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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헌 / 살아 있는 역사교실 운영자 | 입력 2020-09-26 오전 09:49:03 | 수정 2020-09-26 오전 09:49:03 | 관련기사 건
김철헌 / 살아 있는 역사교실 운영자
우리는 태어나서 이름을 갖게 되고 남에 의해 불리며 살아간다. 모든 사람의 이름엔 부모의 꿈과 희망이 담기기도 하며, 가문이나 스승의 염원이 들어가기도 한다. 이런 큰 뜻도 담기나 지금 기준으로 보면 웃음이 도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형제들은 ‘신’자를 돌림자로 하여 네 형제가 중국 전설속의 인물들에서 이름자를 따왔다. 큰 아들은 희신(羲臣)으로 고대 중국의 전설 속 인물인 복희(伏羲)에서 따왔고, 둘째는 요신(堯臣)으로 요임금이요, 셋째가 순 임금에서 따온 순신(舜臣)이었다. 요순(堯舜)시대를 닮은 태평성대의 시대를 살아가기를 바라는 염원이 들어있다. 막내는 보나마나 우신(禹臣)이다. 우왕에서 따왔다.
당송 팔대가에는 소순의 가족이 들어 있다. 아버지 소순(蘇洵)은 두 아들의 이름을 수레에서 따왔다. 수레(車) 앞턱의 가로나무인 '식(軾)'은 별로 하는 일이 없어 보이지만 없으면 완전한 수레가 될 수 없으므로 손상을 입지 않도록 관리를 받는 것이기 때문에, 직설적이고 강경한 성품 탓에 화를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의미로 소식의 이름을 지었고, 수레자국을 뜻하는 '철(轍)'은 세상의 모든 수레가 남기는 것이지만 수레의 이로운 점을 논할 때 잘 거론되지 않고, 수레가 전복되고 말이 죽는 사고가 나도 바퀴 자국에는 화가 미치지 않으므로 성격이 유순하고 남의 기분을 잘 이해하는 소철이 큰 고난을 겪지 않을 것이라 예견하여 철(轍)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소철은 형 소식 못지않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명이자설(名二子說)에서-
이 후 고려에도 식과 철이 등장하는데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金富軾)과 그의 동생 김부철(金富轍)이다. 대문장가로 이름을 높이라는 아버지의 의지가 보인다. 김부식은 정지상과의 악연으로 평가절하 된 측면이 있으나 당대의 대문장가인 것은 사실이다.
아래의 시는 우리가 잘 아는 고려시대의 이조년(李兆年)의 다정가(多情歌)이다.
이화(梨花)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은 삼경(三更)인데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인양하여 잠못들어 하노라!
이조년의 형제는 다섯으로 백년(百年), 천년(千年), 만년(萬年), 억년(億年)순 이다. 보통 수의 순서로 일식이, 이식이, 삼식이 하는데 이조년의 아버지는 형제들의 이름을 수의 단위로 지었다. 무병장수를 기원한 듯하다.
조선 초기에 그림과 글씨로 유명한 강희안(姜希顔)은 안회(顔回)의 이름에서 ‘안’을 동생 희맹(希孟)은 맹자(孟子)의 ‘맹’을 따서 지었다. 아버지는 유학의 성인들을 본 받길 바랐다. 차마 공자(孔子)의 ‘공’은 따기가 어려웠나보다.
자(字)는 지금은 잘 쓰지 않으나, 조선시대 까지는 썼다. 근대 이전의 형제간의 서열은 백(伯), 중(仲), 숙(叔), 계(季)로 나누었다. 이는 유교 경전인 좌전에 근거를 두고 있다. 사자성어중 형제의 우열을 구부하기 힘든 경우를 난형난제(難兄難弟) 또는 백중지세(伯仲之勢)라는 말을 쓴다. 여기서 백중(伯仲)은 본래 형제간의 서열인 첫째와 둘째를 일컫는 말이다. 맏이는 백(伯), 둘째는 중(仲), 셋째는 숙(叔), 막내는 계(季)로 썼다.
자는 보통 ‘관례’에서 지어지는데 관혼상제(冠婚喪祭) 중 ‘관’이 지금의 성인식이라 보면 될 것이다. 즉 스물이 되어 이름(성명)과는 별개로 자(字)를 받는데, 백중숙계의 서열로 자를 삼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자(字)만보고도 그 집 형제의 서열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백이(伯夷), 숙제(叔齊) 고사에서 백이는 첫째였고, 숙제는 셋째였다. 공자의 자는 중니(仲尼)였다. 물론 집안에서 둘째였다. 특히 삼국지의 등장인물들이 자가 많이 알려져 있다. 위나라의 조조의 자는 ‘맹덕’, 촉의 제갈량은 ‘공명’, 관우는 ‘운장’, 장비는 ‘익덕’, 조운의 ‘자룡’,은 모두 자가 유명한 경우이다.
오나라 초대 황제인 손권 형제는 형 손책은 백부(伯符)이고, 둘째 손권은 중모(仲謀)였다. 삼국시대 이후 진(晉)나라를 세운 사마의의 자는 중달(仲達)인데 중달(仲達)은 많은 형제 중 둘째였다. 맏형 사마랑은 백달(伯達)이고, 나머지 형제들은 달을 돌림자로 해서 계달(季達), 현달(顯達), 혜달(惠達), 아달(雅達), 유달(幼達)이었다. 그들은 여덟 형제였고, 사마팔달이라 불렸다.
이름이나 자 이외에 호(號)가 있는데 이름이나 자 보다 한결 가볍고, 자유스러우며 스스로 지을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성리학의 창시자인 주희(朱熹)의 호는 회암(晦庵)인데 이를 고려와 조선의 대표적 성리학자들이 썼다. 고려에 성리학을 들여온 안향은 회헌(晦軒)으로, 조선의 이언적은 회재(晦齋)로 썼다. 성리학자들은 때가 되어 나가는 것을 ‘출사(出仕)’, 나가지 않는 것을 ‘은거(隱居)’라 했다. 여기서 고려 말 삼은(三隱-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이라는 호가 나왔다. 조선 후기 화가 장승업은 뛰어난 선배들인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호를 따라 ‘나도 원이야!’를 외치며 ‘오원(吾園)’으로 지었다. 호가 많은 추사 김정희는 오백 개가 넘었다. 김구의 백범(白凡)은 스스로 낮추어 백정(白丁)과 범인(凡人)에서 한 글자 씩 따왔다.
김철헌 / 살아 있는 역사교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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