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NLL을 남북대결의 무대로 삼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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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NLL을 남북대결의 무대로 삼을 것인가

고성 인터넷뉴스  | 입력 2007-09-12  | 수정 2007-09-12 오전 7:46:00  | 관련기사 건

한국전쟁 중인 1952년 9월 27일, 유엔군사령관 마크 클라크 대장은 유엔군측의 압도적 해군력을 바탕으로 서해상에 대북 해상봉쇄를 위한 클라크 라인을 발표했다. 그리고 전쟁은 1953년 7월 끝났으며 클라크 라인도 없어졌다. 북한과 유엔군은 클라크 라인을 대신할 수 있는 서해 경계선의 획정을 논의했다. 그러나 합의에 실패했다. 그사이 정전협정을 반대하는 이승만 정부는 북진통일을 주장하면서, 南北간의 우발적 충돌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 조성되었다. 그러자 유엔군은 남측의 북진을 막기 위해 클라크 라인을 계승하는 선을 다시 그었다. 그것이 오늘날의 북방한계선(NLL)이다.


그 선의 이름이 해상경계선, 해상 군사분계선이 아니라 북방한계선인 것은 바로 그런 사정 때문이다. 물론 정전협정에 존재하지 않는 선이고 북한에 통보하지도 않은 일방적인 것이다. 지금 해상 군사분계선으로 믿고 있을 만큼 NLL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름임에 틀림없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결코 남북을 가르는 분계선이었던 적이 없고 법적으로도 공고한 지위를 갖고 있지 않다.  


NLL은 군사분계선도 영토분계선도 아니다


정부는 "해상 불가침 구역은 해상 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조항을 들어 북측이 NLL을 인정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북측은 NLL 이남을 남한의 관할구역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 이렇게 북한이 NLL을 인정하고 있지 않은데 북한이 NLL을 인정했다는 주장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객관적 사실이 되지는 않는다. 정부의 일방적인 해석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NLL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섬과 섬을 직선으로 연결하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국제법적으로 합당한가도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바다에 대한 배타적 권리는 24해리를 넘을 수 없다는 국제해양법에도 불구하고 연평도와 소청도를 잇는 거리는 47해리나 된다. 안보상 필요에 의해 그런 예외가 허용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인데 설득력이 있는 것인지 논의해봐야 한다. 북한의 시비 없이 오랫동안 사실상 점유해왔으니 `응고의 원칙`에 따라 남한의 것으로 굳어졌다고 할 수 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북한은 끊임없이 이 선을 ‘침범’해왔고, 이 선의 `非法性`을 주장해왔다.


이렇게 NLL의 정당성을 흔드는 요인이 많지만, 남한은 서해를 지배해온 기득권을 갖고 있다. NLL을 해상경계선으로 간주하고 고수하겠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현실적·물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목숨 걸고 지키면 그만이다. 그러나 NLL을 신성불가침의 영토라고 해서는 안 된다. 법적으로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그렇다.


남북기본합의서에는 "남과 북의 해상 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NLL은 협상 대상인 것이다. NLL은 영토 개념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지구상 어느 국가도 자기의 고유 영토를 놓고 협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남북은 두 번의 서해충돌을 겪고 나서 남북장성급 회담을 통해 NLL 협의를 시작했는데 그것은 당연히 영토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NLL 협의라는 표현도 올바른 것은 아니다. `NLL 시비`라고 하는 게 타당하다. NLL을 대신하는 해상 군사분계선 설정을 논의해온 것이 아니라 NLL을 인정하느냐 마느냐만 되풀이했을 뿐이다. 남측이 군사분계선 설정 협의에 응해야 할 의무를 지키지 않은 결과이다.


이런 상태는 엄격히 말하자면 남측의 남북기본합의서 위반이다. 남측은 여러 차례의 南北간 군사실무회담, 장성급회담을 통해 북한이 먼저 NLL을 준수하고 남북기본합의서 상의 군사분야 합의를 이행하면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 해상 경계선 획정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혀왔다. 북한은 NLL은 非法的이므로 해상 군사분계선 설정을 우선 협의해야 한다고 주장해, 평행선을 달려왔다.


물론 이런 논의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전제조건이 붙기는 하지만, 남측은 해상 군사분계선 협의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북측도 당초 비현실적이던 경계선 안을 철회하고 기존의 NLL에 근접하는 새로운 경계선 안을 지난해 제시한 바 있다. 그리고 남북 모두 군사적 충돌 방지와 공동어로에 동의하고 있다. NLL을 인정하느냐 마느냐라는 합의할 수 없는 문제에 매달리고 있다는 점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남북 모두 새로운 분계선 협의 및 군사적 충돌 방지책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전이라면 진전으로 볼 수 있다.


