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강제징용 배상판결 인정은 시작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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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강제징용 배상판결 인정은 시작일 뿐”

정치부 김현정 기자  | 입력 2012-05-25  | 수정 2012-05-25  | 관련기사 건

“대법원 판결 일본 전범기업 기속력 없어 결국 ‘정치적. 외교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한 피해자들에 대해 일본 기업이 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 처음으로 나왔다.

 

 

지난 24일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 이근목(86)씨 등 9명이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기업 (주)미쓰비시중공업과 (주)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기각판결을 한 원심을 파기하고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전범기업 미쓰비시와 신일본제철은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지급하라!”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강제징용과 태평양전쟁 당시 원자폭탄 투하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린 이근목씨(86)등 5명이 ‘1억 100만 원씩을 지급하라’며 (주)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등 청구소송에 대해 승소 판결을 내렸다. 또 일본제철 후신인 (주)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여운택(89)등 4명이 ‘1억 원씩을 지급하라’는 청구소송에 대해서도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파기 환송했다.

 

전범 기업을 상대로한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을 인정한 판결이고 기존의 우리 법원의 입장과 다른 입장을 내놓아 향후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일본 정부와 일본 법원, 일본 기업의 입장과도 다른 판결로 외교적 문제 등 여러 입장이 얽혀 있어 많은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 돼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일제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 승소 판결은 처음 있는 것으로 1심과 2심 재판부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점과 일본 법원이 유사한 청구소송에 대해 기각 판결을 했는데 이를 부정할 만한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일본 기업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판결은 환영하지만...실익 있을까?”

 

일본최고재판소는 이와 동일한 청구 소송에 대해 배상불가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일제시대 강제 징용을 당한 피해 할아버지들과 일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피해배상을 받을 길일 열렸다며 환영을 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판결만으로 직접적인 피해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의 피해배상을 받는 실익이 발생하느냐에 대해서는 복잡한 절차와 외교적인 문제가 남아 있어 우려를 표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산적한 문제 해결에 대한 첫 걸음을 떼었지만 가야할 길이 아직 멀고 험난한 길이 놓여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시민모임 “일본 전범 기업도 문제지만 우리 기업도 문제, 전향적으로 입장 전환해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 이인순 사무국장은 25일 본지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며 “그동안 한국정부와 일본정부는 입장이 달랐다. 피해자들의 기업을 상대로한 개인청구권을 부정했는데 대법원에서 이를 인정했다”고 환영을 표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 20년 동안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징용에 동원된 피해 할아버지들이 70~80건에 달하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모두 패소판결을 받았다”며 “그런데 어제 대법원의 판결로 이러한 피해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이 새롭게 소송을 전개할 수 있는 판결이 나오지 않았을까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일본의 전범 기업들에 대해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는데 다른 쪽으로 생각해보면 한.일 청구권으로 인해 수혜 받는 한국기업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기업들도 일본의 전범기업과 연결되어 있다”며 “실례로 과거 피해자들이 포스코를 상대로 손배 청구를 한 적 있었다. 법원에서는 피해자와 포스코 간에 화해 조정 판결을 내렸으나 이를 포스코가 거부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 부분들도 이제는 우리 기업들이 다른 시각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나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기업들이 인식의 전환을 통해 재산 출현 등 공익을 위해 대승적인 자세로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별법’ 제정 논의...“그동안 특별법이 없어서 배상을 못 받은 게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법원의 이러한 판결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배상을 받을 수 있는 피해당사자 등이 아흔에 가까운 고령의 나이인 점을 들어 또 다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배상을 받기까지 충분한 시간을 장담할 수 없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산재해 있어 이 같은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특별법’제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사무국장은 “특별법이 이미 국내에 있다”며 “그러나 이 법은 생환자들이 권리의 당사자에서 배제되어 있었다. 돌아가신 분들의 유족들이 피해청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지원하는 법안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실제로 아직까지 살아계시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정확하게 배상 받을 수 있는 법률을 통해 유족이나 제3자 청구권을 인정받아, 배상의 권리를 위임 받아 청구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제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생환자들이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소송을 제기했다”며 “김 할머니는 이 소송이 인정되면 배상을 받고 그 배상금을 재단을 통한 공익 기금으로 출연해 전 세계의 전쟁 피해 여성을 위해 쓰도록 하겠다고 하셨다”고 했다.

