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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인터넷뉴스 | 입력 2011-10-27 | 수정 2011-10-27 오후 2:18:41 | 관련기사 건
우리 사회는 능력이 출중함에도 학벌이 낮다고 상대방을 폄하하기에 열을 올리는 부류가 있다. 능력보다 학벌이란 잣대로 평가하는 이들을 보면, 약 1,000년 전 중국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가 지하에서 송장인 채 울겠다. 그가 혈통이 아닌 과거를 통한 능력에 따른 사회의 기틀을 마련한 게 후퇴했기 때문이다.
▲ 정종암 칼럼니스트
학벌과 학력만으로 한 인격체를 평가하는 것은 정말 못된 사고임은 분명하다. 이 사회는 소위 간판병(看板病)에 걸린 나머지 능력주의를 배척하기도 한다. 또한 피나는 노력으로 일구어 낸 능력자에게 온 정신이 질투에 휩싸인 자들이 보내는 횡포도 심각하다.
고지를 향하여 질주하는 자의 바지가랑이를 끌어내리지 못해 안달하는 이들이 측은할 때도 있다. 주변에서 접하는 학벌만능주의자의 병폐와 능력주의자에게 보내는 질투의 반란을 보고자 한다. 먼저 변변치 못한 학벌을 딛고 피나는 노력으로 좋은 결과물을 낳은 주변의 60대후반을 향해 줄달음치는 문학인 그리고 동년배 정치인인 두 여성의 예이다.
`질투(嫉妬)의 화신(禍神)` 들이 배가 아파 죽더라도 필자가 평론가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즉 판사가 재판을 하듯이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는 그것도 신춘문예로 등단한 문학평론가이면서 시사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음에는 누구도 박탈할 수 없는 노릇일 게다.
그러기에 전자인 그녀의 작품을 찬찬히 비평해보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그러한데는 성공한 그녀에 대한 시기와 질투를 보내고 폄하하는 주변의 고약한 이들을 보았던 이유가 큰 몫을 한다.
작품성이 그 고지에 오를 수 있은 데까지는 각고의 노력을 경주한 면이 부단하게 묻어 났다. 민족해방 무렵에 태어나 여성만의 서러움에 찬 시대적 상황에서 성장할 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능력을 딴 곳에 두고 누가 학벌을 탓한단 말인가. 연마한 실력이 출중한 문학인이면서 일구어 낸 자신의 부(富)까지도 덜 가진 자들에게 베푸는데는 인색한 노욕(老慾)조차 없는 듯한 그녀에게 말이다.
또 후자의 여성은 동년배이자 정치인으로서 자주 만나는 편이다. 서로간 많은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나 덜 배운 자의 삶을 보듬는 평소시 철학을 궤뚫었던지 눈물을 훌적이며 어려웠던 성장과정과 자신의 변변치 못한 학벌을 고백하는 것이었다. 정규학력이 초등학교로 당시의 학제인 전수학교를 다녔기에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다. 필자의 위로에 힘을 얻고는 그 이후로 서울 근교에 있는 별장에서 가족들의 모임이 있으면 이성을 떠나 자주 초대를 한다. 그녀는 언변도 뛰어나고 똑똑하며 책까지 저술하고 다음 총선 승리를 내다보고 있다.
이러하듯이 누가 그녀들에게 낮은 학벌만을 탓하며 돌을 던진다 말인가. 그 시대에 태어난 여성들의 학벌을 탓하고 능력을 난도질하면서 상처를 주는 `솥이 들끓은 듯한 행각을 일삼는 망나니` 들은 자기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조국 근대화에 앞장 선 50~60대 여성들을 울림에 누구든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학벌이란 게 학문을 갈고 닦아 얻게 된 사회적 지위나 신분 또는 출신학교의 사회적 지위와 등급을 일컫는 것 같다. 학벌이나 학위, 경력 등을 중하게 여기는 간판병은 두 여성의 경우와 같은 재능 있는 인재를 쓸 수 없게 만드는 고약한 병폐이다. 교육을 통한 지식이나 기술 따위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부단한 자기만의 노력으로 일구어낸 능력자에게 격려를 보내면 어떨까.
부대끼는 지인들은 학벌도, 지위도, 남녀노소 다양한 편이다. 학벌과 학력 그리고 신분고하에 있어서는 성격상 유유상종과는 좀 멀다. 높은 학벌에 취한 소위 가방끈이 긴 자들도 빈 머리가 많음을 본다. 높고 높은 학벌에 취한 이들도 필자의 학벌을 묻지 않는다. 물은 적도 없다. 으레 높을 것이다고 치부한다. 학벌을 논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며, 능력에 의할 뿐으로 천박한 학벌을 스스로 내세운 적도 없다.
부(富)와는 담을 쌓은 삶이 인격의 잣대를 돈이 많고 적음에 들이댄다면 할 말은 없을 듯 하지만, 대한민국의 웬만한 학벌에 취한 자들이나 지식층과는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도 있다는 점이다. 필자 역시 그러한 자부심의 발로는 양복 입은 신사풍에도 책을 넣어 다닐 가방이 항상 함께 하기에 돈을 버는 재주는 없어도 매사 당당한 편이다. 그러나 필자는 농경사회나 다름없었던 1970년 대 중반 대학진학과는 전무한 교육만으로 일관한 공립 실업계고교 출신이다. 그렇지만 부대끼는 이들과 비등한 능력으로 간주해서인지 스스로 밝히지 않으면 상대방은 모른다.