NLL문제는 독도문제와 동일하다?


그런데 이 문제가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의제가 될 것인지를 둘러싸고 정치쟁점으로 부상하자 그런 진전의 싹까지 잘라버리는 왜곡과 후퇴의 부정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지난 8월 24일 "NLL문제가 남북정상회담은 물론 국방장관회담에서도 절대 다뤄져서는 안된다" "NLL 양보는 독도를 일본에 양보하는 것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면서 NLL문제를 독도문제와 동일시했다. 복잡한 논의가 당파적 이해에 따라 단순화되다 보니 이렇게 NLL을 사수할 것이냐 포기할 것이냐로 변질되고 말았다. 사수는 애국이요, 포기는 매국인 것처럼 초점을 잘못 잡으면서 기존 논의의 성과까지 전면 부정하는 퇴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실패하기를 바란다면, 남북대결시대로 돌아가기를 바란다면, NLL문제를 그렇게 묶어두어도 상관없다. 그러나 정상회담을 남북관계가 질적으로 도약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면,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는 적지 않게 발전했지만, 일정한 한계선을 벗어나지 못했다. 군사적 긴장완화의 벽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북한은 NLL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군사적 긴장이 지속될 것이고 그런 조건에서는 경협 확대에 필요한 군사적 보장조치를 취하기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다. 군사적 긴장완화는 평화를 위해서는 물론, 南北간 경협의 확대를 위해서도 필요해진 것이다. 남북관계가 이렇게 갑갑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과 달리 한반도 주변정세는 변하고 있다.


북핵문제가 진전되면서 북미관계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한반도의 주인인 우리가 NLL의 덫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운명이 우리 손을 벗어나 결정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처럼 남측의 `NLL 우선 존중`에 북측이 `경계선 우선 설정`으로 맞서는 한, NLL문제에 교착되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이것이 바로 NLL이 결코 군사적 신뢰구축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그 역순으로 가야 한다. 이미 남북은 여러 대안들을 제시한 바 있다. 그 하나가 공동어로수역 설정이다. 이장희 외국어대 교수는 5개 도서의 연안수역을 상호 인정하고 그 외의 수역은 공동어로수역으로 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공동어로수역 설정방법에 대해서는 南北간, 전문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원칙과 방향은 일치한다.


따라서 이런 제안들을 군사적 신뢰구축이라는 하나의 바구니에 담는 포괄적 접근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남북 양측이 그에 따라 실행해야 할 세부적인 행동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이 바로 그렇게 순서를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물론 정상들이 NLL을 직접 논의해서는 안된다. 포괄적인 방안에 관해 합의하면 된다.


우리 내부의 국경선부터 제거해야


그러자면 남측이 자세를 유연하게 변화시킬 것이 요구된다. NLL을 준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북측이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폐기하고, 대신 해상분계선 협상을 해야 한다. 협상을 시작한다는 것은 곧 남북이 군사적 신뢰구축을 시작했다는 의미이므로 새로운 국면을 여는 전기가 될 수 있다.


협상채널도 단 한번밖에 개최된 적 없는 남북국방장관회담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여러 차례 열려 이제 정례화 됐다고 할 수 있는 장성급회담을 활용하면 된다. 일부는 경계선 협의를 군사적 신뢰구축이 된 다음에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NLL문제로 신뢰구축이 안되는 현실을 무시한 도착된 논리에 불과하다.


협상을 한다고 해서 당장 NLL이 떠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너무 걱정할 것 없다. 전방의 미군 인계철선을 포기하면 북한이 남침하고, 용산의 미군기지가 이전하면 안보 및 경제가 붕괴하고,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면 안보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이들이 그런 걱정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남침이 없었고 경제가 붕괴하지 않고 안보가 위태로워지지 않음으로써 그 모두가 허위임이 드러났다. 그런데 NLL을 양보하면 수도권이 위험해진다는 말을 또 하고 있다. 안보는 총과 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NLL문제는 이미 해법이 거의 다 제시되어 있다. 문제는 논의 자체를 금기시하는 우리의 정치적 현실이다. NLL은 남북을 가르는 선이기에 앞서 우리 내부를 분단시키는 우리 안의 국경선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은 이 우리 안의 국경선을 먼저 제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저자 소개

이대근(李大根) :

경향신문 정치·국제에디터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향신문 논설위원 겸 국제부장을 맡고 있으며,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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