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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인터넷뉴스 | 입력 2014-03-13 오후 05:50:27 | 수정 2014-03-13 오후 05:50:27 | 관련기사 0건
김흥순 / 자유기고가
재선에 성공한 미첼 바첼레트(Verónica Michelle Bachelet Jeria)칠레대통령
(1)선거 결선 투표서 중도좌파 미첼 바첼레트(62) 압승
(2)재선 성공
(3)군사정권 피해자 바첼레트 와 가해자의 딸 마테이 대결
(4)둘다 공군장성의 딸로, 친구 사이
(5)군사정권 피해자인 바첼레트 승리
(6)군사정권에 대한 국민의 '역사적 심판' 내려
(7)이념으로 갈라졌던 칠레 현대사 대변
(8)법인세 인상, 교육 향상, 헌법 개정 3가지 주요 개혁 실행
(9)검증받은 개혁여걸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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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칠레 대통령, 3월11일 취임한 미첼 바첼레트, 관저 향하며 카퍼레이드 |
뉴욕타임스(NYT)는 '실용적 좌파' 발전 모델로 칠레를 2008년 금융위기의 수렁에서 건져냈던 바첼레트가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또 한 번 대대적인 개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칠레대선은 흥미로운 선거였다.
두 후보의 대결은 대선 시작 전부터 국내외의 관심을 끌었다. 여론 조사에서도 줄곧 1~2위를 차지했고, 결선 투표까지 가는 승부를 펼쳤다.
두 후보의 정치적 이념은 달랐지만, 자라온 배경은 비슷했다. 바첼레트와 마테이의 부친은 모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사정권(1873~1990년)이 들어서기 전 무렵 공군 장성이었다. 두 후보도 어린 시절 친구 사이였다.
하지만 둘의 운명은 1973년 9월 11일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 이후 엇갈렸다. 피노체트가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리면서, 아옌데 전 대통령 편에 섰던 바첼레트의 부친은 군부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다가 숨졌다.
바첼레트와 어머니도 1975년 끔찍한 고문을 당한 뒤 호주로 도망쳤다가 동독을 거쳐 1979년에야 겨우 칠레로 돌아왔다. 반면 쿠데타 공모자였던 마테이의 부친은 피노체트 정권에서 장관을 지내며 승승장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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