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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자/자유기고가 | 입력 2016-04-28 오후 04:36:47 | 수정 2016-04-28 오후 04:36:47 | 관련기사 2건
조명자 / 자유기고가
올 4월 26일은 아버지 2주기였다. 2년 전 4월 2일 후배 문숙이를 떠나보내고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세월호 304명, 그 중에서도 이백여 명이 넘는 꽃 같은 아이들이 눈앞에서 수장당하는 모진 꼴을 보면서 이런 개판인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이 끔찍하고도 치 떨렸는데 잔인한 4월, 그 한달을 못 넘기고 26일 내 아버지가 87세를 일기로 이승을 하직하셨다.
사실 아버지가 오래 못 버티실 거라는 것은 식구들 모두 한참 전부터 짐작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터였다. 협심증으로 30대 후반부터 걸핏하면 중환자실 신세를 지면서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다는 의사의 최후통첩을 받은 것만도 서너 번. 그 정도면 87세까지 버티신 것이 기적이고 정말로 장수를 하신 편이라고 아버지를 아는 이들은 입을 모을 정도였으니까.
오랜 지병인 당뇨 합병증으로 신장이 완전히 망가진 아버지는 그래도 삶의 집착을 놓지 못하셨다. 구십까지는 살고 싶다고, 사는 게 너무 행복해 죽기 싫다고...가까운 친척들에게 부지불식간 속마음을 털어놓으실 만큼 애착이 컸지만 아버지의 집념도, 현대의학도 망가져가는 장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걸핏하면 응급실로 달려갈 정도로 병세가 악화됐지만 보호자 자격으로 맏딸인 내가 나서 입원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지금 모시고 가면 서너 시간 안에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의사가 겁을 줬지만 입원하자마자 중환자실로 들어가 온갖 검사와 약물투여로 환자를 더 괴롭힐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가능하면 그때그때의 응급조치와 진통제로 고통을 최소화하고 주무시듯 곱게 돌아가시는 것이 식구들 모두의 소망이었고 더구나 가장 최측근인 엄마도 동의를 하신 터라 별 문제가 없었다. 중환자를 집안에서 수발 할 수는 없고, 엄마의 허락을 얻어 아버지를 가까운 요양병원으로 모셨다.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아버지 곁에 나흘을 머물다가 담양 집으로 내려 온 다음 날이었다. 아침에 엄마한테 전화를 하니 아버지가 오늘은 정신도 말짱하시고 죽도 꽤 드셨다고 좋아하신다. 그래서 조금 오래 버티실 수도 있겠구나 느긋하게 생각했는데 3시간 후에 아버지가 곧 운명하실 것 같다고 바로 아래 여동생이 울면서 전화를 했다.
허둥지둥 가방을 챙겨 출발을 했는데 30분 후 아버지가 운명하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 큰언니가 곧 도착할 거니까 그때까지 기다려주세요."
동생이 아버지 얼굴에 대고 애원을 하자 눈을 번쩍 뜨시더란다. 아버지에게 큰딸은 당신을 살려 줄 동아줄 같은 현실이었을 게다. 당신이 쓰러질 때마다, 수술과 입원을 밥 먹듯 할 때마다 교통정리를 도맡아 하던 딸. 늘 눈치가 보였고 늘 어려웠던 큰딸한테 아버지는 그때마다 "고맙다. 미안하다."를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운명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바로 "아버지 감사합니다." 인사를 드렸다. 극심한 병고를 닷 세밖에 겪지 않은 것도 고맙고, 자식들 돈고생, 마음고생, 몸 고생할까봐 짧게 병원신세를 져주신 것도 너무나 감사했다. 어쩌면 이것이 아버지가 평생 자식들 고생시킨 데 대한 보답, 마지막 큰 선물을 주고 가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버지는 우리 사남매에게 한 번도 든든한 아버지 자리를 보여주지 못하셨다. 낳기만 했지 먹이는 것도, 입히는 것도 공부시키는 것도 모두 할아버지한테 떠맡기고 당신 멋대로 주유천하를 하셨다. 87년을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돈벌이 한 적이 없고 오직 할아버지가 피땀 흘려 장만하신 논밭전지를 사업밑천 한다며 날리는 것을 업으로 삼았으니까.
집안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아버지, 부모 형제 자식 모두 아버지를 불신하고 미워했지만 오직 엄마만은 평생 아버지 편이었다. 당신 서방 구박할까봐 쌍심지를 켜고 주변을 방어하던 악착같은 엄마. 하도 서슬이 퍼래 할머니 할아버지도 며느리 앞에서는 감히 큰아들 욕을 함부로 하지 못 할 정도였으니까.