각고의 노력과 촌음을 아끼면서 한 잔의 술과 골프에 취하지 않고 스스로의 수입에 의한 많은 교육비 투자로 극복한 것도 패배주의에 찬 질투의 화신들이 난도질을 못해서 안달인 경우도 본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을 넘는 수도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누구의 도전이나 거리낌이 없는데도,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작금의 그 고장에 가서는 세상의 변함이 있는지도 망각한 것인지, 실업계였던 필자의 출신학교를 조롱하는 꼴값이었기에 속으로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당시(필자가 고교진학 시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대 수준) 인문계, 실업계 통틀어 유일하게 경쟁률을 뚫고 입학했던 8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다. 당시에 연마한 지식이 토양이 되어 현재가 있다고 자부한다. 세계 속의 한국이 그릇된 정보로 당시의 잣대로 현재도 빈국(貧國)이라고 비웃는 것과 마찬가지인 `얼간이들의 향연` 은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가방끈이 길면 모든 면에 능력이 출중하다고 거짓말하는 정치사기꾼들도 보자. 시골 원님 직책을 수행하는데 박사학위가 필요하고, 또한 정치학 박사가 정치를 잘 할 수 있다고 유권자를 우롱하면서 학벌이 최고의 능력인 것처럼 각색하는 선거판을 보았고 또 본다. 아직도 고위공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른 낙하산이 천리길을 넘어 착지시킬 동작으로 마작패를 던지는 `비겁한 정치사기 미수범` 도 있어 보인다.
이러한 행동들은 고등사기꾼의 범주에는 속하지 못하는 `아마추어 정치사기꾼` 은 아닐까. 분명 이러한 자들은 민초들의 혈세를 축내고, 전시행정에 혈안이 됨은 물론 그릇된 명예와 함께 재산까지 축적하려고 하늘을 치닫는 끝없는 탐욕의 부류가 아닐까. 초등학교나 고졸 학력이라고 모든 이들이 능력이 없는 게 아니며 중앙이든, 지방이든 훌륭한 정치를 할 수 없는 것은 분명 아니다. 정치와 우정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인격함양조차 덜 되고도 박사라고 거들먹거리면서 덜 배운 이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철새정치 아마추어` 도 추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내심으로는 인정하면서도 겉으로는 인정치 못하는 일부 문인들의 시샘이나 질투도 끝이 없다. 유독 노년층이 대부분인 문단계의 현실에서 짧은 시간에 3관왕을 차지한 필자도 이유없이 눈엣가시가 되는 경우는 별론으로 하고라도, 대학강단에서 일반인들을 상대로 문학을 강의하자 배가 아파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학력시비를 걸고, 헐뜯기에 바빠 평행곡선이던 혈압이 상승한 나머지 기대치 수명을 예상할 수 없는 지경에 놓인 선배노인들에게 곤욕을 치루는 어느 선배도 있다.
로마가 세계로 뻗어갈 수 있었던 길이 하루아침에 마차가 다닐 정도로 탄탄대로였던가. 술에 취하고 부동산 투기에 젖을 새도 없이 잠을 설치면서 노력한 능력주의자에게 과거의 잣대로 폄하, 시기, 질투하는 짓거리는 자신의 영혼을 멍들게 하고 저승사자의 부름을 앞당기는 `고약한 언사(言事)` 는 아닐까.
4,000여 전 제우스(Zeus)의 누이이자 아내였던 헤라(Hera)는 죽었다. 질투의 화신은 환생하지 않는다. 그 죽은 헤라가 `만물의 여신` 에서 `질투의 화신` 으로 변했던들, 그의 궤적을 밟지 않는 삶이 건강하지 않을까. 사과는 땅에 떨어져도, 피나는 노력에 의한 `능력이란 과실` 은 떨어지지 않는다. 그 과실을 향해 작대기로 쑤셔본 들 소용이 없다.
피나는 노력 끝에 어느 고지에 선 이들을 헐뜯었거나 질투를 보낸다면 이제라도 거두어라. 그들보다 더 노력하라. 촌음을 아낀 끝에 노력하여 성취하는 삶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성취한 자들만의 전유물도 아닌 `공공의 미덕` 이다. 질투를 보내는 소인배인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격려와 박수로 그 과실을 나누게끔 하라.
이 세상 `공공의 적` 이 아닌 이상, 비난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도리어 비난과 헐뜯음은 자신의 바보스러움만 드러낼 뿐이다. 내가 아닌 남의 철학과 가치관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도 노력하여 그 경지에 오르는 삶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높은 학벌에 취한 이들도 학벌이 낮은 이에게 어떠한 군림이 있어서도 안 된다. 청소년들의 맹목적인 입시경쟁을 부추기고 창의성을 말살시키는 학벌사회보다 능력사회의 지향이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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