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대선 직후에 서둘러 할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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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대선 직후에 서둘러 할 일들

고성 인터넷뉴스  | 입력 2008-01-01  | 수정 2008-01-01 오전 8:05:35  | 관련기사 건

창비주간논평의 애독자 여러분, 과세 잘 하셨는지요? 무자년(戊子年) 새해 첫 주간논평을 쓰면서 창비 편집진을 대표하여 인사 올립니다. 새해에 모두들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새해를 맞으면 누구나 앞날을 내다보며 할 일을 다짐하게 됩니다. 더구나 우리는 지난 연말에 대선을 치르고 난 참입니다. 대통령선거는 해가 바뀌는 것 이상으로 확실한 국면전환의 계기가 되지요. 당선자가 드디어 확정될 뿐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이 특정 후보의 이해관계를 위한 것으로 오해받을 부담감도 사라집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일감을 새로이 챙겨볼 대목입니다.


내년 4월의 국회의원 총선거가 다가오는 점이 여전히 걸리기는 합니다. 이번에는 총선전략과 연계되거나 연계되는 것으로 보이는 부담이 안겨지니까요. 이것도 현실의 일부로 감안하지 않을 수 없지만, 아무튼 지금 우리 사회가 서둘러 해야 할 일 몇 가지를 꼽기는 어렵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새해를 맞아 당면과제나 열거하기보다 좀 더 원대한 계획을 펼쳐 보여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실은 대선 직후야말로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근본적인 반성을 하고 장기적인 구상을 할 때입니다.


저 자신 그런 차원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고 이 글도 그 산물의 하나입니다. 다만 원래 우리 지식인사회가 현실과 동떨어진 `원대한` 담론으로 넘쳐나거니와, 요즘은 `근본적 반성`의 이름으로 시민들의 실천의지를 마비시키는 언설도 수두룩합니다. 그날그날의 사업을 통해 긴 안목을 길러가면서 중·장기적 기획을 갖고 단기적 과제를 선정하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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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야 할 첫 번째 과제는 당선자의 선거공약에 대한 철저한 점검입니다. 당선자 측에서도 정권인수 과정에서 점검을 하겠지만, 인수위원회와 관료사회에만 맡길 일은 아닙니다.


예컨대 세칭 `한반도 대운하`, 즉 낙동강과 한강을 연결하는 경부대운하 계획이 있지요. 원래는 이명박 후보의 대표공약이었는데 워낙 문제가 많은 구상인지라 선거운동 중에는 후보 진영 스스로가 논의를 자제하는 기미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본격적인 추진 의지를 밝히고 있는 만큼 검증이 시급해졌습니다.


참여정부의 건설교통부는 이 사업의 타당성을 의심하는 평가를 냈었지만, 인수위 또는 새 정부의 재검토 지시를 받아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관료사회의 속성이 그렇기도 하려니와, 이런 식의 거대 토목공사야말로 건교부의 체질에 딱 맞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전문지식을 요하는 문제에 대해 저는 섣부른 판단을 아끼려고 합니다. 그러나 추진자들이 장담하는 결과 가운데서 공사기간 중 많은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약속만은 어느 정도 이행될 수 있다고 봅니다.


실은 바로 그래서 더 걱정이지요. 새만금 간척사업이 그렇고 이명박 후보가 비판했던 행정도시 건설 사업이 그렇듯이, 이런 사업은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일단 저질러놓으면 건설이 진행되는 동안 여러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갑니다. 그래서 끝난 뒤에 어떤 결과가 될지에 아랑곳 않고 공사의 지속에 목을 매는 기득권층이 형성되는 것이지요.


