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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인터넷뉴스 | 입력 2008-05-02 | 수정 2008-05-02 오전 8:13:41 | 관련기사 건
교과서포럼의 이름으로 나온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기파랑)가 발행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해 평해왔다. 필자도 《역사비평》 2006년 여름호에 <교과서포럼의 역사인식 비판>이란 글을 발표했는데, 2년 전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중언부언하지 않는 선에서 몇 마디 적어보겠다.
기억을 상기해보자. 2004년 조선일보가 나서서 현행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특히 금성출판사판 교과서가 친북좌파, 곧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에서도 이를 받아 정기국회 때 같은 논조로 노무현 정부를 몰아세웠다. 그리고 2005년 1월 교과서포럼이 출범했다.
학문적 논의의 대상에 대해 일부 언론과 한나라당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이념적 파상공세를 하던 분위기에서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단체가 출현한 것이다. 이러한 환경적 요인은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으며, 공세논리는 `대안교과서`를 바탕으로 더욱 확대 재생산되고 있어 학문적 토론을 벌이는 데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현행 고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6종)는 친북좌경?
그동안 교과서포럼 측은 모두 여섯 차례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때 비판의 초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현행 교과서의 친북좌파 성향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대안으로 내세운 역사인식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오늘의 대한민국사만을 서술하고 북한을 배제하는 역사서술체계로 드러났다.
현행 고등학교 교과서는 1997년 12월에 고시된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2001년 12월 검정을 신청하여 합격한 4종과 그 이듬해 검정을 통과한 2종이 있다. 현행 교과서는 한나라당이 집권여당일 때 만든 교육과정에 의거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훼손하면 검정에 통과할 수 없었다.
실제 6종의 교과서 중 어디에서도 일제강점기 민족운동사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중심성을 부정하고 김일성 등의 항일무장투쟁을 부각시키고 있지 않다. 김일성 등의 항일무장투쟁에 대해서는 서술 분량조차 `대안교과서`보다 적은 것도 있다. 1948년 8월 성립한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정통국가로 인정한 교과서도 없다.
현행 교과서는 한국현대사 서술의 기본 축, 곧 분량의 배치와 평가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중심에 두고 있다. 요컨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훼손한 현행 교과서는 없다.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이승만 띄우기
`대안교과서`는 오늘날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발전과 시장경제의 성장과정을 역사적으로 해명한 교과서임을 자임한다. 그리고 이를 실현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개화파를 계승한 이승만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는 "조선왕조시대와 외래 근대문명의 접합과 융합을 상징하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고, "미국이 냉전체제하에서 한국에 걸고 있는 이해관계를 미국에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외교적 지렛대로 활용함에 있어서 당대의 어느 누구보다 탁월한 외교적 수완을 발휘"한 인물이며, "국제공산주의 세력의 도전을 물리치면서 대한민국의 이념적 기초를 자유민주주의로 확고히 다"진 인물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서 미국의 동아시아정책과 대한(對韓)정책 그리고 미·소 대결과 냉전이 좌우대립보다 훨씬 더 강한 규정력으로 작동했다. 이승만의 역할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현행 고교 역사교과서가 일국사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중요한 대목에서 국제관계를 도외시하는 것이다.
또 남한 단독정부 수립과정에서 이승만의 활약을 부각시키는 반면에, 김구 등의 활동에 대해서는 시선도 주지 않는다. 북한의 역사도 `한국 민족`의 역사에서 배제하고 있다. 교과서포럼 측이 말하는 `한국 민족`과 북한이 말하는 `김일성 민족`은 한반도를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보려 한다는 점에서도 공통적일 뿐 아니라, 민족이란 이름으로 상대방을 배제하고 자신만을 부각시킨다는 점에서도 같다. 다른 것 같으면서도 같은 것이다.
`건국의 제1공로자`로서 이승만을 띄우려는 노력은 1945년 8월 이전 이승만의 행적에 대해 지나치게 과장되고 사실을 왜곡한 서술로 이어진다. 이승만은 1919년 2월 윌슨 미국 대통령에게 국제연맹에 의한 위임통치를 요청했고, 나중에 이것이 알려지면서 임시정부가 분열하는 원인을 제공했는데, `대안교과서`에서는 이에 대해 전혀 주목하지 않는다.
