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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인터넷뉴스 | 입력 2013-11-27 오후 08:36:20 | 수정 2013-11-27 오후 08:36:20 | 관련기사 0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일찍이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하신 말씀이다. 우리 정부가 한국사를 대입 수능필수 과목에서 제외 한다 만다 하며 갈팡질팡하는 오늘,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이에 고성인터넷뉴스에서는 기존의 교과서와 제도교육에서는 배우지 못할 재미있고도 풍부한 역사적 고찰을 함께하는 역사기행을 제주 역사교실 김철헌 선생의 도움을 받아 연재하기로 한다.
김철헌의 삐딱한 역사이야기(1)
- 단군신화에 대한 해석과 남성문화
김철헌
제주 역사교실 교사
역사가의 입장에서 보면 시조를 둔 민족만큼 부러운 게 또 있겠는가? 시조가 있으므로 기원과 역사의 시작은 분명하니까 말이다. 다만 그렇게 분명한 시작은 역사가나 역사를 공부하는 우리들에게 의지할 만한 출발점도 주지만, 그와 더불어 커다란 숙제도 안겨준다. 출발점 자체를 해명해야 할 뿐 아니라 그 이전의 역사는 미궁에 빠져 버리기 때문이다.
▲ 김철헌 제주 역사교실 교사
우리나라 최초의 건국신화(建國神話), 국조전설(國祖傳說)로 원시시대부터 민간에서 구비(口碑)로 전해 내려왔으나, 가장 오래된 기록은 13세기말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史)에 실려 있다. 지금 남아있는 역사적 기록이 그렇다는 것이다.
『위서』(魏書)에는 단군 임금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이라는 국호를 썼으니 중국 요(堯)와 같은 시대(B.C. 2333)라고 돼 있다. 고기(古記)에 의하면, 환인(桓因)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이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할 때, 환인이 그 뜻을 알고 천부인(天府印) 3개를 주어 다스리게 했다. 환웅은 3천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마루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신시(神市)를 열고 여러 신과 세상을 다스렸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명(命)·병(病)·형(刑)·선(善)·악(惡) 등 무릇 인간의 360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했다.
위의 기록을 재해석하면 이렇다.
한반도는 산지가 많아 농경에 적합한 자연 조건이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물이 필요한 논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그 당시 높은 농사 기술과 물의 안정적 공급이라는 사회적 인프라가 절대 필요한 요소였다.
청동기의 발달은 세력의 집중을 가지고 온다. 타 부족과의 전쟁과 연합 등의 과정을 거치며 힘의 크기는 커져간다. 그 힘을 바탕으로 노동력을 확보하고 저수지를 만들었다. 단군은 이런 기술을 가지고 있던 집단의 지도자라 하겠다.
그 당시 선진 문화권인 중원 문화에서 밀려나 한반도로 들어오면서 논농사의 기술을 가지고 온 것이다. 바람과 비와 구름의 통제는 논농사의 필수 요소인 것이다.
기후가 따뜻한 곳이라면 논농사를 짓는데 큰 어려움이 없으나 당시 한반도는 논농사를 짓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계절의 변화를 알아야만 가능한 일이 논농사였다. 환웅은 한반도로 들어오면서 역법을 가지고 온 것이다. 지금이야 달력이 흔하나 그 당시는 천체운행을 모르면 달력을 만들 수가 없었다. 이를 바탕으로 단군은 고조선을 건국하고 백성을 다스렸다.
환웅은 3천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마루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신시(神市)를 열고 여러 신들과 세상을 다스렸다. 이때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자 해 환웅은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만으로 100일간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참을성 많은 곰만이 삼칠일(三七日)을 견뎌내 사람이 됐고(熊女), 환웅과 결혼해 아들을 낳으니 그가 곧 단군이다. 단군이 평양에 도읍해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하고, 뒤에 아사달에 천도해 1,500년 간 나라를 다스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당시 여러 부족들이 서로 경쟁하며 생활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곰이나 호랑이를 우상으로 섬기는 부족 등이 존재했고 환웅은 곰 부족과 연합해 호랑이 부족을 누르고 지도자가 된 것이다.
환웅은 곰 부족의 여인과 결혼하고 여기서 태어난 이가 단군인 것이다. 그 후 우리 역사는 곰과 호랑이를 신성시 여겼고 지금도 프로야구단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단군이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과 논농사를 전했다는 것은 이후 한반도의 역사적 성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단서이다. 단군은 인간의 신분이므로 한 민족의 시조가 되기에 큰 거부감이 없다. 그리고 논농사는 땅에서 이뤄지므로 정착이 필요한 것이다.
이 둘의 조합은 조상숭배와 수렵과 채집이라는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는 정착생활을 가져온다. 오늘날 이 문제는 공동체라는 긍정적 요소와 남성 중심의 기형적 문화를 낳게 하는 모태가 된다.
그 후 유교의 전래와 함께 조상숭배는 효라는 가치로 전환시켰고, 남성중심의 노동은 여성을 천대시하는 모습으로 변했다. 문제는 지금은 많이 희석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여성을 천대시하는 남성중심의 문화가 현대까지 대단히 크게 잔존한다는 것이다.
여성에게는 없는 남성호르몬은 근육을 강화시키기에, 여성과 남성의 노동력 차이는 확연히 다르다. 이렇듯 노동력이 대단히 중요한 농경사회에서는 남성 중심일 수밖에 없었다. 또 대를 이어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논과 밭, 농경의 기술을 물려받는다. 그리고 당연히 호적도 남성의 계보로 이어받는 역사가 생겼다.
지금은 논농사에서도 기계화를 이룩해, 노동력 절감을 가지고 왔으나, 여전히 논농사에서 남성의 노동력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대사회의 직장, 생활문화에서 일어난다.
호주제가 없어졌다 하더라도, 인권이 중요시되고 여성의 권익이 성장하는 사회발전과정 속에서 남성중심의 문화와 여성권익향상의 추세가 충돌한다. 농경문명이 많이 사라진 현대에도 남성문화 중심의 그 흔적이 크게 남아있기에, 남성중심의 문화는 현대사회에서 사회적, 인권적인 측면에서 문화적 충돌을 많이 일으킨다는 것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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