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이후, 남북관계 새길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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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이후, 남북관계 새길 찾기

이승환 /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회장  | 입력 2018-02-21 오후 04:51:31  | 수정 2018-02-21 오후 04:51:31  | 관련기사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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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환 /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회장


김여정과 공식적 북한 국가수반 김영남을 위시한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는 일거에 한반도 정세를 바꾸어놓았다. 지난 몇달간의 군사적 긴장상황 대신 평창올림픽은 사상 최대 규모의 성공한 평화올림픽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해졌다. 그와 함께 한반도운전자론이 무색하던 문재인정부의 정책적 입지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반면 미국 트럼프정부는 군사 옵션의 최우선으로 고려해왔던 논란의 코피(bloody nose) 작전에 대해 그 말 자체가 가공된 것이라고 부정하면서, ‘대화에 대한 신뢰의제 선정을 위한 북미 예비대화를 언급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정세 전변(轉變)’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에 대한 저변의 국민여론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평창올림픽이 막바지에 이른 지금 시점에서 조사하면 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개막 직전의 조사에서는 북한의 올림픽 참가가 남북관계에 기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과반을 넘었고(53.3%), 특히 20(64.6%)와 학생들(62.8%)이 가장 부정적 수치를 보였다.(민주연구원KSOI 대북관계 및 통일정책 국민의식조사, 2018.2.6)

 

대북제재 만능론의 함정

 

이런 냉정한 국민여론은 북한의 평창올림픽 올인이 문재인정부를 활용한 대북제재 회피 혹은 시간 끌기라는 불신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가 대북제재의 효과 때문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존재한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동기로 간주하는 이른바 제재효과론의 주장이 있는가 하면, 올림픽 참가가 북한 자신의 전략적 선택, 즉 미국을 우회하여 일정기간 남북관계 개선과 핵보유 병행의 가능성을 시험해보려는 북한의 신전략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후자는 제재의 효과 정도와 상관없이 대북제재는 핵문제 해결에 무용 내지 한계가 분명하다는 입장에 서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일정한 효과를 얻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유엔의 대북제제는 20163월 이후(유엔결의 2270) 대량살상무기 관련 선별제재에서 무차별적 포괄제재로 변화되었고, 대북제재의 키를 쥐고 있는 중국의 제재 이행강도도 매우 강력해졌다. 이에 따라 2018년 북한의 대중 상품수출은 2017년 대비 약 94% 감소한 1억 달러 내외로 예상된다고 한다.(임수호 글로벌 협력과 북한경제성장, 2018. 2) 그러나 제재가 일정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해서 제재의 강도를 더 높이고 지속하면, 김정은은 더 변하고 무력충돌 위험지수도 낮아질 것이라는 보수언론과 야당 일각의 제재만능론까지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제재만능론으로의 경도가 위험한 이유는 무엇보다 현재의 제재조차 북한의 민생을 직접 타격하는 과도한 수준일 뿐만 아니라, 더이상의 추가 제재는 북한의 핵 폭주와 돌발적인 현상타파 시도만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제재만능론의 기저에는 북한 조기붕괴론과 같은 잘못된 정세인식이 존재한다. ‘조만간 붕괴할대상과 진지하게 협상할 이유가 없다는 오판은, 지난 북핵 역사가 증명하듯, 오늘의 북핵문제를 만들어낸 최대의 공로자이다.

 

제재만능론이 위험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이것이 군사 옵션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른바 코피 작전은 국제법적 논란이 있는 예방타격 주장처럼 보이지만, 실은 최대의 압박에 못 이긴 북한이 무언가 군사적 행동에 나설 때 이에 대응하여 제한적(때에 따라서는 전면적) 타격을 전개하겠다는 유인론에 가깝다. 이 점에서 보면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는 제재론자들의 음험한기대를 일단 수포로 만든 셈이다.

 

최대 압박의 막다른 골목에서 빠져나오는 길

 

평창올림픽 이후 한국정부가 추구해야 할 대북정책의 방향은 분명하다. 그것은 미국과 동맹국들의 최대 압박전략과 일정한 병존을 유지하면서 북한과의 대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 전략이 인도하는 막다른 골목으로부터 나오는 길을 찾는 것이다(르몽드,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힘 실려, 뉴스프로2018.2.16).

