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예수의 교회, 마몬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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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예수의 교회, 마몬의 교회

고성 인터넷뉴스  | 입력 2007-09-12  | 수정 2007-09-12 오후 3:41:00  | 관련기사 건

예수를 ‘기념’하는 종교


맑스는 맑시스트가 아니고, 예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예수는 유대교인이었다. 이것은 기본적인 사실에 속한다. 기본적인 사실들을 떠벌이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요즘은 이 사실에서 약간의 위안을 얻는다. 망해가는 기독교로부터 그래도 예수를 좀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종교는 많고, 기독교만 거기서 예외가 되라는 법은 없다. 영양부족도 치명적이지만, 영양과다는 치명적인데다가 추하기까지 하다. 지금 기독교는 혈관 속속들이 끈적끈적한 기름이 끼어 비대한 살집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잠시 더 버티겠지만, 지금의 기독교는 죽어가고 있으며, 죽어야 한다. 그래야 예수가 산다.


지금의 기독교는 예수를 기념하는 종교지, 예수를 ‘사는’ 종교가 아니다. 스승·제자 사이였던 유영모와 함석헌은 서로를 지극정성으로 대했지만, 매우 엄정한 사람들이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함석헌이 정부 허락을 받아 간디를 추모하는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유영모는 함석헌이 간디를 기념하는 것을 깊이 염려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왜 간디를 기념하는가? 간디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 내가 간디처럼 사는 것이 중요하지 어째서 간디를 기념하는가?”


간디의 정신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지 간디를 기념하는 것은 사실은 간디와 멀어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은 예수와 멀어지기 위해 예수를 높은 곳에 고이 모셔놓는다. 예수를 기념하는 것은 사실은 예수를 먼 과거의 인물로 박제하여 가두어 두는 것이다.


요한복음의 예수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고 했을 때, 그 말은 단순히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 예수의 살과 피가 내 몸 안에 녹아들어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예수의 친구가 되어, 나도 예수처럼 하느님 나라, 동무들의 나라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는 예수가 빠진 대신 종교 냄새가 너무 난다. 원래 냄새는 뭐든 상할 때 많이 나는 법이다. 열심은 열심인데 너무 냄새나는 신앙이고, 자기 냄새에 자기가 도취해 있어서 남들이 자기한테서 무슨 냄새를 맡는지 의식하지 못한다. 종교 냄새가 난다는 것은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언어로 자기를 표현하지 못하는 종교라는 뜻도 되고, 일상의 삶 속에서 생활화된 종교가 아니라는 뜻도 된다.


그저 교회 안에만 갇혀 있는 교리적인 종교이고, 틀에 박힌 종교라는 뜻이다. 이런 종교는 교회 밖의 세상에 대해 설득력이 없다. 교회 안에서는 열심이지만 일단 교회 밖 넓은 세상에 나오면 마치 외국어로 말하는 사람들처럼 소통이 안된다.


그러면서도 자기 이익만큼은 확실하게 챙긴다. ‘교회재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회경제적으로 확실한 세력을 형성하고, ‘사학법 재개정’ 소동에서 보았듯이, 자기 이익을 챙길 때에는 물불 가리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심한 경멸의 대상이 된다. 게다가 공중도덕도 없다. 사람 많이 다니는 도심 한가운데서 확성기를 틀어놓고 복음성가를 부르며 고성방가를 일삼는가 하면, 어디서든 가리지 않고 핏발 선 눈으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친다.


다른 종교를 향해 턱없이 우월감을 과시하려 들고, 오랜 세월 사람들이 지켜온 관습이나 생각의 습관을 존중할 줄 모르며, 교양 없고 무례하다. 덩치가 작기라도 하면 눈총을 덜 받을 텐데 엄청나게 비대해졌기 때문에 하는 일마다 욕먹기 십상이다.


열심은 있지만 어리석은 열심이고, 그 근본 태도가 진리에 닿아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나 삶에 대해 도무지 생각이 없고, 그저 죽은 교리만을 되새김질하고 있을 뿐, 미래를 생각할 줄도, 자기 자신에 대해 반성할 줄도 모른다. 예수의 정신을 밀어낸 자리에 교회 성장 마케팅과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는 질긴 생존본능이 들어섰다.


