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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인터넷뉴스 | 입력 2008-09-10 | 수정 2008-09-10 오후 2:00:24 | 관련기사 건
그러한 관제언어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작가의 체질이다. 그래서 과거 군부독재시절에 적잖은 작가들이 필화(筆禍)를 입었다. 거짓으로 무장한 역대 독재 권력들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철권으로 진실의 말을 말살하려고 했던 것이다.
나찌정권의 문화상 괴벨스, 분서갱유의 언론탄압으로 악명높은 그는 언론을 통한 대중조작의 명수였다. 그는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 의도적 거짓말로써 대중조작, 여론조작을 한 최초의 정치인이었다.
그가 말하기를,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아니라고 부정하다가, 그다음에는 설마 그럴까 하고 의심하다가, 자꾸 되풀이해서 듣다 보면 끝내는 믿게 된다라고 했다.
5공, 6공의 군부독재가 대중에게 유포한 관제언어는 괴벨스의 언어와 똑같은 성격의 것이었다. 태생부터 권력의 나팔수였던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날이면 날마다 관제언어를 읊조리며 대중조작, 여론조작에 앞장섰고, 신문들 중에 처음에 비판적이었던 동아와 조선도 유신 말기에 이르러 권력의 회유에 굴복하고 만다.
그렇게 해서 권언(權言)복합체가 생겨난다. 지금 우리 사회의 여론이 틀린 판단을 하고, 부평초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천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이 방송과 주류 신문들이 날마다 실어나른 관제언어의 효과인 것이다.
괴벨스가 말한 것처럼,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다가, 그다음에는 의심하다가, 나중에는 자꾸 듣다 보니 세뇌되어 믿게 되었던 것이다.
관제언어와 상품언어가 횡행하는 세상
이렇게 관제언어만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특히 작가들의 절망과 고민은 컸다. 특히 광주항쟁 이후 세상은 공포로 가득한 암흑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암흑과 공포가 작가의 상상력과 용기를 격발시켜주었으니, 좋은 작품들이 그때 많이 창작되었다.
생각하면 그때가 작가에게는 오히려 좋은 시절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거짓이라고, 진실이 아니라고 외치는 글을 피 말리는 두려움 속에 쓸 때의 그 짜릿한 쾌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보다 더 강한 관제언어가 나타났으니, 기업들의 상품언어가 바로 그것이다. 87년 6월 항쟁 이후,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의 기치 아래 급격하게 조성된 소비향락적 상품문화로 인하여 상전벽해의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이제 대중은 단순한 상품소비자에 불과한 존재로 취급받는다.
예컨대 배꼽티를 발명한 자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다. 정권의 프로퍼갠더보다 더 강력한 관제언어가 상품언어다. 군사독재는 물리적으로 억압했지만, 상품은 한없이 부드러운 촉수로 달디달게 영혼을 녹여버린다. 그래서 기존의 모든 사회운동이 급격히 힘을 잃었다.
작가들도 실의에 빠졌다. 피투성이 싸움으로 파시즘의 관제언어를 물리쳤던 문학은 그러나 새로운 관제언어의 공세 앞에서는 맥을 출 수 없게 되었다. 범람하는 상품의 홍수가 만들어내는 갖은 현란한 이미지와 교언영색(巧言令色)의 소음이 소비자들의 혼을 빼앗고 인간 본연을 지키려는 문학은 뒷전으로 몰아냈다. 그때부터 문학이 지리멸렬해졌다.
모든 것은 상품화되어 거짓말 프로퍼갠더와 함께 자본이 흥청거리는 자유시장의 장바닥에 벌려졌다. 이 시장은 돈이 돈을 먹고, 개가 개를 먹고, 인간이 인간을 먹는 아수라의 투전판이다. 80% 대 20%의 빈부 양극화, 그 20%가 여론을 주무르고 나머지 80%는 거기에 이끌려 가기 십상이다.
가난한 자들은 반지하 골방에서 가진 거라곤 텔레비전 리모컨 하나이건만, 그들의 분노, 그들의 절망은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은 철저히 배제되고 삭제되어 있다. 인간 본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인간의 대의, 정신적 가치들을 지켜야 하는데, 그것들마저 보호되지 않은 채 더러운 장바닥에 나와 있다. 모든 가치들은 시장 소유의 비율에 따라 선택되고 버려진다. 삶과 죽음도, 선과 악도, 명예와 불명예도 더러운 시장의 논리에 맡겨져 있다.
