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 했지? 내가 단 하루 동안 휴가를 줄게. 가서 만나고 와. 단, 내일아침 9시까지는 돌아와야 해. 이 약속은 꼭 지켜줘.“
“담당님. 왜 그런 말씀을?”
“긴 말 할 시간 없어. 여기를 나가 왼쪽으로 쭉 가면 후문이 나올 거야. 그곳에 당신 약혼녀가 갈아입을 옷과 승용차를 준비해 놓았을 거야.“
그리고 나는 서둘러 그의 손을 몸을 옥죄고 있는 수갑과 포승줄을 풀어주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지 머뭇거렸습니다.
“내일 이감 결정이 났어. 여기서 꽤 먼 곳이야. 마지막으로 날 한 대 세게 쳐줘. 어서! 시간이 없어.”
그제야 그는 사태가 파악되는지 단 한 번에 끝내려는 듯 강한 주먹을 날렸습니다. 퍽,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나는 보안과장의 질책하는 소리가 들렸고 사표를 내는 모습이 중복되어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중략”
3. 교도소 앞에서 박 형과 헤어진 후 어머니가 있는 본가에 머물려 매일매일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지던 나는 한날, 박 형이 준 쪽지의 주소를 확인하고 그가 운영하는 가게를 찾아갔습니다. 그동안 나는 그를 잊고 있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할 때 받는 스트레스가 또 하나의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생각될 때, 간간이 구조적인 폭력 앞에 무기력해 질 때, 나는 어김없이 그를 생각했습니다. 그는 재소자이지만 불의에 대해 비굴하지 않고, 자신의 사랑을 지켜가는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마침내 그의 가게 앞에서 나는 창문을 통해 그를 보았습니다. 머리가 하얗게 세어있었지만 순수했던 얼굴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는 도장을 파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 이제 그의 아내가 되었을 그때 그 약혼녀가 와있었습니다. 순간 나는 그를 만나러 한걸음에 달려왔지만 그만 돌아가는 게 맞다 고 생각했습니다. 나로 인해 그때의 기억들이 오히려 불편함으로 남는 게 싫은 것입니다.
나는 발길을 돌려 왔던 길을 되걸었습니다. 그제야 무산시의 밤하늘에 별들이 손전등 같이 나를 비추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나는 혹 나를 기다릴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싶었습니다.
김미화 기자 gsinew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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