65년을 해로하는 동안 자식 제치고 오직 남편이 1번이었던 엄마. 이런 아내 덕에 평생 대접을 받고 산 아버지는 아마도 전생에 나라를 열두 번도 넘게 구한 게 틀림없다. 남들은 우리 사남매를 효자 효녀라고 칭찬했지만 사실은 진정으로 엄마 아버지를 사랑한 자식은 아무도 없었다.
엄마 아버지가 밖에 나가셔서 자식 자랑을 푸지게 할 만큼, 부모노릇은 제대로 못했으면서 자식들한테는 제일 효도를 받는다고 친척들이 질투를 할 만큼 사남매 모두 부모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지만 기실은 사랑이 아니라 우리 모두 자식 된 도리를 해야 비로소 제 마음이 편해지는 고질병을 앓는 탓이었다.
아버지 장례 기간은 세월호 아이들이 줄줄이 부모 곁으로 돌아오던 시기였다. 집 가까운 안양 지역 병원 영안실을 구할 수 없어 할 수 없이 산본 원광대 한방병원으로 아버지를 모실 수밖에 없을 만큼 안산 인근지역 장례식장이 동이 날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보내드릴 성남화장장 입구도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차량과 학생들 그리고 봉사요원들로 북새통이었다. 아버지를 모신 관이 화장로 앞으로 당도했다. 통유리창으로 보이는 소박한 나무관. 부모 자식 간 63년의 인연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아버지 제 마음 아시죠? 아버지 전 하나도 슬프지 않아요. 오히려 기뻐요. 에비 죽은 게 그리 좋으냐? 섭섭하셔요? 아버지 죄송하게도 63년 동안 아버지를 사랑한 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안나요. 오히려 원망하고 미워하고 남들 아버지 부러워하고...그런 기억 밖에 없네요.
‘
징하게 처자식을 고생시켰지만 아버지를 마음 놓고 미워할 수도 없었어요. 순하고 점잖고 여려 구박하다가도 짠하고 속상하고 그런 사람이 아버지였으니까요. 그런데 아버지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내 가슴 속에 아버지를 품었어요. 내 아버지, 그리운 아버지, 착한 아버지...사랑과 연민과 회한이 오롯이 살아있는 온전한 부녀관계가 진정으로 자리 잡은 거지요.
아버지도 기쁘시지요? 고약한 큰딸 성미 감당하시느라 애 많이 쓰셨어요. 아버지 눈망울, 살려달라는 듯이 내 손 꽉 잡고 부들부들 떨며 절박하게 나를 바라보던 눈빛, 아마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예요. 아버지 편히 쉬세요. 여든 일곱 해 만고풍상이 많았다만 그래도 재미졌다 허허 웃으시며 편히 쉬세요 아버지..."
동생들은 눈물을 흘리더라만 나는 담담하게 아버지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와 이별도 이별이지만 그보다 더 뻐근하게 내 가슴을 아프게 했던 일. 바로 아버지 옆 화장로에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단원고 여학생 '정다빈'의 화장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천수를 다 하신 우리 아버지를 잃은 슬픔 보다 다빈이의 마지막을 보는 것이 더 가슴 아렸다면 나쁜 딸년이겠지? 그런데도 자꾸 그쪽으로 신경이 쓰였다. 통곡소리도 넋두리도 없는 조용한 부스에서 장례의식을 진행하는 목사님의 나지막한 기도소리만이 공간을 갈랐다.
그때 처음 알았다. 통곡도 넋두리도 다 비집고 나올 틈이 있어야 가능한거라고. 억장이 막혀 바늘 한 땀 들어갈 자리도 없이 목구멍이 막혀 울음소리조차 낼 수 없는 부모 마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생때같은 자식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이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으랴.
아버지가 네모반듯한 철문으로 사라지신 뒤 엄마의 통곡소리가 복도를 뒤흔들었다.
"아이고 아이고 혼자 가면 나는 어떻게 살라고오~~고생만 고생만 시키더니 나만 남겨놓고 혼자 가고...어엉어엉"
엄마의 넋두리를 들으며 괜히 다빈이 엄마 아빠한테 미안해졌다. 십년을 살았던 팔십년을 살았건 한번 생으로 끝인데. 영원한 이별은 누구나 가슴 아픈 것인데. 그래도 순서대로 가지 못함은 언제나 가슴을 쑤시는 고통이리라.
조명자/자유기고가 gsinew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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