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로스쿨이 바꿀수있는 사법의世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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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로스쿨이 바꿀수있는 사법의世界

고성 인터넷뉴스  | 입력 2007-08-05  | 수정 2007-08-05 오전 9:47:02  | 관련기사 건

사법부의 결정으로 완고한 국어학자들의 고집을 꺾은 경우라고 해도 될까. 호적부에 성씨를 `유`에서 `류`로, `나`에서 `라`로 표기할 수 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또 다른 형태의 `두음법칙`이 깨질 분야가 하나 더 생겼다. 이제 이 땅에서도 법과대학이라는 오래된 권위의 이름이 점점 사라지고 로스쿨이란 외래어가 그 자리를 차지할 전망이다.


우리 사회의 영어강박증과는 무관하게, 로스쿨이란 말은 사람들의 입에 너무나 익숙하다. 이미 십수년 전부터 떠들어대던 제도개혁 화두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로스쿨이란 단어는 사법개혁과 함께 항상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의 제도 속으로 빨려들어오고 말았다. 비록 법학전문대학원이란 고리타분한 공식명칭을 달고 있지만, 독일에서조차 그렇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로스쿨이라 부를 것이다.   


로스쿨, 사법개혁의 키워드


로스쿨이란 법과대학을 대체할 교육기관을 말한다. 따라서 로스쿨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지난날의 법과대학 교육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데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따지다 보니 그뿐만이 아니다. 엄격하게 정한 소수의 정원을 고시로 뽑아 사법연수원이란 국가기관에서 법률실무를 교육하는 제도는 판에 박힌 예비관료만 양성하는 셈이었다. 그곳을 나온 인재들이 제각기 변호사나 판사나 검사의 길로 헤어져도 국민의 눈에는 다들 특별한 계급적 지위를 누리는 전통과 관행의 직업인으로 비칠 뿐이었다. 그래서 로스쿨 도입은 사법제도 개혁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열쇠처럼 여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스쿨의 축대가 지난 세월 동안 땅 위에 서지 못하고 공중에서만 떠돈 까닭은 불안한 열정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법률가의 수를 마구 늘려놓으면 이 나라 법률문화의 수준이 저급한 황색 주간지처럼 바닥으로 추락할까 우려한 법조인들의 견고한 보수적 충정이 매번 개혁의 창날을 막아냈다. 그 싸움은 간헐적이고도 지리하게 계속되었는데, 그야말로 한순간에 승부는 결정되고 말았다. 늘 그렇듯이, 국회는 법안을 통과시켜 마술사처럼 로스쿨을 실물로 가져다놓았다. 우연과 필연이 마구 섞인 이 투쟁과 정치적 타협의 산물은 어떤 찬반의 억측에도 불구하고 우리 앞에 놓이게 되었다.


정원 동결에 갈급하는 보수적 충동


꿈속의 속도는 느리지만 현실의 시간은 다르다. 시계와 달력은 인간을 재촉하는 습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내후년 봄에 문을 연다면 일년 반 남짓 남은 시간은 촉박하다. 올가을이면 로스쿨 설치를 원하는 대학들의 인가신청부터 받는다. 이 무더운 여름에 경향의 법과대학 교수들은 휴가도 연구도 모두 잊은 채 준비에 부산하다. 교육목표를 정하고, 교육과정을 만들어 내세워야 한다. 급한 대로 다음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이런저런 형태로 실무교수나 겸임교수도 초빙해 구색을 갖추어야 한다. 이렇게 더위도 잊고 준비에 몰두하면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 로스쿨 법안이 통과됐다고 설립에 관한 논란이 종식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도 어느 정도 준비를 해야 로스쿨 인가를 받을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 우리 실정이다.


로스쿨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가 로스쿨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 앞서 있다. 본질의 요구가 아무리 절실해도, 기득권의 이해관계가 얽힌 제도의 형식을 앞지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여전히 매년 배출하는 변호사의 수가 쟁점이다. 로스쿨 정원이 늘어나면 거의 그만큼 변호사 수도 증가할 것이라는 법조인들의 불안한 열정은 물러서지 않는 방패다. 그래서 새 제도 안에서 법학교육을 어떻게 하느냐보다 로스쿨 정원을 어느 선에서 동결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다.


고정된 정원에 구애받지 않는 자격시험을


어차피 도입한 로스쿨이라면 그 설립과 운용의 목적이 무엇인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경험으로 익히고 이성적 토론으로 정리한 사법제도의 근본적이면서도 포괄적인 문제들을 충실하고 효율적인 법학교육을 통해 해결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전국 법과대학 정원을 무시한 채 터무니없이 로스쿨의 정원을 축소해서는 안된다.


"현재 법과대학의 교육과정이 법학자와 법률가를 길러내기 위한 것이라면, 로스쿨 교육과정은 실무변호사를 양성하기 위한 제도다." 로스쿨 개원을 앞두고 한국법학교수회 사무차장 안효질 교수(고려대)가 한 말이다. 바로 그 말대로 하면 된다. 앞으로 변호사는 철저한 자격시험을 통해 배출해야 한다. 자격시험이란 고정된 정원을 염두에 두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자격을 부여하는 일도 금물이다. 그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임무를 담당할 곳이 로스쿨이다. 과정만 충실히 이행하면 국가가 요구하는 변호사 자격을 갖출 정도로 멋진 법학교육을 해내는 것이 로스쿨의 임무다.


과도기 혼란 각오하고 원칙에 충실해야


하지만 매사가 그렇듯이 장밋빛은 그리 선명하지 않다. 십여년 전 우리 사회에서 사법개혁과 로스쿨 도입을 처음 주장한 사람들이 지금은 조심스럽게 침묵으로 일관하는 사정도 간파해야 한다. 억지로 끌려가도 곤란하지만, 들떠서 나서도 로스쿨의 건물은 위태롭다.


자격의 기준만 결정되면 변호사의 수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변호사의 과다 배출로 인한 과도기적 혼란은 미리 예상하고 각오해야 한다. 그 정도는 참고 넘어가자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변호사나 판사를 로스쿨 안으로 끌어들인다고 실무교육이 된다는 착각에서도 깨어나야 한다. 기초교육이든 실무교육이든, 철저한 이론적 지식의 바탕 없이 잘 가르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로스쿨 입학식 날짜가 달력의 숫자판 위에 어른거리는데도 따져 해결해야 할 일은 엄청나다. 이때 서로의 피로감을 덜 수 있는 방안의 하나는 이것 아니겠는가. 사법개혁의 순조로운 달성을 위한 로스쿨을 만들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고정관념의 집착과 이해관계의 타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원칙을 다짐하는 노력 말이다.

 

저자 소개


차병직(車炳直) | 변호사

변호사,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이화여대·서울대 강사. 저서로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춤추어라』 『인권』 『시간이 멈춘 곳 풍경의 끝에서』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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