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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 입력 2021-03-10 오후 05:57:17 | 수정 2021-03-10 오후 05:57:17 | 관련기사 건
이승환 /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2032년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늦어도 2045년 광복 100주년에는 평화와 통일로 하나된 나라(One Korea)”의 기반을 다지겠다고 언급하였다. 여기서 2032년 남북공동올림픽은 “우리 힘으로 분단을 이기고” 사실상의 ‘One Korea’로 가는 중간경로(waypoint)로 규정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2032남북공동올림픽 합의가 2019년 이후 사실상 실종상태에 있다. (이 글에서 ‘2032년 서울-평양올림픽’이라는 공식명칭 대신 ‘2032남북공동올림픽’을 주로 사용한 이유는 특정 도시가 아닌 남북의 공동개최이고, 서울과 평양 외에 남북의 여러 도시들이 함께 참여하는 올림픽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특히 올 2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호주 브리즈번을 2032년 올림픽 개최지 우선협상(Targeted Dialogue) 대상으로 선정하면서 2032남북공동올림픽에 대한 그나마의 기대와 희망도 허물어져가는 느낌이다.
2032남북공동올림픽은 왜 실종되었는가
물론 여기에는 하노이 북미협상의 불발과 남북관계 단절, 코로나 사태의 지속에 상당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내외상황과 조건만 탓하기에는 2032남북공동올림픽과 관련된 우리 정부와 시민사회 전반의 대응이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안일했다.
특히 정부 대응의 소극성은 2032남북공동올림픽은 북한 협조 없이 불가능한 사안이라는 ‘북한 책임론’ 혹은 남북관계가 이런데 무슨 공동올림픽이냐는 ‘북한이슈 기피증’ 뒤에 숨어 있었다. 이는 시민사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시민사회는 이 사안이 갖는 중요성과 의미에 대해 정부보다 훨씬 둔감했다.
또 2032남북공동올림픽과 관련있는 개별 부처들을 통솔할 정부 내 강력한 추진력 결집 부재는 ‘불확실성 앞에 잘 움직이지 않는’ 관료조직의 속성을 그대로 방치했고, 이로 인해 ‘One Korea’로 가는 웨이포인트라던 2032남북공동올림픽은 잠깐 반짝이다 사라지는 남북관계의 여러 일회성 이슈의 하나가 되어버렸다. 결국 북한책임론 뒤에 숨은 보신주의와 정부 내 강력한 추진력 결집 부족은 2032남북공동올림픽 관련 정부 부처들의 사실상의 태업을 방조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그 귀결은 IOC의 브리즈번 우선협상 대상 선정이었다.
남북관계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혼선도 공동올림픽 이슈 실종에 작용하고 있다. 하노이 북미 노딜 이후 우리 정부의 남북관계 기본대응은 미국의 대북제재와 코로나 상황을 감안하여 개별관광 등 ‘실현 가능한 작은 협력’과 보건의료 등 인도적 사안 중심의 ‘대북제재 우회 협력’에 중점을 두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남북관계 대응기조는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또 8차 당대회에서 드러난 북한의 대남정책 기조와도 크게 배치되고 있다.
북한은 신년 벽두부터 열린 8차 당대회에서 지난 2016년의 7차 당대회까지 유지되던 민족해방으로서의 조국통일 개념 대신 “강위력한 국방력에 의거하여 조선반도의 영원한 평화적 안정을 보장”하는 것을 조국통일 위업 달성의 핵심과제로 새롭게 규정했다. 남북관계와 관련해서는 ‘적대행위 중지와 북남선언 성실 이행’을 근본으로 내세우면서 방역협력, 인도주의적 협력, 개별관광 등은 ‘비본질적인 문제’라고 폄하했다. 여기에 더해 기존의 우리민족끼리, 우리민족제일주의 등의 민족주의 고취 슬로건 대신 소위 ‘핵무력 완성’ 이후 새로 등장한 우리국가제일주의의 기치 아래 경제건설에 총집중하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했다.
