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영어, 내 마음의 식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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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영어, 내 마음의 식민주의

고성 인터넷뉴스  | 입력 2007-06-24  | 수정 2007-06-24 오전 9:25:44  | 관련기사 건

최근 서울의 한 대학에서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의 학생은 대학 건물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바람에 가벼운 논란이 벌어졌다. 대학 당국은 교육상 어느 정도의 예의는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학생들은 자유분방한 대학가에서 새삼스럽게 옷차림을 규제하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사실 나 자신도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강의실에 들어오는 학생들의 모습이 탐탁치는 않다. 더구나 강의 중에 슬리퍼를 벗고 맨발을 앞 의자에 올려놓는 학생에게는 호통을 치곤 한다. 속옷 같은 여학생들의 옷차림이나 지나친 노출도 유행으로 넘겨버리기엔 눈꼴이 사납지만 못 본 척 넘어간다.


“아이 돈 케어”


그런데 한 여름에 짙은 감색 양복을 입고 넥타이까지 맨 대학 당국자는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시장에 가든, 쇼핑을 하든, 아이 돈 케어, 그렇지만 대학 건물에는 안 돼”라고 결연한 어조로 선언하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이건 코미디로군!’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고, 아내가 무슨 일인가 하고 덩달아 텔레비전 화면을 쳐다본다.


계란 반숙을 시키면 “아, 에그요?”하고 되묻고, 냉수에 설탕 좀 타달라고 하면 “여기 슈가 냉수 두 개!”라고 외치던 1970년대―장발과 미니 스커트를 단속하던 유신시대의 다방 레지와 “아이 돈 케어”가 일상어로 튀어나오는 2000년대 세계화시대의 대학 교수의 영어 실력이라니! 허기야 대통령도 취임식장으로 들어서면서 “굿 모닝” 하고 인사를 하는 판이니 말해 무엇하랴. (작가 김성동 씨는 이 일로 ‘참여정부’라는 말 대신 ‘굿 모닝 정권’이라는 말을 즐겨 쓰고 있다.)


이 순간 나는 문득 미국 텍사스 지방에서 폭우 속에 차를 몰고 가다 강물에 빠진 교민이 경찰에 휴대전화로 긴급구조 요청을 했으나 영어가 서툴러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결국 익사했다는 엉터리 기사가 떠올랐다.


영어를 잘못하면 목숨까지 잃는다는 식의 보도 행태가 못마땅하던 나는 곧 인터넷 신문을 통해 국내 신문들의 기사는 최소한의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엉터리 기사를 서로 베껴 쓴 ‘표절’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족들과 현지 기자의 정밀조사 결과 사고 원인은 악천후와 허술한 안내표지판, 잘못 설계된 도로 때문이며 차가 물에 잠기는 긴박한 순간에 오간 외마디 영어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설사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다 해도 경찰이 구조하기는 시간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인문학, 우리말을 정화하는 데서 출발”



영어와 관련된 기사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기억의 회로를 달려 나온다. 이번에는 미국 텍사스대학의 인문학 석좌교수인 승계호 선생의 말씀이다. “인문학은 문화를 정화하는 일이고 문화를 정화하는 것은 우리말을 정화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반세기 넘게 서양철학을 공부하고 영어로 강의를 해온 노학자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한국 성형수술 기술이 최고지요. 아름답게 하려는 건데 꼭 서양사람 모양으로 얼굴이며 몸을 만들고 있어요. 아름다워지는 것은 본성에서 나와야지. 그러려면 말의 본성이 아름다워져야지요. 한국 인문학은 서양사람 얼굴을 만드는 성형수술 같은 거요.” (이상은 「교수신문」2007년 6월 11일자에서 인용)


영어에 대한 자의식이 없는 인문학을 위해 윤지관 교수가 펴낸 『영어, 내 마음의 식민주의』를 권한다. 요즘 말로 ‘강추’다.

 

  글쓴이 / 정지창
· 영남대학교 독문과 교수
· 전 민예총대구지회장
· 저서: <서사극 마당극 민족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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