 

이 길의 출발점은 핵을 생존과 발전의 보검으로 생각하는 북한과, 핵 독과점체제에 근거한 미국의 세계운영전략 사이의 모순을 협상 가능한 아젠다로 변환시키는 노력이다. 이 변환의 핵심은 비핵화협상을 거부하는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는 일이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북미 간 핵군축 혹은 세계 비핵화를 언급하겠지만, 이는 미중의 협력 속에서 한반도 평화를 추구하는 전략과 배치되는 것이기도 하려니와, 그 역시 협상이 시작되고 난 이후의 과제이지 당장의 협상 목표로 제기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북한은 미국의 압박 때문에 핵경제 병진노선을 중단하거나, 그런 인상을 주지도 않으려 할 것이다. 트럼프정부가 말하는 굴복은 국제정치의 용어도 아니며 주체의 북한이 굴복을 인정할 가능성도 없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먼저 북의 핵 폭주 명분을 제약하는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면서 한반도 군사긴장의 동결 국면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단축소와 북한의 군사조치를 예방하는 선제외교, 그리고 대북제제하에서의 지속적인 인도지원과 다방면의 당국회담 및 민간교류 확대 노력 등이 당연히 포함된다.

 

미국에 대해서는 한반도 비핵화 목표의 분명한 확인과 함께 그에 이르는 길이 하나가 아니라 다양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남북관계 발전을 추구하되 비핵화 과정이 일정 정도 진전되기까지는 대북제제 틀을 원칙적으로 유지할 것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한국정부의 주도적 노력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동결이 지속되고 남북관계가 발전하는 국면이 일정기간 진행된다면, 트럼프정부의 의도와 무관하게 미국도 북미대화를 더이상 회피할 수 없게 될 것이며 국제 대북제제 시스템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미사일 동결 국면의 지속을 위해서는 제재 시스템의 변동은 물론 북한에 대한 일정한 유인 제공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북미대화 선행이 남북정상회담 추진의 전제조건이라고 반드시 못 박을 일도 아니다. 대북제제 시스템의 유지 아래 남북관계 발전을 통한 북한 핵활동 동결과 나아가 비핵화를 추진해나가려는 한국정부의 입장을 미국에 충분히 설명한다면, 남북정상회담을 비핵화를 위한 북미회담에 선행해서 추진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미국의 탐색대화론이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고 진정한 북미대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미국 의회와 행정부의 실제 분위기라면 더욱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남북관계 발전은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최대압박하에서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 일차적으로는 북미대화의 동력을 확보하고 궁극적으로는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공동체 형성과 북한의 발전국가진입을 추구하는 것이 최대압박이 이끄는 막다른 길에서 빠져나오는 유력한 출로이다. 이것은 다수의 한국민들에게는 상식적 이야기지만 국제적으로는 검토된 일이 없는 전혀 새로운 길이다.

 

평창이후 문재인정부는 이 새로운 길찾기의 초입에 분명히 들어섰다. 모두가 우려하는 평창 직후의 한반도 상황도 어느 정도 관리 가능한 범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단언키는 어렵지만 최소한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축소는 가능해 보이고 이에 대한 북한의 대응도 절제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아직 일정조차 잡지 않은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온갖 전략자산을 동원하는 최대 규모의 훈련으로 발전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북한 역시 대미 비난공세 속에서도 남북관계가 개선되는 동안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중지할 것”(조선신보2018.2.12)이라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국제적 대북제재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대북 접근의 다양성 추구, 그리고 비핵화 목표의 일관성과 전쟁 반대 입장의 확고한 견지는 이 새로운 길찾기의 핵심내용이다. 그리고 한국정부가 제시하는 이 길 외에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전쟁아니면 핵 군비 경쟁의 야만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진지하고 강력하게 각인시키는 노력은 새길 찾기의 충분조건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문재인정부를 이용하여 트럼프정부 남은 3년을 버티거나 혹은 남북관계 개선과 핵 보유 상태의 병행을 추구할 속셈이니 여기 넘어가면 안 된다고 걱정하지만, 이는 결코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핵강국을 추구하는 북한에 대해, 비핵화를 위한 관여와 규율을 확대하는 새길을 찾으려는 한국정부의 노력은, 그 동기가 무엇이든 북한이 남북관계 발전에 나설 때 비로소 본궤도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북한이 남북관계조차 포기하고 핵과 군사 대결의 외길로 폭주하는 것이다.

 

이승환 /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회장

 


 

이승환 /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회장 gsinew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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