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이런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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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이런 하루

조명자/자유기고가  | 입력 2016-04-24 오전 11:00:55  | 수정 2016-04-24 오전 11:00:55  | 관련기사 2건

조명자 / 자유기고가

 

이런 하루

 

조명자.jpg간만에 광주 미장원 나들이를 했다. 간만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상 하반기, 일 년에 딱 두 번만 하는 파마니까 잊어버릴 만하면 나가는 광주 나들이다. 솜씨 좋기로 유명해 광주는 물론 전남북 아줌마들을 커버하는 원장님인지라 예약손님이 줄줄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무튼 머리 한번 하려면 하루를 몽땅 바쳐야 하는 번거러움에도 불구하고 여기를 고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머리손질에 아예 재주가 없어 꼬불꼬불 파마머리는 대책이 없는데 여기는 머리감고 툭툭 털어 말려도 아주 자연스럽게 맵시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사위한테까지 어머니 머리 예쁘다는 칭찬을 들을까. 몇 번 15,000원 하는 창평 미장원에서 할머니들과 파마를 해봤는데 완전히 볶아놓은 할머니 파마라 도무지 머리통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어 할 수 없이 그보다는 4배가 비싼 6만 원짜리 파마지만 다시 광주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손재주 없는 죄로 울며 겨자먹기로 5시간을 미장원에서 게기는데 모인 아주머니 대화가 가관이 아니었다. 화장품에서부터 옷, 신발까지 서로서로 비교하며 명임을 침 튀기며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고 50평 이하 아파트는 좁아서 못 쓴다나 어쩌나, 자식 이야기, 남편이야기 종횡무진 짓떠드는데 뒷골이 땡길 지경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봉숭아학당처럼 와글와글 수다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나는 한 귀퉁이에 찌그러져 신문에 코 박고 아줌니들 대화를 아예 무시했다. 40만 원짜리 운동화 비슷한 신발을 비싸지 않지만 아주 편하다는 둥 가방은 어떤 브랜드가 가격에 비해 품질이 좋다는 둥 난리부르스를 견디며 4시간을 버텼더니 드디어 어떤 아줌니가 나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렇게 한 말씀도 안하세요?"

 

그래서 웃었다. 이놈의 여편네야 그럼 내가 뭔 말을 하겠냐? 화제가 엔간해야지...속으로 혀를 차면서.

그랬더니 원장님이 냉큼 나서며 나를 띄우기 시작했다.

 

"이분은 여기 분이 아니세요. 서울에서 오셨는데 전라도가 좋아서 담양에 사신데요."

 

하긴 5년 이상 다녔으니 말소리만 들어도 전라도 사람이 아닌 것은 알겠고, 어디 사냐고 해서 담양 산다고 했으니까 원장님 정보가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후반부 전라도가 좋아 내려왔다는 것은 순전히 원장님 자의적 해석이었다.

 

그러니까 당장 나를 보는 아줌니들 눈빛이 틀려졌다.

 

"담양 어디에 사세요?"

"예 대덕면에 삽니다."

"아 대덕면 그 멋진 전원주택 단지 거기에 사시는구나..."

"아닙니다. 저는 농가주택에 삽니다."

 

여기까지 호구조사를 했더니 뒤이어 칭찬이 쏟아졌다.

 

"정말 얌전하세요. 피부도 너무 고우시고...자녀분이 어머니 닮으면 피부가 참 좋겠어요."

 

? 머리털 나고 피부 곱다는 소리는 처음 들었네. 사실 딸아이가 며칠 전 엄마도 제발 화장 좀 하고 다니라고 비비크림을 택배로 보내줬는데 딸아이의 성의를 생각해서 찍어바르고 나갔거든. 그건 그렇고 그다음 칭찬이 가관.

 

"서울 사람들은 요란하게 화장을 덧칠하지 않고 저렇게 깨끗하게 하고 다닌다니까..."

 

40만 원짜리, 비싸지 않은 신발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한 말씀 툭 내던진 신발주인 할머니가 한 말씀 하셨다.

 

"맞아요. 머리 염색 안하셨죠? 약간의 은발이 아주 멋져요. 저렇게 자연스런 헤어가 아주 품위 있다니까."

 

그보다 젊은 60평 사는 아줌니가 장단을 맞춰줬다. 아하, 이렇게 해서 자기들이 멋대로 생각하는 이미지로 상대방을 덧칠하는구나. 4시간 입 꽉 다문 탓에 졸지에 서울에서 내려 온 아주 품위 있는 할머니로 이미지매김한 게 황당하고 웃겨서 너희가 게 맛을 알아?가 아니라 당신들이 나를 알아? 소리가 절로 나올 판이었다.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드디어 완성. 원장님께 수고하셨다고 깎뜻이 인사하고 뒤에 남은 아줌니들한테 마저 인사는 건네는데 내 조끼를 본 그니들의 눈빛이 복잡해졌다. 내 옷깃에 노란 세월호 뱃지가 단정하게 매달렸거든...ㅎㅎㅎ

 


 

조명자/자유기고가 gsinew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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