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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인터넷뉴스 | 입력 2006-12-28 | 수정 2006-12-28 오전 8:14:12 | 관련기사 건
그러나 우리네 인생살이에서는 매년 무슨 날을 정해 놓고, 그 날을 계기로 지난날을 반추하고 앞날을 다짐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런 날 가운데 하나가 새해 새아침, 신정이요, 구정 곧 설이다.
예전엔 설이 하나였다. 바로 그 설날이 송구영신하는 날이어서, 이 날을 계기로 자신을 새롭게 다듬는 것을 당연한 법도요 절차로 여겼다. 다산도 계해년(1803) 첫날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군자는 새해를 맞이하여 반드시 그 마음과 행동을 한 번 새롭게 해야 한다”고 가르친 바 있다. 옛 사람들은 새해를 맞는 것은 기쁘지만, 어버이가 나이들어가는 것은 두렵게 여겼다. 이 비슷한 말이 논어 이인(里仁)편에도 나온다.
연하인사장은 친필로 써야 정이 느껴져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연하인사는 신정 때 하고, 과세와 세배는 구정 설날에 하는 것으로 정착되어가고 있다. 지금은 이메일로 하는 방법이 개발되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이맘때쯤이면 연하장이 한창 나돈다. 그런데 그 연하장이라는 것이 대부분 인쇄된 것이어서 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서명만은 친필로 한 것이 간혹 눈에 띄지만 너무 의례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적어도 제대로 된 연하장이라면 연하의 인사말도 자필로 쓰고, 겉봉의 주소도 친필로 적은데다 우표까지 제 손으로 반듯하게 붙여서 보내야 제격이랄 수가 있다. 거기다 연하인사말이 받는 사람을 즐겁게 해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것이 진정 모두가 받고 싶어 하는 연하장일 것이다.
70년대에 천관우선생이 꼭 그랬다. 78년이던가 그해 정초에, 선생은 엽서에 일일이 붓글씨로 ‘千人之諾諾 與一士之愕愕’(천사람의 좋다는 말이 한 선비의 직언만 못하다)는 사기 상앙열전에서 조량(趙良)이 한 말을 적어, 동아·조선투위의 후배기자들에게 보냈다. 그 연하장이 그때 고생하던 후배기자와 민주인사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과 격려가 되었는지 모른다.
주제넘게도 꽤 오래전부터 나도 이를 흉내내서 연하장을 앞앞 일일이 써서 보내는 짓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올해 연하인사장은 어떤 걸로 할까를 놓고 해마다 한바탕 고뇌를 하게 된다. 첫해에는 “날마다 새롭고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라고 썼다. 유가(儒家)에서 수기(修己)의 중요한 덕목으로 치는 “새로워라, 날마다 새로워라, 그리고도 또 새로워라”하는 가르침과 불가(佛家)에서 흔히 쓰는 ‘날마다 좋은 날’을 합성해서 만들었다. 이렇게 시작한 연하장 보내기가 해를 거듭하면서 이제는 내가 보낸 연하장을 해마다 모아둔다는 사람도 생겨났다.
좋은 싯구를 연하인사말로
몇 년 전에 우연히 김종길선생의 ‘설날 아침에’라는 시를 발견했는데 연하인사말로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나는 다섯 편으로 되어있는 이 시 가운데 한편을 골라 그 싯귀와 걸맞을 것 같은 사람에게 적어 보낸다. 나 혼자만 좋아하기는 너무 좋고 아까워 전편을 내 방식으로 쪼개 여기에 소개한다.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운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이 시의 전편, 아니면 그 가운데 한 편을 골라 그것을 내용으로 하여 연하인사장을 보낼 것을 삼가 권하고 싶다. 연하인사, 그것도 아름다운 시로 받는 정초의 기쁨이 얼마나 클 것인가. 우리가 서로 따뜻한 연하인사를 나눈다면 새해는, 그리고 세상은 그만큼 훈훈해질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아주 최근에 나는 또 하나의 주옥같은 글귀를 발견했다. 구상선생이 쓴 것으로 새해 연하장에 내가 주종으로 쓰는 글귀임을 고백한다.
새해 새아침이 따로 있다더냐
너의 마음안에 천진을 꽃 피워야
비로소 새해를 새해로 살 수가 있다
글쓴이 / 김정남
· 언론인
· 前 평화신문 편집국장
· 前 민주일보 논설위원
· 前 대통령비서실 교문사회수석비서관
· 저서 : <진실, 광장에 서다- 민주화운동 30년의 역정>
<영광함평인터넷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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