그래서 믿는 자의 정신은 광명한 데로 올라가지 못하고 무지몽매의 어둠으로 내려가기만 한다. 교회가, 기독교인이 다 그런 것은 아니라는 말을 지금 하기는 참으로 무색하다. 전체로서 기독교인, 한국 기독교가 잘못되어 있고, 이제 조용히 입을 가리고 회개하는 일에 진보고 보수고, 주류 교회고, 비주류 교회고 예외가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정과 환대의 공동체


교회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맨 처음 교회가 생겨날 때 모습을 살펴보는 것이 가장 좋다. 교회는 예수 사후, 전에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그는 죽지 않고 살아 있다!”고 선언하면서 모인 모임에서 유래했다. 교회가 생긴 것은 예수의 죽음 이후지만, 생전의 예수를 중심으로 모였던 모임과 역사적인 연속성을 지닌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기 직전까지 온전히 정성을 기울였던 열둘의 공동체, 그리고 그 외연에 있던 더 큰 익명의 제자공동체는 교회의 모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는 이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마음과 뜻과 생각을 나누었다.


이를 통해 예수는 로마제국의 식민지배 아래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가고 있던 갈릴리 사람들의 가슴속에 하느님이 다스리는 나라에 대한 오랜 이스라엘의 기대를 다시 불러일으켰다. 사라져가고 있던 인간다운 삶에 대한 희망을 일깨운 것이다.


하느님이 다스리는 나라에 대한 유대인들의 기대는 원래 초기 이스라엘의 역사적 경험에 근거하고 있다. 구약성서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출애굽의 경험을 통해 이스라엘 신앙의 근간이 되는 하느님 체험을 하게 된다.


이때 이들은 히브리 민중의 고통과 울부짖음을 듣고 내려와 고통스런 삶에 참여하는 하느님을 경험한다. 이 하느님은 민중의 고통스런 삶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하느님이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싸우고 함께 해방의 나라를 세우는 하느님이다. 함께 역사의 짐을 지고 역사를 성취하는 하느님이며, 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하느님이다.


하느님이 다스리는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에 대한 이상은 민중들 사이에 면면히 이어져 예수에게까지 내려오게 된다. 사실상 이 이상은 힘 있는 자들의 돈과 권력이 아니라, 가난하고 소박한 사람들이 성실하게 애쓰며 살아가면서 만드는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우정과 환대의 그물망을 신뢰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성실하고 소박한 사람들이 함께 애쓰면서 노동하고 협력하며 사는 것이 좋은 삶이라는 사회적 공감대의 지지대로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하느님의 통치, 하느님의 나라를 믿는다는 것은 실질적으로는 세상 안에 함께 애쓰고 사랑하는 친구들의 나라, 동무들의 나라를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은 이러한 이스라엘 민중의 기대와 믿음 속에서 탄생했다.


예수 시대에는 로마제국의 침략과 헤롯 가문의 수탈에 의해 전통적인 갈릴리 농경사회의 서로 돕는 자생적인 농민 협동조직이 거의 무너졌다. 로마제국과 헤롯 가문의 통치는 테러리즘과 폭력에 기반해 있었고, 그로 인해 민중들은 자긍심을 잃고 내면적으로 갈기갈기 찢겼다.


그 속에서 예수는 갈릴리 농민들과 함께 밥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었다. 그렇게 해서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 파괴의 위기에 직면한 갈릴리 농민들 사이에 서로 돕는 관계, 친구관계를 회복시키고자 했다. 하느님 나라, 동무들의 나라를 다시 불러들이고자 했던 것이다.


그들 모두를 피폐하게 만든 가난에 대해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는 대신, 예수는 서로가 서로를 도울 수 있게 했고, 서로에 대한 의심과 원한 대신 연대의 정신을 되살릴 수 있게 했다. 그들은 서로 동무가 되어 빚을 탕감해주고, 삶을 나누고 물질을 나누었다.


보지 못하던 사람이 보게 되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수천명이 보리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었다는 기적 이야기들은 예수가 그들을 스스로 살아가는 주체적인 삶을 향해 회복시키고,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인간으로 다시 탄생시킨 것을 말해준다.


그들은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을 통해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자기 인생을 스스로 살도록 요청받았다. 서로를 분열시키는 행동을 자제하고 협동하고 우정 있는 인간이 되도록 요청받은 것이다. 동무들의 나라, 하느님 나라로 들어오라는 초대를 받은 것이다. 예수의 종교는 원래 민중들과 동무하자는 종교, 서로 친구하자는 종교였고, 초대 교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간은 누구나 친구를 필요로 하지만, 특히 의지가지없는 사람들에게 친구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예수의 종교가 동무들의 종교였다는 것은 원래 그를 따라다니던 사람들이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하늘을 나는 새와 들에 핀 백합을 보면서 위로와 희망을 얻어야 하는 사람들은 하늘과 땅 외에 달리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성서에서 이러한 민중들의 자의식은 ‘나그네 의식’으로 표현되었다.


