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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식 발행인 | 입력 2020-05-11 오후 03:45:58 | 수정 2020-05-11 오후 03:45:58 | 관련기사 건
공공시설 안내판을 보면, 지난날에는 대부분 행정관청에서 대중을 계몽하기 위해 안내판을 써왔던 것이 사실인데, 시민의식이 상당히 높아진 오늘날까지도 대중을 계몽시켜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생각이나 습관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 한 예로 고성읍 남산공원 여기저기에 걸려 있는 팻말에 적힌 글귀들의 내용과 서술 방식을 보면 공원을 찾는 사람의 신분과 계층을 하나로 묶어 특정 계급이 일방으로 명령을 내리는 식이라는 점을 바로 알 수 있다.
지금같이 우리 사회 시민의식도가 높아진 때 이런 명령하달 식 팻말에다 우리 말법에 맞지 않은 글귀가 필요한지를 묻고, 또 고쳐야 할 부분은 고쳐야 한다고 지적 하려한다.
고성읍 남산 공원은 24,783명의 고성읍민들이 마음만 먹으면 한두 시간 안에 다녀올 수 있는 아주 유익한 시설이다. 주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지 통계를 내보지는 않았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남산 공원을 찾는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찾는 공원이라면, 시설물 하나를 설치하고 안내판 하나를 설치할 때에도 매우 신중해야 한다.
남산공원은 고성군 재산인 만큼 고성군 행정에서 시설하고 운영하게 되는데, 공원 여기저기에 있는 여러 가지 안내판을 보면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될 문장 오류들이 많아서 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남산공원을 늘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시간 여유도 있고, 건강도 지키고,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오르내릴 것이다. 한 마디로 생활이나 정신면에서 어느 정도 여유가 있으니 공원을 오르내린다 하겠다. 이런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계몽시키려 든다면? 누군가 나를 계몽시키려든다는 기분으로 공원을 오르내린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남산공원 곳곳에 걸려 있는 작은 팻말 속 글귀들의 잘못 된 점은 우리말법으로도 잘못 됐지만 공원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대놓고 그렇게 요구하고 말해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팻말 속 글을 사진 한 장 한 장씩에서 알아보자.
1. 가족의 행복은 웃음입니다.
아마 ‘가족이 행복하려면 당신이 늘 웃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는 뜻이거나, ‘가족이 행복하면 당신도 웃음이 난다’거나, ‘당신이 웃으면 가족이 행복해진다’는 뜻을 나타내고 싶은 것 같은데, 행복하지 않은데 웃음을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웃기만 하면 행복해진다고 할 수 있는가.
이렇게 지적하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지 무슨 꼬투리냐’고 말하겠지만, 바로 이런 걸 지적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오늘날 여러분들의 스마트 폰으로 이른 아침마다 ‘카톡 카톡’하며 들어오는 사진 한 장 속에 허황된 말들이 계속 실없이 넘쳐나게 된다는 거다.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 정보를 처리하는 것도 버거운데 이런 하나마나 한 글귀가 무슨 도움이 될까.
차라리 ‘소가야의 옛 이름은 고자미동국’ 같은 정보라도 적어두면 남산공원을 찾는 고성군민들은 평생 고성군의 옛 이름을 잊지 않고 곧 이어지게 되는 ‘가야사 복원’ 관련 일이 있을 때 더 관심을 두지 않겠나.
2. 넉넉한 웃음을 가지세요
이런 게 바로 대중을 ‘계몽시키는 대상’ 정도로 보는 대표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이런 글귀가 수많은 시민들이 오르내리는 공원 여기저기 걸려 있다는 점은 참 서글픈 일이다.
웃으면 웃는 것이지 넉넉한 웃음은 어떤 것일까. 활짝 웃거나 가볍게 웃거나 숨넘어가게 웃거나 할 수는 있어도 웃음을 어떻게 넉넉하게 웃는가. 3초 동안 웃지 말고 15초 동안 웃으면 넉넉한 건가?
웃음은 가지는 게 아니라 웃는 거다. 가질 수가 없다. 또, “~세요”체는 올바른 말법이 아니다. 반드시 “~십시오”라야 올바른 말법이다.
무엇보다도 ‘웃는 량’까지 간섭하며 시키려고만 하는, 시민들을 계몽시키려고 하는 생각을 버려야 할 일이다.
‘한 때 고성군 속에는 지금의 거제시와 통영시가 포함되던 시기도 있었다’고 알려줘 고성군민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편이 차라리 더 나을지도 모른다.
3. 용서는 사랑의 완성입니다
‘용서’는 지은 죄나 잘못한 일을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덮어 주는 것이 용서인데, 낱말의 올바른 뜻을 가볍게만 생각한 결과 이런 터무니없는 글귀를 만들어 낸 걸로 보인다.
용서가 사랑의 완성이라니? 예수그리스도도 울고 갈 허무맹랑한 소리에 가깝다.
나라살림을 거덜 내고 천문학적인 국민들의 세금이 오간데 없는데 덮어두고 용서하자고? 당장 내 자식이 폐인이 됐는데도 덮어주자고? 꼭 단죄해야 마땅한 일에는 마땅히 죄를 물어야 한다. 말장난도 유분수다.
우리나라 연극계에 ‘빨간 피터의 고백’을 발표해 한 때 모노드라마계를 풍미했던 사람이 경남 고성 사람 ‘추송웅’이라고 알려주는 게 차라리 더 낫지 않을까.
4. 부정적인 언어는 폭력이에요
‘부정적인’의 ‘~적(的)’은 완벽한 일본말(일본식 한자어)로서 이를 우리 말법으로 바꾸면 ‘부정하는’이 되겠다. 그래서 글귀를 고쳐 쓰면, ‘부정하는 언어는 폭력이에요’가 된다.
