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군인, 정병주 특전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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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군인, 정병주 특전사령관

고성인터넷뉴스  | 입력 2012-11-23 오전 09:10:17  | 수정 2012-11-23 오전 09:10:17  | 관련기사 0건

아래글은 페이스북 `강도리 님`의 담벼락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이른바 별을 단 수많은 장군들이 있습니다. 또, 비록 스타 계급장을 달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아는 역사 속 장군들도 많이 있지요.

 

오늘날 별을 단 장군이 강감찬이나 이순신 장군을 이를 때의 그 장군과 그 격이 어떻게 다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위기에 처한 순간에 외적과 맞서 싸우다 기꺼이 산화한 장군에 비하면 좀 격이 확~ 떨어지는 장군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특히 근 현대에 들어와 그런 장군들이 더러 있었던 것 같은데..... 나라와 국민을 지키라고 쥐어준 총칼로 엉뚱한 짓을 한 똥 장군들이 있었지요?

 

이제 참 군인의 길을 걸었던 우리의 훌륭한 장군 한 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하루 세끼 밥 먹고 하늘을 쳐다보다가 땅이 있으니 걷고, 그리고는 잠자고.....제가 걷기를 무척 좋아해요. 울화가 치밀 때는 술병을 들고 구파발 서오릉 주변을 온종일 혼자서 터벅터벅 걷다가 아무데서나 쓰러져 자곤 했어요. 그러다가 서울 북쪽의 검문소 앞을 지날 때는 노태우 씨가 저곳...을 어떻게 통과했을까 하는 생각이 나고..." (1987년 기자 회견에서)

 

20121122184951

 

출생지 : 경북 영주시 이산면

종 교 : 천주교

안동농림고등학교 졸업, 육사 9기, 12.12 군사반란 당시 특전사령관

 

12.12 군사반란을 끝까지 막으려다가 부하 최세창과 박종규에게 총상을 입고 사랑하던 부하 김오랑까지 잃고는 보안사에 연행돼 조사를 받다가 강제 예편을 당한 정병주 장군의 이야기이다.

 

지금의 특전사를 최강의 부대로 만드신 분이시다.

 

그러면서도 군의 정치 개입을 끝까지 거부하신 분이시다.

 

5.16 군사반란 때는 끝까지 출동명령을 거부하다가 기둥에 묶여 있었고 영창 생활을 해야 했다.

 

북괴의 도발을 초전박살내기 위해 체계적이고 강인한 훈련을 통해 지금의 특전사를 존재하게 한 데에는 정병주 장군의 공이 크다.

 

기실 최초의 특전사령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런데 이 분이 아끼시던 박희도 장세동 최세창 전두환 노태우 등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것이다.

 

문재인 후보께서 1공수여단에서 생활하실 당시에 여단장은 전두환이었고, 대대장은 장세동이었는데 그 때 사령관이 정병주 장군이셨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다. 자기가 아끼던 부하들에게 배신당하고 강제 예편을 당하고는... 12.12 군사반란의 부당성을 널리 알리시다가 1989년 초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셨다. 제 발이 저리는 노태우정권에서는 자살로 결론 내렸지만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셨던 정 장군께서 자살하셨을 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 누구보다 삶의 의지가 강하셨던 정 장군께서 자살하셨을 지에 대해서는 계속 의문이 남는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갈 일이 있다면 제 1장군묘역 168호 육군 소장 정병주의 묘를 잘 살펴보길 바란다.

 

평생을 최강의 특전사를 양성하기 위해 살아온 사람이 부하에 의해 하극상과 강제예편을 당하고, 참군인 정신을 실천하다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장군의 묘비는 비문이 없다. 명령을 생명으로 여기는 군인들이 상관에게 총질을 하고도 버젓이 활보하는 세상에서 故人이 무슨 할 말이 있었으랴..... 묘비가 백비인 것은 그러한 부당한 현실에 대한 최소한의 저항이었으리라.....

 

2012년 11월.....강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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