소비자일 뿐인 대중은 국회의원을 뽑을 때도, 포장이 잘된 상품을 선호하듯이 속내야 어떻든 겉치레가 화려한 자를 고른다. 이러한 사회가 조만간 거덜나리라는 것은 이미 외국에서 정평이 난 진단이다.
여론독점을 위한 정권과 보수언론의 방송침탈
물론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들이 있긴 하지만, 시장의 엄청난 소음에 묻혀 일반에게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때를 당하여 방만한 상품문화 속에 시들어가는 정신적 가치들을 옹호해야 할 주류 보수신문들은 (그래야 진정한 보수일 텐데)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자유시장 만세를 구가하면서, 소비대중의 경박한 기호에 영합해 겉치레만 번드르르한, 그래서 잘 팔리는 언론상품을 내놓고 있다.
그들은 단지 기업씨스템을 보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에 대한 대중의 안목을 어둡게 만들어버린다. 6월항쟁 이후에도 그들은 권력에 유착했던 과오를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오, 좋았던 옛날이여!" 하면서 여전히 극우보수적인 자기 체질을 굳건히 지켜왔다. 그들은 군부독재정권들로부터 특혜를 받아 막대한 자본을 축적했는데, 그 자본을 가지고 여론시장을 독과점하기에 이르렀다.
먹고살기에 바빠 자신이 처한 자본주의 현실과 역사의 문맥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대중을 무뇌인간으로 만들면서, 그들은 시대의 현실을 왜곡하고 역사의식이 부재한 저질 언론상품을 제공해왔다.
그중 가장 중요한 테마상품이 색깔론과 지역감정일 텐데, 계속 확대 재생산해온 그러한 언론상품들이 끼친 해악은 여기서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여론은 천박하고 부패해져 시장바닥의 쓰레기 썩는 냄새가 나게 되었다.
그래서 부패를 막는 항체언론이 필요하다. 그런 신문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여론에 이렇다 할 영향력을 가지기에는 턱없이 힘이 모자란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KBS와 MBC의 존재였다.
역대 군부정권의 영혼 없는 나팔수였던 이 지상파 방송들은 6월항쟁을 계기로 구각을 탈피하고 진실한 의미의 공영방송을 지향하면서 성장해왔다. 그런데 지금 이 방송들에 위기가 닥쳐왔다.
대중의 공익을 위해 존재하는 공영방송을 자신의 전리품으로 생각하는 이명박정권이 법을 유린하면서까지 방송침탈을 획책하고 있다. 이들은 공영방송을 다시 관영방송화하고 민영화함으로써 관제언어와 상품언어의 본산지로 만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주류 보수신문들도 이 침탈작전에 함께 가담하고 있다. 이 정권을 자신들이 만들어냈다고 자부하는 그들은 완전한 여론독점을 위하여 신문·방송 겸영의 야욕을 펼치려 하고 있다. 새로운 권언복합체가 형성되었다. (물론 기업씨스템을 포함해서 권산언복합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주류 보수신문들이 지상파 방송까지 갖게 되면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될 것이고, 그 어느 정권보다도 더 목청 높여 신자유주의를 고창하는 이 정권과 한몸 되어 여론시장을 영원히 지배하려고 할 것이다.
권언복합체의 여론시장 지배가 두렵다
정권은 당대적이고 일시적 존재일 뿐이다. 일시적인 것에 의해 정의가 파괴되고, 사익에 의해 공익이 침해되어서는 안된다. 언론사 같은 어떤 특정한 집단에 의해 이 사회의 보편적 가치가 침해되어서도 안된다.
권언복합체에 의한 여론시장의 영원한 지배, 이것은 결코 관념이 아니다. 바로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은 강력하게 제지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결말을 반드시 낳고야 말 것이다. 어찌 두려운 일이 아닌가!
아, 아름다운 말을 골라 써야 할 작가가 이렇게 사나운 발언을 해야 하는 지금은 과연 어떤 시대인가! <창비주간논평>
저자 소개
현기영 / 소설가
1941년 제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아버지」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고, 제5회 신동엽창작기금(1986)과 제5회 만해문학상(1990), 제2회 오영수문학상(1994)을 받았다.
제주도 현대사의 비극을 지속적으로 다뤄오면서 중후한 문체로 오늘의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그의 작품들은 깊은 울림과 감동을 준다.
소설집으로 『순이 삼촌』(1979) 『아스팔트』(1986) 『마지막 테우리』(1994), 장편으로 『변방에 우짖는 새』(1983), 『바람 타는 섬』(1989) 『지상에 숟가락 하나』외에 수필집 『젊은 대지를 위하여』(1989) 가 있다.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자문위원. 전 문예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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