그들이 정말로 믿고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국가나 돈 많은 유력자들이 그들의 의지가 되어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절실하게 필요로 했던 것은 사람 마음속에서 저절로 우러나는 우정과 환대였다. 어떻게 내 집 앞에서 거지가 떨고 있는데 두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겠는가? 어떻게 내 입으로 밥숟가락이 들어가는 것을 빤히 쳐다보는 두 눈 앞에서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가?


인간은 원래 그럴 수 없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잘못된 제도나 이념으로 인해 왜곡되고 비뚤어져서 그런 것이다. 사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제도보다 선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은 세상의 나그네라고 여겼다. 소종파였던 초대 기독교인들은 非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당신들은 우리와 다른 부류라는 차별과 의심의 눈초리를 읽었다.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을 당나귀를 숭배하는 자들이라고 놀렸고, 밤에 모여서 갓난아이 살을 베어 먹는다는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그들은 세상 안에서 불편했다. 그들의 세상살이는 마치 나그네가 낯설고 물선 이국땅에서 살아가는 것과도 같았다. 히브리서나 베드로전서에서는 기독교인들을 그리스어로 παροικοι, ξενοι 같은 단어로 표현했다. 이 말들은 외국인, 거류 외국인, 나그네를 뜻하는 말이었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세계 안에서 낯선 자로 자신들을 인식했던 것이다. 그리고 구약성서에서 나그네와 외국인들을 잘 접대하라고 거듭 권면했듯이 초대 교회 역시 외국인들이나 나그네들을 교회 안에 받아들이고 접대해야 한다고 했다. 너희가 나그네였으니 나그네를 홀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초대 교회는 국가가 경영하는 복지제도나 돈에 의지했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단순하고 소박한 우정과 환대를 먹고 성장했다. 세상살이에서 소외되고 불편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삶 한가운데는 기쁨이 넘쳤고, 늘 기도하고 기쁨의 찬송을 불렀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나그네, 낯선 사람이 아니라 친구였고, 함께 길을 가는 동무였으며, 하느님 안에서 형제요 자매였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구약성서와 예수의 하느님 나라 정신을 이어받은 초대 교회의 코이노니아, 곧 사귐이었고, ‘예수의 교회’의 모습이었다. 예수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했던 초대 교회는 무언가를 주겠다고 약속한 것이 아니라, 그냥 너와 나 사이에 소박한 사귐이, 코이노니아가 있게 하자고 했다.


가난한 친구들 사이의 사귐을 통해 이 세상 한가운데 동무들의 나라를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예수의 교회’의 핵심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 단순한 교회의 삶에 참여함으로써 생명의 물을 마셨다. 아무래도 기독교의 생명은 겉보기에 휘황찬란한 때보다 도리어 아무것도 없던 때에 있었던 것 같다.


물질주의에 항복한 한국 교회


초창기 한국 교회는 ‘예수의 교회’였다. 초기 한국 개신교는 한말의 어지러운 역사적 혼란기에 들어와서 민중들의 바닥으로 내려가 뿌리를 내렸고, 민중들의 고단한 삶에 희망이 되어 주었다.


개신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오자마자 들불처럼 번져간 것은 의지할 데 하나 없이 길 잃은 양떼처럼 헤매고 있던 민중들이 교회에서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의지할 대상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대정신과 양심을 기독교가 대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온 우주에 한 분 하느님이 계시고 사람은 누구나 그 자녀이며, 서로 사랑해야 하고, 원수도 사랑해야 한다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새로운 세계관이자 도덕이었다. 기독교의 이러한 가르침은 새로운 시대정신을 이끌어갈 수 있었고, 시대적 양심의 지지대가 되어줄 수 있었다. 그래서 3·1운동에서도 기독교가 중요한 몫을 할 수 있었고, 예수의 가르침에서 민중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초창기 한국 기독교는 때로는 농부들이 농사일 하는 들판에서, 어부들이 고기를 잡는 배 위에서, 일꾼이 등짐을 지고 가는 길 위에서 예배하는 ‘서민의 종교’였고, 목자 없는 양떼처럼 헤매던 ‘민중들의 종교’였다.


