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쑥 캐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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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쑥 캐는 남자

고성 인터넷뉴스  | 입력 2007-03-22  | 수정 2007-03-22 오전 8:19:57  | 관련기사 건

오래 머물던가 크게 행세할 것도 아니면서 봄은 늘 요란하게 납신다. 삼동(三冬)을 일거에 녹이기 어려운 데다 인간이 불러들인 지구 온난화 탓이 적잖겠으나 올해는 더더욱 유난스러웠다. 따뜻한 겨울만 믿고 웃자란 보리 싹의 천진을 비웃듯, 세찬 눈과 한파를 번갈아 뿌렸다. 뭔 놈의 황사까지 너무 일찍 건너와 화신북상 속도에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꽃샘바람이 개화(開花)를 투기한다고 토실토실 맺은 꽃망울이 도로 움츠러들 리 있나. 산에서 들에서 마당 넓은 집에서 차례를 기다리다가, 드디어 툭툭 터지기 시작했다.


나물보다 향수를 캐는 사람


봄을 타거나 입 짧은 사람은 이 무렵부터 상큼한 봄나물을 찾기 마련이다.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고 춘곤을 달래기 위해.


그냥 넘어가면 어때서 기어코 지난날을 되짚는다는 핀잔을 먹어 싸겠지만 예전엔 입 따로 마음 따로 놀았다. 글자 하나 다른 춘궁과 맞물렸기 때문이다.


온 산야를 회색으로 뒤덮었던 겨울이 물러가자마자 손톱 끝에 풀물이 들도록 나물을 캐던 처녀들이 먼저 정체불명의 신열을 앓았다. 싱숭생숭 가슴에 슬픔 같은 희망이 고이는 시절이었다.


마을 처자들만 나물바구니를 들고 나섰을까. 새색시도 할머니도 들로 산으로 흩어졌다. 남자는 어림없고 여자들만 나섰다.


그런데 엊그제는 동네에서 가까운 탄천변을 어정거리다가 쑥 캐는 중년 남자를 보았다. 타고 온 자전거를 한옆에 세워 놓고 주머니칼로 싹둑 자른 쑥을 비닐봉지에 담고 있었다.


들릴 둥 말 둥 작은 소리로 노래까지 흥얼거리는 모양이 퍽 자연스러웠는데, 실상 처음 대하는 풍경이 아니다. 봄철이면 더러더러 눈에 띄었다. 부인네는 말할 나위 없다. 훨씬 많다.


나물보다는 향수를 캐는 사람들이지 싶다. 몸은 비록 시멘트 군락을 벗어나지 못할망정 마음은 때때로 고향을 떠돌아 행장을 차리고 나섰을 게다. 보드랍게 씹히는 맛과 쌉싸래한 향기가 입 안에 가득 퍼지는 쑥국이 그리워 식구들에게도 보시하듯 끓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마늘과 함께 단군할아버지를 탄생시킨 웅녀 신화는 둘째로 치고라도.


이 풍진 세상에 무엇이 가장 보수적이니 어쩌니 해도 혀처럼 정확하고 고집불통인 감각 기능도 드물다. 저장 검색에 뛰어난 머리가 챙기지 못하는 맛을 세 치 혀는 귀신처럼 단박 알아낸다. 그러라고 달린 것 아니냐 반문하면 할 말이 없되, 어떨 적에는 대여섯 살 때 일까지 기억하는 신통력이 정말 무섭다.


쑥의 반만 년 역사가 고마워


우리나라 봄나물은 그나저나 얼마나 될까.「맛있는 산나물 100선」(윤국병  장중근 공저)으로 미루어 애초에 가짓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들이나 밭에서 나는 나물과 푸성귀가 그만 못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 저자도 그래서 독자를 안심시켰나 보다. 열 가지 가량만 알아도 된다고 했으니까.


‘며느리 밑씻개’를 데쳐 먹는달지, ‘뱀딸기’ 순을 녹즙으로 해서 마시는 법 등은 아닌게 아니라 낯설다.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이 바닥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음식물의 영양가나 효능을 정력 위주로 품평하는 버릇이 생겼다. 아니면 말고식 입담으로 바다와 육지의 웬만한 산물에 정력제 도장을 찍는다. 번번이 남자 ‘거시기’에 좋다는 투로 엄지손가락을 꼽아 강성 마초의 기를 돋우러 든다.


다른 한편에서는 또 ‘섹시’ 소리 드높다. 섹시하지 않으면 미녀 축에 끼지 못하는 양. 자천 타천 야단들이다.


관음증에 들린 듯 부끄럼을 타지 않는 사회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으랴. 사흘이 멀다 하고 성범죄가 판을 친다.


보리누룸 전후에 쑥꾹새가 울 때쯤이면, 쑥떡 같은 쑥은 말린 제 몸을 다시 태워 사람들의 모기를 쫓을 터이다.


한창훈 소설가가 신문을 통해 전한 거문도 소식에 따르면, 쑥 재배가 섬 노인들의 유일한 벌이 수단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한 관에 팔천 원. 구황(救荒)식물의 으뜸인 쑥의 반만 년 역사가 고맙다.


다산 선생의 시 ‘채호(采蒿) 3장’ 중 제1장의 몇 줄도 그만한 사정을 짚었다.


“캐어도 캐어도 허기진 이 쑥을 뜯고/ 뽑고 가리고 다듬으니/ 바구니 광주리에 반쯤 차네/ 돌아가 이것으로 쑥죽을 쑤면/ 죽인 양 밥인 양 끼니가 되네”


글쓴이 / 최일남

· 소설가

· 前 동아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

·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

· 작품: <흐르는 북> <서울사람들> <누님의 겨울> <석류> <어느 날 문득 손을 바라 본다> 등 


 

 

 

 

     <영광함평인터넷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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