 

그는 “이처럼 제3자에게도 그 권리가 현실적으로 법적 이양이 가능한지 변호사와 논의를 통해 법적절차를 받아 권리가 이양되도록 진행되도록 하겠다”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이 살아계실 때 보상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즉, 특별법은 이미 마련되어 있었으나, 실익이 없었다는 것이다.

 

“21세기에 국가배상은 안통한다,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통한 판결이 일본 정부와 기업에 대한 압박은 더 강할 것”

 

이에 대해, 숙명여자대학교 김용화 교수(법여성학)는 25일 본지 기자와 전화 통화를 통해 “이번 대법원 판결이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강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며 “한.일 협정의 효력이 소멸하지 않았다. 우리 대법원 판결이 일본 기업을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대법원에서 그 동안 입장과는 다르게 일본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의의는 있다”면서도 “배상 여부는 일본 기업이 결정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교수는 특별법 논의에 대해서도 “그동안 법이 없어서 집행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며 “이것이 국내문제라고만 한다면 한시적 특별법으로 배상을 요구할 수 있지만, 문제는 일본 기업이고 일본 기업이 우리나라 대법원 판결에 기속력을 가지지 않는다. 외교적인 문제도 얽혀 있다”고 말했다.

 

곧 법의 공백으로 그동안 문제해결이 안되는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궁극적으로 이 문제는 결국 외교력과 정치적인 문제로 풀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번 대법원 판결이 이행되기 위해 강구할 수 있는 방안은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길”이라며 “국제사법 재판소에 제소해 판결이 떨어지면 이것이 완전히 강제력이 있진 않지만 배상판결에 대한 압박감은 훨씬 강하다. 일본정부나 일본기업에서 완전히 무시할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예전에도 일본최고재판소를 통해 정부나 기업에 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그 당시 일본정부에서는 시민단체 비슷한 것 만들어 단체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며 “이처럼 21세기에는 국가배상은 안 통한다. 전쟁 후 곧바로 독일이나, 일본 등 전범 국가에 대한 배상 판결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이미 지금은 그 때로부터 너무 멀리 와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기업에 강제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강제할 수 없다”며 “시민사회에서 계속적으로 요구하고 압박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치권, “판결 환영한다, 일본 정부 입장 밝혀라!”

 

정치권에서는 일단 이 같은 대법원 판결에 환영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배상을 얻어 내기까지는 앞으로 계속될 절차가 남아 있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25일 국회에서 “어제 대법원 판결에 대해 우리 국민은 대단히 환영하면서도 그렇다면 위안부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생각으로 그 판결의 취지에 전적으로 동의를 한다”며 “우리 정부나 사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긍정적 검토와 그분들의 설움을 달래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법원은 일본 첫 판결에 대한 우리 입장까지 밝히고 있다”며 “일본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차례라는 것을 우리 민주당은 요구한다”고 일본의 공식적인 입장 발표를 촉구했다.

 

신경민 대변인은 25일 본지 기자와 통화에서 “어제 대법원 판결은 시원한 판결이었다”며 “한.일 협정 문제의 결함과 관련된 엄청나게 오래된 민원성 재판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재판부가 오래전에 길을 냈어야 한다”며 “외교와 법적으로 오래된 숙제로 남아 있었고, 앞으로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이 배상청구를 받을 수 있을 만큼 당장 해결이 가능한 판결인지는 약간 의문이 든다”며 “판결 뒤에 계속될 절차가 남아있고, 쉽지는 않은 문제다. 일본 판결에도 어긋나서 국제법적인 측면이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대법원 판결은 시작이다. 끝이 아니”라며 “국내.국제적인 법적,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정부와 기업은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라!”

 

통합진보당도 이날 대변인 논평을 통해 이 같은 대법원 판결에 환영을 표했다.

 

통합진보당은 “국내에서 소송이 시작된 지 12년 만에 징용피해자들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며 “특히, 대법원이 배상판결을 내린 근거로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가 불법’이라고 명시한 부분은 고무적”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판결이 강제징용 등 일제가 저지른 야만적 침략 행위로 희생된 피해자들과 원혼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며 “아울러 이번 판결이 한일 양국간 아픈 과거사를 딛고 일어서는 역사적 화해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일본정부와 기업들이 우리 법원의 판결을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부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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