이 문제는 4월 총선의 직접적인 쟁점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경부운하 추진세력이 대선 압승에 이어 총선에서도 승리한다면 두 차례나 국민검증을 받았다면서 거침없이 밀고 나가기 쉽습니다. 범국민적 검증작업을 하루빨리 시작해서 만약에 문제점이 많다면 정권 스스로가 재고를 약속하도록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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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노무현정부에 대한 엄정한 평가는 서두를 일은 아니지만 시작은 지금부터 해야 합니다.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무척 미묘한 과제이긴 하지요.

지난 대선이 盧정권에 대한 국민의 냉혹한 심판이었다는 점에 대부분의 논자들이 동의하고 있는 만큼 참여정부의 과오를 열거하는 일이야 크게 부담될 일이 없습니다. 반면에 잘한 일도 이제는 객관적으로 평가하자고 한다면 보수언론과 한나라당뿐 아니라 민주개혁세력의 일부조차 `아직도 정신 못 차렸냐`고 집중포화를 퍼붓기 쉽지요. (구)여권 또한 선거 전략상 이로울 게 없다고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는 그쪽에 맡겨두더라도, 적어도 시민사회, 지식인사회는 이제 좀 더 정교하고 엄밀한 인식을 추구할 때가 되었다고 믿습니다.


대선에서 내려진 국민의 심판은 마땅히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재작년의 5·31지방선거 직후에 제가 창비주간논평에 썼듯이 “큰 흐름에 대해 한가지 굵직한 판단이 필요해졌을 때 그 판단을 내려주는 것이 민심”입니다.(<곱셈의 정치는 가능할까>) 이 범박한 판단을 두고 좀 더 정밀한 해석과 구체적인 후속수단을 강구하는 일은 정치가의 몫이요 지식인의 몫이며 깨어있는 시민들의 몫인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총선도 닥치고 하니까 `盧정권에 대한 국민의 심판`을 마구잡이로 휘둘러대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당선자 자신은 오히려 돈 안 드는 선거풍토 확립 등 지난 정권의 성과를 인정하고 계승을 다짐하는데 말이지요.


물론 당선자가 동의하는 업적이라 해서 반드시 긍정할 것은 아닙니다. 韓美FTA 졸속체결이 바로 그런 예지요. 미국 의회가 아직 비준을 안했고 우리 쪽에서도 제대로 심의조차 못했는데 2월 국회에서 비준동의를 처리하자고 노 대통령과 이 당선자가 합의한 것은 비판해 마땅합니다.


