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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식 발행인 | 입력 2021-02-01 오전 10:42:13 | 수정 2021-02-01 오전 10:42:13 | 관련기사 건
2021. 1월 한글학회 회보 "한글 새소식"기고문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늘 ‘오늘 하루는 또 어땠는지’ 하며 텔레비전 뉴스를 본다. 비록 내 손 안에 세상이 들어와 있다지만 아무러면 그저 편하게 기대거나 드러누워 커다란 텔레비전으로 실감나는 화면과 함께 보는 것에 견주겠나.
그 뉴스 이야기를 좀 하자. 언제부턴가 뉴스를 전달하는 아나운서와 기자들이 아주 이상하게 그야말로 해괴망측하게 말을 한다. 뉴스 말고도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서 희한한 외국어를 써대는 거야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뉴스는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는데다 거기서 새로운 지식도 얻고, 아나운서는 표준 우리말을 쓰니 그들의 말법을 닮으려 하는 시민들을 봐서라도 좀 덜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방송인들이 잘 못 쓰는 말이 갈수록 심해지니 뉴스를 듣는 내도록 언짢은 마음이다. 엉터리 말법이 넘쳐나지만 ‘관측, 우려, 전망’ 세 개 낱말만을 두고 잘 못 쓰인 예를 한 번 보자.
방송에서 낱말을 잘 못 쓰는 경우를 가만히 살펴보면 주로 한자어를 많이 써서 이런 엉터리 말법이 생기는데, ‘관측’이라는 낱말이 어떻게 쓰이는지 한 번 보자. 아래 보기들은 모두 2020년 12월 MBC 뉴스데스크에서 기자들이 한 말들이다. 보기를 들면 “~조기 폐쇄 결정 전반으로 수사를 확대할 거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같은 경우 ‘관측’을 명사로 썼다. 여기서 ‘관측’이라는 낱말과 뜻이 거의 같은 ‘측정’을 넣어보면 “~조기 폐쇄 결정 전반으로 수사를 확대할 거라는 측정이 나오면서~” 와 같이는 절대로 쓰지 않는다. ‘측정’을 쓸 일이 있으면 반드시 ‘측정한다’가 나오게 마련인데, ‘관측’을 쓰면 반드시 ‘관측이 나온다’고 한다. 심지어 다음과 같이 말하는데, 참말이지 눈물이 날 정도다. “징계위원 구성만을 놓고 위헌 여부를 판단하긴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합니다”(12월 5일 MBC 뉴스데스크 이재욱기자). 관측이 우세하단다 관측이! 이 정도면 요술 언어다. 이걸 제대로 바꾼다면 “징계위원 구성만을 놓고 위헌 여부를 판단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정도가 되겠다. 정말 ‘관측’이나 ‘측정’이 들어가고 나오고 할 수 있는 낱말인가? 관측하고 측정할 수 있을 뿐이다. ‘관측’이라는 한자어를 뜯어 살펴보면 알겠지만 기계나 기구를 가져다 재고 살필 때나 쓰는 낱말이다. 그저 “~조기 폐쇄 결정 전반으로 수사를 확대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정도로 해야 하지 않을까.
‘걱정 근심 염려’가 사라졌다. ‘걱정 근심 염려’가 사라졌으니 좋겠다가 아니다. ‘걱정 근심 염려’가 사라지고 터무니없게도 일본말 ‘우려(憂慮)’가 판을 친다. 그런데 웃기는 것이 걱정을 하거나 근심하고 염려하는 게 아니라 ‘우려(憂慮)’를 한단다. 한 술 더 떠 우려가 나온단다. ‘걱정 근심 염려’는 방송에서 싹 사라졌다. 어쩌다 길을 가는 시민들에게 기자가 마이크를 대고 물어보면 그들에게서나 ‘걱정 근심’을 들을 수 있을까 아예 방송하는 사람들한테서는 들을 수 없다. “~전파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하고 MBC 기자가 한 말이다. ‘우려’를 써서도 안 되지만 ‘걱정’이나 ‘근심’ ‘염려’도 그렇게 하는 것이지 나오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쓸 수 없다. “~걱정도 나옵니다” “근심도 나옵니다” “염려도 나옵니다”하고 쓴다면 이상하거든? 그런데 “우려도 나옵니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마구 써대고 이걸 이제 학생들이나 시민들이 따라한다. 왜 이럴까? 그동안 걱정이나 근심이나 염려는 더러 해봤지만 ‘우려’는 안 해봤는데, 그게 들락날락 하는 줄은 또 몰랐거든. 그저 “~전파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고 하니 걱정입니다” 정도로 해야지.
‘전망이 참 좋다’ 바로 이놈의 ‘전망’을 또 참 즐겨 쓴다. ‘전망’ 이놈을 그저 ‘경치’라고 해보자. 사실 그 뜻에서 경치와 다를 것도 없다. 우리가 어떤 말을 할 때 ‘경치가 나온다’고 하면 아마 미친 사람 취급 받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전망이 나온다’고 했을 때 정상으로 본다면 이거 모두 다 문제 아닌가. 물론 ‘전망’에는 앞을 내다본다거나 장래 상황을 본다는 뜻이 있어서 ‘경치’처럼 명사 말고 동사 구실도 한다. 그렇다면 “~거취가 정리될 거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같은 표현은 “~거취가 정리될 걸로 보입니다” 정도로 해야 바른 말이 아닌가. 설령 ‘전망’이 ‘장래 상황’이라 처도 ‘장래 상황이 나옵니다’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경치’가 됐든 ‘장래 상황’이 됐든 들어가고 나오고 하는 게 아니다! 그저 ‘보인다’로 충분한데도 기어이 ‘전망’을 써서 뉴스를 보는 시민들을 투미한 사람으로 만든다.
관측 우려 전망은 뉴스를 보도하는 기자들이 마무리 할 때 가장 즐겨 쓰는 낱말들이다. 알고 보면 “~보인다”로 끝나야 할 보도문 마무리를 모조리 ‘관측’이나 ‘전망’을 써버려 그렇게 됐다. 이렇게 되니 판정하고, 추측하고,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것들도 모조리 ‘판정이 나왔습니다’ ‘추측이 나왔습니다’ ‘결정이 나왔습니다’ ‘판단이 나왔습니다’로 마무리 하는 기가 막힌 말법이 생기게 됐다. 흐릿한 한자어를 즐겨 쓰면서 모조리 명사로 다루니 이렇지 않나 싶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천 년 이상을 써오던 중국말글을 완벽하게 걷어내고 순 우리말글만 쓰자고 주장하지는 못하겠다만 왜 모조리 명사로 다뤄 관측이‘ 전망이’ 우려가 들어가고 나오게 하는가.
한글로 나타낼 수 있다고 해서 다 우리말이 아니다. 물론 좋은 우리말이 있으면 우리말 쓰고, 우리말이 없어서 중국말글을 빌려 쓸 수밖에 없다면 우리 말법에 맞게 써야 우리말이 온전해지지 않겠나.
한창식 발행인 gsinew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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