예수가 풀밭에서 보리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무리를 먹였듯이, 함께 예배드리다 해가 저물면 많거나 적거나 간에 같이 나눠 먹고, 예수가 홀로 기도드렸듯이 밤이면 홀로 산에 올라 새벽별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예배하는 종교였다. 초창기 한국 개신교는 ‘예수의 종교’였고, 교회는 ‘예수의 교회’였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 교회의 민중적 전통은 일제시대 신사참배와 8·15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 군사독재 기간을 거치면서 변질되었다. 사실 8·15해방은 식민지 시절 고대하던 출애굽 사건이 실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한국 교회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일제시대 한국 기독교는 사회주의라는 이질적 세계관을 성숙하게 소화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3·1운동 이후 한국 기독교는 선교당국의 정교분리 정책으로 인해 신사참배와 일제 문화말살정책을 거치면서 민족주의적인 성격마저도 희석되었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 사실 3·1운동 이후 한국 교회가 변질된 것은 박해나 외부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물질주의에 항복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타락은 황금숭배에서 비롯된다. 출애굽이라는 극적인 체험을 하고도 광야에서의 40년 동안 이스라엘은 종살이할 때 주인이 먹던 고기 가마를 그리워했고, 금송아지 앞에 절했다. 그들은 금송아지 앞에서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을 하느님에 대한 예배라고 착각했다.


3·1운동 이후 일본이 문화정책을 표방하면서 어느 정도 회유책을 쓰자 자본주의 경제가 발달하기 시작했고, 해방 이후 재산을 모을 기회는 점점 더 많아졌다. 군중은 이 길로 점점 더 많이 몰려들었고, 기독교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1960~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농촌공동체가 파괴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어 교회는 급성장을 했지만, 교회는 그들에게 예수가 아니라 마몬을 가르쳤고, 대중들의 어리석은 욕망에 아첨했다.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기성 제도와 맞서 싸우던 익명의 사람들이 손에 쏟아질 부를 모으고 즐기기 위해 서둘렀다.


돈과 권력의 맛을 본 사람은 광야의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고기 가마를 그리워했듯이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상품에 대한 탐닉, 일상생활의 즐거움은 그들의 바알신이 되었다. 이와 함께 문화적 분위기도 점점 더 천박해졌다. 제 발로 이집트의 고기 가마를 향해 다시 걸어 들어간 것이다. 


하느님과 마몬을 함께 섬기지 못한다는 예수의 명령을 잊어버리는 순간, 교회는 세속 사회보다 더 심하게 타락했다. 혹세무민 식의 교리와 선전선동이 판을 치고, 돈으로 하는 교회 정치가 기승을 부린다.


죽은 제도로서의 교회를 지키기 위해 양심을 마비시키고, 사람들 마음속에 ‘어쩔 수 없다’고 믿게 함으로써 자기를 정당화하게 하고, 회개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들은 금송아지 앞에서 절을 하고 둘러앉아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을 예배라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 가톨릭 2백년, 한국 개신교 1백년 역사를 통해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들어올 때는 기층 민중의 종교, ‘예수의 종교’였던 기독교가 이제는 ‘마몬의 종교’가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의 교회’가 ‘마몬의 교회’로 되어버린 것이다. 오늘 한국 교회는 종교의 탈을 쓰고 민중을 지배하려는 허위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니 기층 민중들이 교회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이랜드 사태’나 장로 출신의 대선후보를 둘러싼 개신교 집단의 선전선동, 아프가니스탄 선교 사태는 이러한 일련의 역사적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걸핏하면 남을 구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우리나라 개신교의 고질병이다. 내가 바뀌기 어려운 만큼 남을 바꾸기도 어렵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내가 무슬림이 되지 않을 것이라면, 마찬가지로 무슬림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일 기독교가 상대방의 가난과 비참을 이용해서 그들의 삶의 방식과 생각의 방식을 바꾸려 한다면, 그것은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무례함이고, 예수의 정신에 대한 배반이며, 그런 식의 해외선교는 황금을 손에 거머쥔 교회의 여흥거리에 불과하다.


본래 순교란 승리자가 과거의 상처에 씌우는 왕관이다. 안타까운 죽음을 순교라 부르는 것은 본인들의 자유겠지만, 부득불 순교라고 주장하는 아집의 뒤에 대국민사과는 할지언정 끝까지 회개하지 않겠다는 완악함이 읽혀져 몹시 불편하다. 지금 개신교 지도자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 손으로 입을 가리고 회개해야 한다. ‘안티 기독교’, ‘개신교 혐오증’을 운운할 계제가 아니다.


종교적 언어를 빼고 경제적 언어로 설명하자면, ‘이랜드 사태’는 용역화, 외주화를 막지 못한 새로운 비정규직 보호법의 약점을 이용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용역화 함으로써 무리한 기업 확장의 부담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뒤집어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시민단체들과 노조는 부실한 비정규직 보호법의 약점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노사 갈등의 본보기로 ‘이랜드 사태’를 지목하고 총력을 기울여 노동자들 편에서 싸우고 있다.