이런 것이 바로 남을 가르치려드는 것의 표본이다. 부정하면 안 된다. 저항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고약한 심성이 보이지 않는가. 거기다가 부정하면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같단다!
10월 유신을 부정하면 잡아다 고문하고 폭력으로 족치고 감방에 쳐 넣어버리던 국가권력의 횡포야말로 계몽을 가장한 폭력의 표본이었다. 아니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어야 하고, 맞으면 ‘맞다’고 긍정할 수 있어야 민주사회다. 너무나도 얼토당토않은 글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글귀다!
고성군은 동경 128도와 북위 35도와 34도에 걸쳐 있다고 알려서 모든 군민들이 고성군의 지구과학상 위치와 한반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상식처럼 알도록 하는 게 차라리 더 났지 않을까.
5. 마음의 무게를 가볍게 하세요
아마도 ‘골치 아픈 생각, 어려웠던 일들 다 잊고 편하게 하라’는 생각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남산공원에 오르는 사람들이 모두가 힘들고 고되고 걱정거리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글귀는 참으로 뜬금없기 짝이 없다. 앞에서도 한 번 이야기 했지만 아침이면 스마트폰 SNS 앱으로 어김없이 허황되고도 관념 투의 글귀들이(이른바 ‘좋은생각’ 따위) 넘쳐나는데, 공원 산책을 나와 마주하는 글귀가 생뚱맞다면 좋았던 기분마저 잡칠 수도 있겠다.
‘마음의 무게’란 말도 얼토당토 않는데다 이런 글귀로 공원을 오르내리는 사람을 다스리려고 하는 생각 자체가 매우 위험한 것이다. 정말로 누군가에게 도와주는 말을 하고 싶어서 한다면 ‘마음 편하게 하시고 잘 쉬었다 가십시오’ 정도나 ‘편한 마음으로 다녀가십시오’ 정도면 남산공원을 가꾸는 고성군 행정이 군민들에게 하는 말로 받아들여질 만하다.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우리나라 명령체에는 ‘~하라’ ‘~해라’ ‘~시오’ ‘~십시오“가 있을 뿐이지 ’~세요‘는 올바른 말법이 아니다.
고성군의 진산은 천왕산인데 높이가 582m에 이르며 고성읍 북쪽에서 대가면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알려줘 고성군민이면 상식처럼 알도록 하면 차라리 낫지 않을까.
6. 남의 잘함을 칭찬하세요
그래도 명색이 관공서에서 만들어 걸어놓은 말 팻말인데 이런 말법을 쓸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매우 궁금하다.
아마 ‘누군가 잘하는 일이 있으면 칭찬해주자’는 뜻으로 걸어 놓았으리라. 한 때 고성군에서는 ‘칭찬하기’바람이 불어 고성군 행정이 특별위원회를 뒀을 정도였으니 고성군민들이 칭찬에 참 인색했나보다.
‘남의 잘함’이라... 도대체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말을 하고 글을 쓰면 이런 말법이 나올까. 기가 막힌다. ‘남이 잘하면 칭찬합시다’는 내용이겠지. 얼마나 칭찬에 인색하면 이런 것까지 걸어두고 칭찬하라고 재촉할까. 남이 잘하는 걸 보고도 칭찬하지 않는다면 인성이 그런 것인데 이를 어떻게 뜯어고치겠는가. 아니, 우리가 그렇게 칭찬에 인색하게 살아서 저런 걸 걸어두고 분발을 촉구할 정도로 그런가? 솔직히 웃기지 않은가?
고성군민이면 알아둬야 할 소중한 고성사람만의 정겨운 사투리 하나 소개하고 두루 쓰게 하면 차라리 더 좋지 않을까.
7. 고정관념을 버리세요
공원에 산책하러 온 사람이 맞닥뜨리는 글귀가 ‘고정관념을 버리세요’라니. 생각해보면 이거 참 생뚱맞지 않나. 이런 투의 말법은 특정한 계급이 어떤 집단을 통제할 때 쉽게 뱉는 말투가 아닌가. 사회 일반에 고질처럼 돼 있던 고정된 관념이 있다면 풀어야 할 경우도 있고 사람에 따라 고집해야 할 때도 있다. 나아가 어떤 집단이나 계층에게는 ‘고정관념’이 반드시 필요해서 그 고집을 버리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공원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묶어서 이런 글귀로 가르치려 들고 시키려 들지 말아야지.
8. 웃으면 건강과 행복이 옵니다
우리가 진리만 듣고 보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이런 가벼운 글귀 정도는 뭐 어떻냐고 하겠지만 힘들게 사는 사람들한테는 이런 것조차 자신들에게는 조롱거리로 다가올 수도 있다. 웃기만 하면 건강과 행복이 오는가? 이런 따위는 TV프로그램에서 홍보용으로 가볍게 주장할 수 있는 글이지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시민들에게는 주장할 만한 것이 못된다.
9. 부자되세요, 행복하세요, 건강하세요
이런 식의 가볍게 날리는 글귀는 어떤 개인이 운영하는 가게나 상점, 영업점 따위에서나 볼 수 있는 글귀지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곳에서 쓰고 알리는 말글로서는 적합하지 않다. 더 다른 말이 필요 없다!
얼마 전 고성경찰서가 여성들과 어린이들이 자주 오가는 공원 같은 곳에 자신들이 위급할 때 위험을 막을 수 있는 요령이 담긴 생활호신술을 안내 하는 것이 차라리 더 좋지 않을까.
10. 반갑습니다
딱 이거 하나 쓸 만하다!
한창식 발행인 gsinew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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