즉 8차 당대회에 나타난 북한의 입장은 군사력에 기초한 한반도 평화·안정을 토대로 ‘우리민족끼리’가 아닌 국가제일주의 기조 아래 경제발전에 총집중할 것이며, 남측이 제시하는 개별관광 등 비본질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당분간 대응 않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2032남북공동올림픽,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역설적이지만 북한의 이런 인식 때문에 실종 위기에 처한 2032남북공동올림픽이 남북관계의 간극을 해소하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우선 확인해둘 지점은 IOC의 브리즈번 우선협상 대상 선정이 2032년 올림픽 개최지에 대한 최종 결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IOC의 새 유치절차 규정에 따르면 선호도시 내지 우선협상 대상도시는 1개 또는 2~3개로 추후 선정 가능하며, 토마스 바흐(Thomas Bach) IOC 위원장도 현시점에서의 선호 후보도시가 브리즈번일 뿐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남과 북의 2032년 올림픽 공동유치 발표는 역사적인 제안으로, IOC는 진심으로 환영한다”라고 평가해온 바흐 위원장의 기존 입장을 고려할 때, 서울-평양이 선호도시의 하나로 추가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또 북한식 분류에 따르더라도 2032남북공동올림픽은 남북관계의 ‘근본문제’에 속한다. 9·19평양선언의 합의사항인 2032남북공동올림픽은 ‘북남선언의 성실 이행’ 문제이다. 게다가 2032남북공동올림픽은 북핵 문제의 일정한 진전 없이 불가능하며,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남북철도-도로연결 등의 인프라 구축이 불가피하고, 한반도만이 아니라 동북아 역내 평화·안정의 중대 계기가 된다. 그간 북한이 우리 정부의 여러 제안을 비난하면서 단 한번도 2032남북공동올림픽에 대해서는 부정적 의사를 표명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이런 이유들을 고려한 것이 분명하다.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2032남북공동올림픽이 평화프로세스와 남북경협 추진에 결정적 명분을 제공하는 어젠더가 된다.
따라서 정부는 2032남북공동올림픽의 정책적 우선순위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개별관광이나 보건의료협력만큼 2032남북공동올림픽은 국민적 지지가 높은 사안이다. 서해상에서 북한의 우리 공무원 피살사건의 여파가 한창이던 작년 9~10월에 서울시민 1200명 대상의 사회적 대화 결과 2032년 서울-평양 하계올림픽 공동유치 추진은 지속 의견이 65%대로 나타났다.
또한 IOC의 브리즈번 우선협상 대상 선정을 감안하여 정부는 현 남북관계 상황을 고려한 새로운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대안의 핵심은 ‘2032년 서울-평양올림픽’이라는 명칭과 남북 공동개최의 정신은 유지하되 잠정적으로는 서울 단독유치를 추진하는 것이다. 북한이 2032남북공동올림픽에 적극 협조하지 않는 상황에서 일단 서울 단독유치를 추진하고 추후 남북공동올림픽으로 전환하는 단계적 로드맵인 셈이다.
정부가 2032남북공동올림픽 추진의지를 강력히 표명하고 국제 공공외교를 강화하면 이 새로운 안에 대한 IOC의 협조와 로드맵 공동작성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잠정적 서울 단독유치 추진’ 안을 북한에 알리고 이해를 구하는 것도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그간의 소극성과 사실상의 태업을 일신하기 위해 범부처 차원의 2032남북공동올림픽 상설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민관 합동의 ‘2032남북공동올림픽 국민유치위원회’를 구성하여, 공공외교와 시민참여 확대를 공세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새로운 대안의 중요한 일부가 된다.
요컨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2032남북공동올림픽은 88서울올림픽이 남긴 미완의 과제를 44년 만에 마무리하는 일이다. 88올림픽 당시 북한의 요구가 남북 공동개최였고, 이 요구가 거부된 이후 북한은 교차승인 불발과 엄혹한 ‘고난의 행군’, 오랜 국제적 고립에 빠지게 된다. 2032남북공동올림픽은 다시 찾아온 역사적 기회이다. 문재인정부는 물론 한국 시민사회는 2032를 향해 다시 용맹정진에 나서야 한다.
이승환 /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이승환 /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gsinew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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