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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주 / 성공회대 정치학 | 입력 2018-10-05 오전 09:11:46 | 수정 2018-10-05 오전 09:11:46 | 관련기사 건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정치학
3차 남북정상회담, 한미정상회담에 이어 10월 7일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한다. 역사적인 싱가포르 센토사 북미정상회담 이후 잠시 정체되었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다시 작동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새 사이클이 앞선 사이클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구체적인 진전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북미대화가 교착상태에 직면하게 된 원인을 명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종전선언을 바라보는 북미 간 온도차
이미 널리 알려진 것처럼 종전선언에 대한 북미의 입장차이가 북미대화를 교착시킨 주요원인이다. 종전선언에 대해 미국이 부정적이라는 식의 논조도 적지 않다. 미국 내, 특히 실무자 선에서는 종전선언이 유엔사나 주한미군의 지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우려하지만, 그러나 미국은 종전선언을 이미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지난 8월 29일 미국 인터넷 뉴스 ‘복스’(VOX)는 센토사 회담에서 트럼프가 북한에게 종전선언을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종전선언과 관련해 북미가 취해야 할 조치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비핵화와 관련해 스스로 취한 일련의 조치들에 상응해 미국이 취해야 할 행동으로 종전선언을 생각해왔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미국은 종전선언 이후 최소한 핵시설을 신고하겠다는 약속을 북한에 받아내려고 했다. 북한은 종전선언과 핵시설 신고는 등가가 아니라며 이를 교환하자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핵신고는 비핵화의 매우 결정적인 조치이기 때문에, 북미수교나 평화협정 등 근본적인 안전보장 조치와 교환하겠다는 것이다.
재개되는 북미대화에서는 이러한 입장 차이를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 해결의 의지를 보이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실무진에서 이러저런 이유를 내세우며 기존 입장을 고수할 경우 최고지도자라도 자신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관철하기 힘들다. 특히 미국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국내나 미국에서 선비핵화론의 변종으로 상황의 진전을 가로막는 흐름이다. 북한의 비핵화가 완료된 이후 이러저런 상응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식의 입장은 그동안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한반도의 군사긴장을 고조시킨 원인 중 하나였다. 그렇기 때문에 센토사 회담 전후로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의 비핵화가 “과정”(process)임을 누누이 강조한 바 있다.
비핵화라는 최종목적지에 이르기 위한 과정들
비핵화는 기술적인 이유는 물론이고 정치적 이유에서도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기술적으로 비핵화는 한두 번의 행동으로 완료될 수 없고 상당한 시간 동안 여러 단계를 거치며 진행되어야 하는 작업이다. 핵 관련 시설 신고 및 검증만 해도 어디까지 핵시설인가, 어떤 방식으로 검증할 것인가 등의 쉽게 합의되기 어려운 의제들을 다루어야 한다. 이에 합의가 이루어지더라도 핵시설을 모두 폐기하기까지 또 수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기술적인 문제를 둘러싼 논란도 대부분 신뢰 부족에서 발생했다. 특히 과거 여러 차례 신고와 검증의 구체적인 절차를 둘러싼 이견으로 협상이 좌초되면서 북한 핵능력 발전을 억제할 기회를 상실했다. 정치적으로는 북미 사이의 상호신뢰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신뢰를 축적하는, 이를 통해 서로에 대한 위협을 감소시키는 과정이 있어야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비핵화의 최종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이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각자 신뢰증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의 목록과 그 실행 순서에 관련국들이 공감대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에 따라 동시행동 원칙이 강조되어왔다. 어느 일방의 행동만 요구해서는 일이 진행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신뢰마저 훼손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원칙을 실행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 등가관계를 너무 엄밀하게 따지다보면 협상이 어려워지고 또 결과에 대한 평가(누가 더 이득인가 등의 문제)가 또 다른 논란을 초래한다. 종전선언에 대한 논란도 이러한 함정에 빠져 있었다.
‘신뢰 릴레이’로 ‘다음 단계’를 꾸준히 만들어야
따라서 협상 초기 단계에서는 행동의 동시성을 일일이 따지기보다는 서로 선의적 조치를 이어가며 상호신뢰를 증진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신뢰 릴레이’ 혹은 ‘신뢰 이어가기’이다. 예를 들어 종전선언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더 진전된 조치를 촉진하고, 이것이 다시 북한에 대한 제재 해제와 평화협정 논의를 촉진하는 식의 시퀀스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즉 어느 일방에 의해 중단되는 사태를 막는 것이 한국정부의 주요 역할이다.
이 과정이 어떤 속도로 진행될지도 중요하다. 지난 9월 6일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정의용 특사가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에 북한과 미국의 70년간의 적대적 역사를 청산하고 미북관계를 개선해나가면서 비핵화를 실현했으면 좋겠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야기를 전한 바 있다. 미국이 북한의 핵신고를 이끌어내려면 북미수교와 평화협정을 같이 의제로 올려야 하고, 일이 이런 방향으로 진전된다면 김정은 위원장이 위에서 제시한 일정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트럼프나 폼페이오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시간표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에서 유추하면 미국이 이러한 속도를 받아들일 준비, 특히 북한과 수교나 평화협정 협상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올해 남은 기간 동안 ‘종전선언-북한의 더 진전된 비핵화-제재 완화’를 이어간다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역전 불가능한 지점’(point of no return)을 통과할 수 있다. 2018년이 한반도 대전환 원년이 될 수 있는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정치학
이남주 / 성공회대 정치학 gsinew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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