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참패, 촛불정신 포기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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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참패, 촛불정신 포기에서 시작되었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정치학  | 입력 2021-04-22 오후 04:20:12  | 수정 2021-04-22 오후 04:20:12  | 관련기사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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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정치학

 

4월 초에 치러진 보궐선거는 여당의 참패로 끝났다. 이제 내년 3월로 예정된 대선까지 전국적 관심을 모을 만한 선거는 없고 그때까지 민심의 흐름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도 없다. 이번 선거결과에 대한 해석이 큰 정치적 의미를 가지게 되는 이유이다.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이 공세에 나선 것은 당연하다. 정부여당의 잘못이 적지 않은 점을 부정할 수도 없다. 여당은 선거과정에서 이미 국민에게 사과한다는 발언을 여러차례 했다.

 

잘못이 있다면 이를 사과하고 고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더욱이 선거결과가 참패로 나온 현실 앞에서도 겸허한 반성과 치열한 성찰이 없다면 정치적 미래는 없다. 필자도 작년에 퇴행적 비판에 위축되거나 물러설 필요는 없지만, 촛불혁명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는 면에 대한 비판에는 스스로의 문제점과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고 이를 발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소통해야 한다”(보수의 평행이론이 실패하는 이유, 창비주간논평 2020.10.7)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선거가 시작되기 직전까지도 자신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하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갑자기 사과를 하고 용서를 비는 방식에서 진정성을 보기 어렵다는 데 있다. 특히 책임 있는 정치세력이 무엇을 사과하는지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한 채 밑도 끝도 없이 사과를 한다고 나서는 것은 구태에 가깝다. 결국 선거에서 참패한 이후에는 본질에서 벗어난 조국 교수 논란으로 보수세력이 짜놓은 프레임 속에서 허덕대는 모습만 보여주고, 당내 선거를 통해 어느새 어물쩍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려 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간간이 사과를 언급할 때도 촛불혁명의 정신에 비추어 자신의 잘못을 평가하려는 태도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최근 불만의 대상이 된 몇몇 정책을 조정하는 것으로 사과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민생을 이야기해야겠지만 동시에 이를 우리 사회의 대전환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지 못할 경우 민생을 어렵게 만드는 더 중요한 문제들은 뒷전으로 밀리게 되고 결국 민생의 개선도 어렵게 된다. 대전환에 대한 상상을 차단하는 것은 보수 프레임의 핵심이기도 하다.

 

상황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민주당이 보이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촛불혁명을 계승하겠다고 공언하던 정부와 여당이 알게 모르게 촛불정신과 거리를 둔 지는 꽤 오래되었다. 그 원인은 두가지다. 하나는 촛불혁명을 자신들이 권력을 얻는 일과 동일시한 태도이다. 촛불혁명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사람들의 의지를 어떻게 모아낼지, 촛불혁명에 담긴 요구들을 어떤 방식으로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논의는 턱없이 부족했다. 오히려 촛불혁명이 퇴보해서는 안 된다는 열망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활용했다. 당헌 개정으로 이번 보궐선거 공천의 길을 연 것도 그런 사례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20204월 총선에서 선거법 개정의 취지를 사실상 무력화시키고 선거를 극단적인 양자대립 구도로 몰아가게 만든 비례위성정당 창당이 촛불세력 내 균열을 본격화한 출발점이었다. 민주당이 다른 정치세력들도 촛불혁명의 중요한 주체라는 인식이 확고했다면 이 문제들에 다른 접근이 가능했을 것이다.

 

한국과 한반도가 혁명이라고 지칭할 만한 대전환의 시기를 맞았다는 데 대한 자각이 부족한 점도 문제다.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강조했던 것처럼 촛불혁명에서 혁명은 어떤 급진적 행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대전환에 대한 요구와 이를 지속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은 개념이다. 이러한 인식을 갈고닦는 데 게으르니 점차 혁명이라는 단어의 과격성만 의식하게 되고 촛불혁명과 거리를 두면서 점차 갈 길을 잃는 상황이 출현한 것이다. 작년 총선 대승은 여당에 또 한번의 기회를 주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 힘을 대전환에 값하는 의제와 그 실현을 위한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실행하는 데 사용하기보다는 목표와 프로그램이 분명하지 못한 검찰개혁에 소모했다. 이런 비판에 검찰개혁은 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대응한다면 이 역시 성찰과는 거리가 먼 태도이다. 개혁의 추진 방식, 중점에 대한 논의가 검찰개혁을 하느냐 아니냐 식의 물음으로 치환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 만큼 선거 패배에도 불구하고 촛불혁명의 정신을 다시 들고나올 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 지점이 앞으로 일어날 정치변화에 대한 불안감을 증가시키고 현재 여당에 신뢰를 갖기 어렵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다. 앞으로도 촛불혁명은 정당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계속 대면하게 될 텐데 민주당은 모호한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민주정부 3, 4기 운운하는 것도 민주화에 여러 방식으로 기여한 다른 이들을 존중하지 않는 오만한 태도이자, 촛불시대가 그 이전과는 다른 각오와 새로운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한 인식의 부족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스스로도 계승을 공언한 촛불혁명이라는 플랫폼을 떠나서 일견 참신하게 보이는 아이디어만으로 상황을 타개하려 시도하는 것은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을 지탱하는 기반을 강화하고, 자신의 행동이 촛불혁명의 요청에 부합하는가 아닌가를 따져가며 한발 한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고서는 내년 대선에서 촛불혁명이 큰 좌절에 직면할 수 있다. 내년의 새 정부가 단순히 민주당 집권의 연장이 아니라 촛불정부 2기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는 이들에게 촛불혁명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다시 표를 줄 이유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어디서부터 그런 신뢰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할 것인가? 무엇보다 촛불정부 1기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촛불정신에 부합하는 개혁의제를 분명하게 설정해야 한다. 불평등 해소, 균형발전, 한반도 평화, 생태 등을 주요한 방향으로 삼아야 한다. 개혁을 특정 정치세력의 이익을 위한 구호로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촛불혁명의 대의를 함께했던 사람들을 비롯해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해가는 길로 제시하고 동참을 호소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여당이 기득권을 버리고 열린 논의공간을 만드는 일에 나서야 한다.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민주당 대표 경선과정부터 이러한 의지가 표명될 수 있다는 기대는 과도한 것이겠지만, 적어도 이에 대한 문제제기들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이 일은 민주당에만 맡길 일은 아니다. 촛불정신의 계승을 바라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다양한 방식으로 촛불정부 2기를 구상하기 위한 논의와 협력이 진행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정치학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정치학 gsinew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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