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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식 발행인 | 입력 2019-07-19 오후 04:13:05 | 수정 2019-07-19 오후 04:13:05 | 관련기사 건
한국에 대한 전쟁선언과 다름없는 일본정부의 수출규제로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이가 나빠지면서 이번 일을 일으킨 일본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반일 감정도 어느 때 보다도 거세져 일본 것은 사지도 않고 팔지도 않겠다는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날 아픈 과거를 떠올리면 우리의 마땅한 반응이라 하겠다.
하지만 지난날 한일 관계를 염두에 두고 반일감정을 이야기 할라치면 물건을 사고팔고 하는 정도가 아니라 더 근본이 되는 문제가 있는데, 바로 말과 언어의 문제로서 일제강점기 잔재들이 우리사회 생활 곳곳에 남아 있으면서 오랜 세월동안 우리 생각과 삶에 큰 해악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당장 지금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장차 나라말과 글과 생각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어서 더욱 중요하다.
이제 오늘의 일제 불매운동 못지않게 중요한, 반드시 바로잡아 떨쳐내야 할 일제 잔재인 말과 언어 문제를 짚어보려 한다. 물론 해결하고 바로잡아 나가야 할 일제 잔재의 말과 언어가 무수하지만 그 가운데 하나 좀 배웠다하는 사람들이나 사회지도층, 공직사회, 정치가, 신문방송 기자, 학자나 교수들이 자주 쓰는 ‘입장’ 이라는 일본말에 대해 짚고 고쳐나가고자 한다.
‘입장’이라는 말은 크게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
어디를 들어갈 때 쓰는 입장(入場)과 처지나 형편을 나타낼 때 쓰는 입장(立場)이 있다. 그런데 뒤에 나온 이 입장(立場)이 문제다.
‘입장(立場)’ 일본사람들의 발음으로는 ‘다찌바(tachiba)’라 하고, 쓸 때에는 중국글자 立場을 가져와 적고는 たちば(다찌바)로 읽는다. ‘선다’는 뜻의 중국글 立자에다 ‘마당’이라는 중국글 場자를 쓴 걸로 보아 ‘설 곳’이나 ‘서 있는 곳’ ‘처지’ ‘형편’의 뜻으로 쓰인 것인데 이런 일본말을 밑도 끝도 없이 ‘입장’이라고 다시 들여와 우리나라 방송기자, 학자, 정치가, 교수, 따위 잘 나간다 하는 사회 지도층들이 즐겨 쓴다는 점이 큰 문제다.
잘 생각해보자, 일본사람들이 立자와 場자 두개 중국 글을 빌려와 立場이라 적어놓고 읽기로는 ‘다찌바(tachiba)’로 읽고, 뜻으로는 ‘설 곳’이나 ‘서 있는 곳’ ‘처지’ ‘형편’ 으로 쓰는데, 우리나라는 ‘처지, 태도, 형편, 꼴, 모양, 주장, 사정, 생각, 조건, 의견, 신세, 견해’와 같은 여러 표현들을 싸그리 ‘입장’하나로 퉁쳐서 ‘입장 입장’ 이라며 바보 같은 짓들을 하니 어찌 오늘날 일본에서 우리를 얕잡아보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라의 말과 언어가 병들고 오염되면 배달겨레의 민족정신 따위도 다 없어지고 마는 거 아니겠나!
‘입장’을 얼마나 함부로 많이들 쓰는지 어제 7월 18일, JTBC 뉴스룸을 보면서 ‘입장’을 어떤 경우에 어떻게 썼는지 한 번 뽑아보고 입장이 아니면 어떻게 써야 올바른 표현이 됐을지 다시 고쳐 적어봤다.
심수미 기자
“~사태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 이런 원론적인 입장에만 합의를 했을 뿐~”
☞ “~사태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 이런 원론만 합의를 했을 뿐~” (굳이 입장 안 써도 된다)
윤설영 기자
“~내일 고노다로 외상의 입장표명이 예상이 됩니다.”
☞ “~고노다로 외상이 내일 주장을 밝힐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기업 자산의 현금화가 이뤄지면 대항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내일 당장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
☞ “~일본기업 자산의 현금화가 이뤄지면 대항조치를 취하겠다는 태도지만 내일 당장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
손석희 앵커
“~입장이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중재위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은 이미 청와대가 밝힌바가 있습니다.”
☞ “~가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중재위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은 이미 청와대가 밝힌바가 있습니다.”
이승필 기자
“~자유한국당 측에서 입장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구요,”
☞ “~자유한국당 쪽이 구체적인 의견을 밝히지는 않았구요,”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내일 원내대표 간 협의를 한 번 지켜보자" 이런 입장을 내놨습니다.”
☞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내일 원내대표 간 협의를 한 번 지켜보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내일 원내대표 간 협의를 한 번 지켜보자"는 태도입니다.”
☞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내일 원내대표 간 협의를 한 번 지켜보자"는 의견입니다.”
안나경 기자
“~어제 유니클로의 사과 입장이 나왔잖아요?”
☞ “~어제 유니클로가 사과했지 않습니까?”
☞ “~어제 유니클로가 사과문을 냈잖습니까?”
이가혁 기자
“~뒤 늦게 사과입장을 담은 보도도 나왔습니다.”
☞ “~뒤 늦게 사과문을 담은 보도도 나왔습니다.”
☞ “~뒤 늦게 사과하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이러 저러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이 입장입니다.
☞ "‘~이러 저러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이런 태도입니다.
☞ "‘~이러 저러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는 것입니다.
“~분명한 일본 본사의 입장이라고 밝혔습니다.”
☞ “~분명한 일본 본사의 뜻이라고 밝혔습니다.”
☞ “~일본 본사의 분명한 뜻이라고 밝혔습니다.”
“~언론보도로만 사과 입장이 전달이 됐습니다.”
☞ “~언론보도로만 사과문을 냈습니다.”
어쩌다 백성들이 다꽝, 다마네기, 와라바시라고 한 마디 하면 난리라도 난 것처럼 펄쩍펄쩍 뛰면서 일본말 쓰면 안 된다고 호들갑 떨던 배웠다하는 방송인들이나 기자들이 우리말을 오염시키는 일본말을, 그것도 요상한 일본말을 가져와 유식한 척 쓰면 방송을 보고 듣고 배우는 학생들이나 시민들의 말법이 어떻게 되겠는가!
말과 언어가 병들고 오염되면 우리 겨레 정신이 병들게 마련이다. 해괴망측한 일본말 ‘입장’이 들어갈 자리에 ‘처지, 태도, 형편, 꼴, 모양, 주장, 사정, 생각, 조건, 의견, 신세, 견해’ 따위를 쓰면 표현이 더 뛰어나 문장도 풍부해진다. 일본말 ‘입장’을 쓰지 않으면 꾸며주는 어구도 깔끔해지고 동사도 활기를 띄게 돼 있다.
어딜 들어갈 때나 입장(入場)이라고 쓰고 그 해괴망측한 일본말 입장(立場)은 쓰지 말자.
한창식 발행인 gsinew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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