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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인터넷뉴스 | 입력 2008-08-13 | 수정 2008-08-17 오전 8:52:18 | 관련기사 건
최근 이명박 정부와 보수인사들은 대한민국 60년의 기적적인 성취를 기리는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8·15 기념일을 `광복절`에서 `건국절`로 바꾸자고 한다. 정부도 이번 8·15 기념식을 `건국 60주년`에 중점을 두고 치르겠다고 한다.
반면 광복회, 임시정부기념사업회 등 독립운동 관련단체들은 이러한 처사가 `광복`의 의미를 무시하고 독립운동의 역사적 역할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역사를 이분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근대사회를 구성하는 두 요소인 산업화와 민주화를 분리하여 이를 선후관계로 이야기한다.
즉 한국현대사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병행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으며, 억압적인 정권하에서 산업화가 먼저 이루어지고 이를 토대로 민주화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산업화와 민주주의 중 무엇이 우선적이며 더 중요한지를 사람들에게 묻는다.
이분법적인 역사논리는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광복`과 한국인 스스로 통치권력체를 수립하는 `건국`을 분리하여 그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묻는다.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에서 이 두 가지가 어떻게 분리되어 이야기될 수 있을까?
`광복`과 `건국`이 싸운다
광복과 정부수립이 이분법적으로 인식되고 서로 그 중요성을 다투는 상황은 정말 새로운 일이다. 광복과 정부수립 기념일은 최근까지 무리 없이 공존하며 함께 기념되었다. 일반적으로 8월 15일은 광복절로 기념되었지만 정부수립도 주로 10년 단위로 함께 기려졌다.
신문기사를 검색해보니 1958년 8·15 기념식은 "광복절 13주년 겸 정부수립 10주년"으로 치러졌고, 박정희정권 때인 1968년, 1978년 모두 같은 방식으로 기념행사가 진행되었다. 물론 공식 기념식 명칭에서는 광복절이 항상 정부수립 기념일에 선행했다. 광복과 정부수립의 의미가 서로 분리되어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는 논쟁 같은 것은 없었다.
`건국절`을 제안하는 사람들은 또한 `광복`이 독립운동으로 달성된 것이 아니라 연합군이 2차 대전에서 승리한 결과로 얻어진 것이니 큰 의미가 없다고 한다. 따라서 광복보다는 3년 후 1948년 8월 15일에 있었던 대한민국 정부수립 선포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이러한 논리에 독립운동 관련단체들이 반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식민지와 분단을 겪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근대 국민국가의 수립 문제는 기본적으로 복잡할 수밖에 없다.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되고 주권을 지켜가는 문제(광복), 분단된 상태이지만 각자 스스로의 국가 통치체제를 형성하고 이를 발전시켜가는 문제(국가건설), 남북 두 국가의 화해와 협력을 증진하고 궁극적으로는 분단상황 자체를 극복하는 문제(통일), 이 세 가지가 기본적으로 함께 이야기될 수밖에 없다.
분단극복 문제의 실종
실제 역대 대통령들은 광복절 축사에서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여 당면의 국가적 과업을 해결하자고 강조해왔다. 또한 1970년대 데땅뜨 이후부터 광복절 기념식은 대통령이 대북관계 개선과 통일문제 해결을 위해 각종 제안을 하는 자리가 되기도 했다.
특히 정부수립이 10년 단위로 함께 기념되는 광복절에는 더욱 그러했다. 1978년 8월 15일 박정희 대통령은 중단된 남북대화에 북한이 다시 응할 것을 촉구하면서 광복절을 맞이하여 대북 선전방송을 하루 동안 중단하는 등 상징적인 조치를 취했다.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으며,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은 새로운 대북 포용정책의 원칙을 설명하고 핵문제로 교착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특사교환을 제안했다.