문제는 자기 능력을 넘어선 욕심을 부려 ‘홈에버’를 인수한 이랜드 그룹이 국가권력을 앞세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기독교를 통해 자기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랜드 박성수 회장은 “성경에는 노조가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고, 이랜드 전 직원 앞으로 “불법파업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노동조합원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현장으로 복귀하여 다시는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의 달란트(임금)에 불만을 갖지 않는 성실한 종의 소임을 다하도록” 기도하라는 기도제목을 하달했다. 이것은 예수의 정신에 대한 배반이며, 하느님과 마몬을 맞바꾼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개신교 장로 출신의 한 대선후보는 온 나라가 그 재산형성 과정의 위법·탈법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데도 부동의 지지율 1위를 확보하고 있다. 거기에 개신교 신자들의 지지가 한몫을 하고 있는 것만큼은 틀림이 없다.


이 사람의 지나온 과거와 대선후보로서 내미는 미래의 청사진을 보건대, 신자, 비신자를 떠나 이 후보를 지지한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경제’가 이른바 ‘시대정신’임을 말해주는 분명한 증거다.


사실 이들은 기독교의 탈을 쓴 마몬들이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이들을 인정하고 환영하는 것은 그들이 하느님 대신 마몬을 섬기고 있음을 말해준다. 예수는 하느님과 마몬을 함께 섬기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했건만, 이 시대의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의 탈을 쓴 마몬은 환영해도 좋은 줄로 생각한다.


어느 시대나 자기 시대의 애굽이 있게 마련이고, 거기서 벗어나야만 자기 시대의 가나안으로 갈 수 있다. 아무래도 이 시대의 애굽은 물신주의인 것 같다. 기독교인들의 마음속에도 하느님 대신 돈 귀신이 자리 잡았다. 이 돈 귀신에게서 벗어나야 믿음이라는 것도 원래의 의미를 되찾고, ‘예수의 교회’로 회복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하느님의 집을 장사꾼의 소굴로 만들었다”는 예수의 준엄한 질타는 오늘 우리사회 어디나 해당한다. 돈 귀신이 지배하는 시장 전체주의는 비판적인 지성을 무력하게 하며, 무엇보다도 예수가 꿈꿨던 하느님의 나라, 우정의 나라를 이루지 못하게 한다. 요즘은 지식인들, 심지어 예술가나 성직자들까지도 경쟁시대에 뒤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집단적인 강박관념에 빠져 있다.


예전에 비하면 정말로 넘치게 살면서도 현재의 삶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끝없이 개발하고, 발전하고, 경쟁해야 한다고 노래를 부른다. 내가 살기 위해 기어이 너를 먹고야 말겠다고, 그렇게 사는 것이 선(善)이라고 말하는 세상에서 지성은 무엇이고 철학은 무엇이며, 또 종교와 도덕은 무엇인가? 약한 자를 이기는 것이 어떻게 명예가 될 수 있겠는가? 타인을 낮추어 보는 것이 무슨 자랑거리가 되는가?


싸움에 이겨서 먹이로 삼을 존재를 가졌다는 것은 오히려 수치다. 그것은 인간의 세계가 아니라 야수들의 세계다. 그보다는 사랑하는 친구를 가지는 것이 명예다. 경쟁은 짐승들에게 맡기고 우리 인간들은 동무들의 나라, ‘예수의 교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동무들의 나라, 예수의 교회


초대 교회는 ‘예수의 교회’였고, 그들은 아무것도 달콤한 것을 약속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가장 큰 것을 약속했다. 세상에 동무들의 나라를 가져오는 것이다. 사실 이보다 더 큰 일, 이보다 더 긴급한 일은 없다. 사람 사이에 호의가 자라나지 못하고 사람과 사람이 동무로서 손을 잡지 못한다면 진보고 발전이고 아무 소용이 없다. 확실히 우리나라 교회도 지금보다는 가난했던 옛날에 훨씬 더 생명력이 있었고, ‘예수의 교회’에 가까웠다.


집안 이야기를 하자면, 시어머님이 시댁에서 제일 먼저 예수를 믿기 시작했다. 시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서 재산을 거덜 내고 세상을 뜨자 30대 후반이었던 시어머니는 당신의 늙은 시어머니와 어린 5남매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산 아래 임자 없는 오두막집에서 사셨다. 삶의 희망이 끊어진 상황이었다.


어느 날 시어머니는 젖먹이 막내딸을 업고 사립문 밖 복숭아나무 아래 서서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지는 해를 보다가 “나도 이제 예수 믿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산을 넘어 이웃마을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셨다.

고성 인터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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