당선자측이 아직도 흔쾌히 인정 않는 盧정권의 성과로는 햇볕정책을 계승해서 상당정도 발전시킨 점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물론 지나치게 머뭇거리거나 에둘러 올 때도 많았고 지나치게 서두른 일 또한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큰 틀에서는 韓美간 공조와 6자회담에서의 자기 역할을 유지하면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화해를 이만큼 진전시켜온 공로를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북한의 비핵화를 남북관계 진전의 선행조건으로 삼는 것이 당선자의 확고한 방침이라면—다행히 그 점이 아주 확고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이 대목에서는 盧정권의 정책이 분명히 더 낫다는 평가를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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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극히 단기적인 과제가 특검수사를 공명정대하게 수행하는 일입니다. 특검은 삼성특검과 이른바 이명박특검 두 가지가 걸려 있는데, 후자야말로 정치적으로 극도로 민감한 사안이지요. 원래 특검을 추진했던 사람들조차 혹시나 `국민의 심판`을 외면하고 기왕에 뽑아놓은 대통령을 흔들기부터 한다는 소리를 들을까 망설일 정도로 부담스러운 사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혐의의 중심에 선 후보가 큰 표 차로 당선되었으니 특검법안에 대해 대통령의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은 법리에도 안 맞고 민주주의 원칙에도 어긋납니다. 다행히 거부권은 행사되지 않았고, 당선자도 노무현 대통령의 결정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발언한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누가 이겼건 졌건, 표차가 크건 작건, 법적인 절차는 예정대로 밟는 것이 법치주의요 선진화의 바른 길입니다. 아니,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선거를 통해 당선된 후보자를 인정하고 가급적 좋은 대통령이 되게끔 도와주는 것이 민주시민의 의무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선거에서 확실히 이기기만 하면 모든 법적인 문제가 해소된다는 주장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이미 폐기된 학설과도 통하는 발상이 아니겠습니까. 쿠데타가 아니어도 부정선거나 관권선거라면 당연히 규탄해야겠지요. 물론 이번 대선은 비교적 돈 안 드는 깨끗한 선거였고 투·개표 과정도 극히 정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후보자의 기본적 자격에 대한 정당한 문제제기가 검찰권에 의해 봉쇄되고 왜곡되었다는 국민적 의혹이 특검 도입의 발단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대선 승리를 이유로 의혹 규명작업을 중단한다면 그것 자체가 새로운 관권개입이 될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이 사안은 너무나 극과 극의 대립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적당한 타협`이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혐의내용이 정치인들의 통상적인 거짓말을 훨씬 넘어 거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인 반면, 검찰은 깨끗한 무혐의 판정을 내려주었고 당사자는 자신의 BBK 창립을 자랑하는 육성 동영상이 공개된 뒤에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음`을 거듭 주장해왔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은 세부적인 사실이 어떻게 밝혀지건 문제가 심각하다는 판단 아래 선거과정에서 분명한 의견을 표명한 바 있습니다. 이는 저의 시민적 양식을 따랐을 뿐 아니라 전문가의 문제제기(조영선 <BBK사건의 실체와 부실수사>)도 감안한 판단이었습니다만, 만약에 철저한 재수사 끝에 이 판단이 틀렸음이 입증된다면 저 자신 당선자와 국민들께 사죄할 생각입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설혹 당선자가 기소되더라도 더 이상의 형사적 추궁은 불가능하리라고 전망되는 상황에서 최선의 길은 당선자 자신이 국민 앞에 `고해성사`를 치르고 취임하는 길일 것입니다. 그런 뒤에 더욱 겸손하게 국민을 섬기고 약속한 대로 서민생활을 개선한다면 그때야말로 과거를 묻지 말자는 것이 민심의 판정이 될 줄로 압니다.


*


이명박 당선자와 그 주위의 이론가들은 이명박 정부의 출범 자체가 이른바 87년 체제의 극복을 뜻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원칙한 실용주의에다 천민자본주의적 체질까지 고스란히 안고 출범하는 정부가 진정한 선진사회를 이룩한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당선자 스스로가 과감한 결단으로 국민을 감동시키고 이 사회 민주역량의 흔연한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이 역사적 과제는 다시 한 번 일반시민들의 무거운 짐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다만 87년 체제 극복운동은 이 체제를 출범시킨 ‘6월 항쟁’ 같은 군중동원보다 전문성과 지속성, 그리고 한반도 선진사회 건설을 위한 확실한 경륜을 갖춘 각계각층의 협동사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도 애독자 여러분의 건강과 건승을 충심으로 기원합니다.

<창비주간논평>

 

 

저자 소개

백낙청 / 서울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1938년생. 고교 졸업 후 도미하여 브라운대와 하바드대에서 수학. 이후 재도미하여 1972년 하바드 대학서 D. H. 로런스 연구로 영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6년 계간 『창작과비평』을 창간한 이래 편집인•발행인 등을 역임하며 분단현실의 체계적 인식과 실천적 극복에 매진해왔다. 서울대 명예교수, 시민방송 RTV 명예이사장,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상임대표,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인으로 있다. 저서로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1, 2 『인간해방의 논리를 찾아서』『민족문학의 새 단계』『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흔들리는 분단체제』『통일시대 한국문학의 보람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과 평론선집 『현대문학을 보는 시각』외에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21세기의 한반도 구상』등 다수의 편저서가 있다. 제2회 심산상, 제1회 대산문학상(평론부문), 제14회 요산문학상, 제5회 만해상 실천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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