그런데 작금의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의 특징은 남북관계 개선이나 통일문제에 대한 강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기념사업을 주도하는 인사들은 분단문제의 해결을 강조하는 사람들에 대해 대한민국 `건국`의 의미를 분단국가의 수립으로 폄하하고 있다며 공세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들에게 분단문제의 해결방식은 대단히 간단하다. 완벽하게 실패한 국가 북한은 이제 사라져 기적적인 성공을 거둔 국가 대한민국에 통합되는 것이다.
1970년대 데땅뜨 이후부터 남과 북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해왔고 상당한 성과도 거두었다. 이러한 성과는 남과 북이 통일의 가능성은 남겨두면서도 서로의 국가적 실체와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그런데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분단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남북간의 상호인정이라는 가장 기초적인 부분조차 흔들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분단문제를 보는 시각이 군사정권기를 넘어 이승만 정권기로 회귀한 듯한 인상을 준다.
근대 국민국가 이후의 기획과 준비는?
21세기를 시작하며 우리는 `광복`과 `건국`이 싸우는 정말 난감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이라는 문제가 완전히 종결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는 쟁점임을 실감하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의 사고 자체가 근대 국민국가 차원에만 머무를 수는 없다. 한 시대에는 하나의 과업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근대의 온전한 완성이라는 문제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또한 근대 이후를 기획하고 준비해가는 문제도 있다.
최근 발생한 촛불시위는 국민국가에 대한 새로운 성찰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우리에게 제기하고 있다. 촛불시위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 때문에 발생했고, 시위과정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구호가 외쳐지는 현실을 들어 여전히 한국의 사회운동은 민족주의적 성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피상적이다.
우리는 촛불시위를 통해 정치나 사회경제적 쟁점만이 아니라 생활과 건강 또는 이와 관련된 환경이라는 생태적인 문제도 우리 사회에서 커다란 쟁점을 형성하고 시민의 행동을 유발할 수 있음을 보고 있다. 이러한 생태적 문제들은 국민국가 차원만으로 해결될 수 없고, 그야말로 全지구적인 차원의 시각과 대응이 필요한 문제이다.
일부 논자들은 촛불시위를 보며 정당정치와 대의민주주의 제도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 제대로 정착되지 못했음을 개탄한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한 의사소통,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대중 참여와 저항의 방식을 볼 때 여기에는 근대 대의민주주의 제도가 담아낼 수 없는, 그것을 이미 낡은 것으로 만들고 있는 정치참여의 새로운 방식이 또한 싹트고 있다.
근대 대의정치 제도의 틀을 넘는 새로운 상상력도 필요한 것이다. `광복`과 `건국`이 다투는, "국가의 기적적인 발전"만을 강조하는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이 추진되는 지금의 현실은 이러한 새로운 가능성의 기획과 준비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놀라운 역사의 퇴행능력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래 과거 독재정권시기에나 벌어질 일들이 다시 발생하면서 한국사회가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최근의 국방부 금서목록을 둘러싼 파동 등이 대표적이다.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을 통해 과거의 극단적인 반공논리, 체제경쟁논리가 다시 복원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과거로의 회귀는 독재정권기를 넘어 해방 직후의 상황으로까지 가고 있는 느낌이다. 해방 직후 대한민국 정부수립은 남쪽의 보수우익세력도 모두 참여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민족주의적인 성향의 김구, 김규식 세력은 정부수립에 참가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이러한 상황이 건국 60주년 기념사업 과정에서 똑같이 재연되고 있다. 대부분 보수적인 성향의 독립운동 관련단체 인사조차 보수집단이 주도하는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에 커다란 의구심을 피력하며 반발하고 있다. 정말 완벽한 해방 직후 상황의 복원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60년 전 민족문제와 좌우 이념대립 문제가 교차되며 발생했던 극단적인 갈등의 역사를 생동감 있게 직접 체험하도록 만들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기적(奇蹟)이다. <창비주간논평>
저자 소개
홍석률 /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 한국사
저서로 『통일문제와 정치사회적 갈등: 1953~1961』, 주요 논문으로 「1968년 푸에블로 사건과 남한·북한·미국의 삼각관계」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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