신채호 등 뻬이징 지역 민족주의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 그를 호되게 비판하며 거리를 뒀는데, 개화파를 계승한 이승만의 노선에 신채호가 참여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심지어 이승만에 비판적이었던 사회주의자 이동휘도 동참했다고 기술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이승만이 1925년 임시정부에서 탄핵당한 것은 임시의정원 내에서 안창호 세력 등 `반이승만 세력`과 `1925년 고려공산당 당원`이 우세했기 때문이 아니다. 통합 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서 임시정부를 지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안교과서`는 임시정부의 계승성을 강조하면서도 <건국강령>으로 압축되는 임시정부의 지향점을 이승만정부가 어떻게, 어느 정도 계승했는지도 따져보아야 하지만 언급조차 없다.
`대안교과서`에서는 개화파,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자와 명성왕후 세력 등은 제외하고 갑신정변 세력 등만을 전통문명과 서구문명의 융합과 전환을 이끌어온 사람들로 부각시킨다.
그러면서 이들과 결을 달리했던 동학농민운동에 그다지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다. 동학농민운동은 "유교적인 근왕주의에 입각하여 서민의 경제생활을 안정시키고자 했던 복고적인 개혁의 성격이 강"한 운동이었다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한 민중의 동기와 바람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오지영의 《역사소설 동학사(歷史小說東學史)》가 제1차 사료는 아니지만 쓰여진 과정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간단히 무시할 수 없는 사료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일방적으로 비판하며 소수의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다.
최소한 `교과서`를 지향했다면 그것이 동학농민운동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 아주 중요한 사료이므로 이 같은 다른 견해도 함께 소개하는 섬세한 배려가 필요했다. 현행 교과서보다도 균형감각을 상실한 대목이다.
서술의 균형과 역사학자
`대안교과서`에 대한 평가는 아주 다양하다. 일본의 대표적 우익 교과서인 후소오샤(扶桑社)판의 한국 버전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고, 엘리뜨 중심주의, 경제중심주의, 결과지상주의, 국가주의가 드러난 교재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일일이 동조하지 않는 이도 있겠지만, 친북좌파적인 현행 교과서를 비판하며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내놓은 교과서 역시 균형감각을 상실했다고 공통되게 지적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한국사를 전공하는 역사학자가 참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라고 비판하는 것은 지나친 독과점 의식이지만, 자신들이 기초적인 사실조차 얼마나 많이 틀렸는지도 모르는 가운데, 사실을 어떻게 다루며 서술체계를 짜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여러 군데서 문제점을 드러낸 책이 `대안교과서`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다른 한편에서 `대안교과서`의 등장은 대한민국에 새로운 정통성을 주장하는 `교과서`가 나올 가능성이 추가되었다는 정치적 의미도 있다. 현재 한반도의 분단체제에서는 임시정부 정통론과 항일무장투쟁 정통론이 경쟁하고 있다.
임시정부 정통론은 개화파만을 앞세운 채 동학농민운동과 의병운동을 홀대하지도 않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내에서 이승만의 역할보다 김구 등의 활약을 더 강조하면서도 1930년대 만주지역에서 활동했던 한국독립군과 조선혁명군이란 민족주의 무장단체를 배제하지도 않는다. 더구나 이동휘, 김일성 등 사회주의운동 계열의 민족운동을 개념 없이 무작정 부각시키지도 않는다.
역사교육의 목적이 사회구성원의 역사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현재와 미래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구성원간의 정신적 공감대를 마련하는 데 있다고 한다면, `대안교과서`는 정말 대책 없는 `교과서`이다. 구성원간의 대결의식을 부추기는 책이기 때문이다.
저자 소개
신주백 / 국민대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
국민대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 『미래를 여는 역사』의 기획•집필에 참가. 주요 저서로 『1930년대 국내 민족운동사』 『1920∼30년대 중국지역 민족운동사』 『분단의 두 얼굴』(공저)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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