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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인터넷뉴스 | 입력 2008-10-15 | 수정 2008-10-15 오후 4:19:36 | 관련기사 건
바로 인터넷 악성 댓글 때문이란다. 물론 근거는 전혀 없다. 그녀가 자살 직전에 남겼다는 메모 쪽지나 문자 메씨지, 가까운 사람들의 증언 그 어디에도 악성 댓글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아무렴 어떠랴. 언론이 그렇다는데. 근거 따위는 필요 없다.
언론이 일제히 그렇다고 써버리니까, 그것도 몇날 며칠을 반복해서 계속 그렇다고 주장하니까 그냥 그 자체가 기정사실화되어버렸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냥 그렇게 믿어버린다. 언론의 마법, 놀랍지 않은가?
분명 최진실 씨는 악성 댓글에 많이 시달렸을 것이다. 하긴 그게 어찌 그녀만의 일이겠는가? 대한민국 톱스타급 연예인치고 악성 댓글공격 한번 안 당해본 사람이 어디 있으랴. 반면 최진실 씨는 수많은 네티즌 팬클럽으로부터 열렬한 찬사도 한 몸에 받았을 것이다. 그 역시 어찌 그녀만의 일이겠는가?
대한민국 톱스타 연예인치고 인터넷에 팬클럽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이런 것이 바로 인터넷 공간이다. 무자비한 악성 댓글과 열렬한 찬사가 공존하는 그런 곳이다. 물론 악성 댓글은 나쁘다. 악성 댓글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계속 양산되고 있는 것도 분명한 현실이다.
악성 댓글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먼저 너무나도 중요한, 그렇지만 종종 그냥 지나치는 두가지 근본적 의문부터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법적 규제로 악성 댓글을 없앨 수 있을까
첫째, 악성 댓글의 기준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누가 정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 어떤 음식점이 맛도 없고 써비스도 엉망이더라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이것은 악성 댓글일까, 아닐까?
식당주인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심각한 악성 댓글이다. 자칫 소문이 퍼지면 영업에 큰 지장을 줄 테니까. 하지만 글쓴이의 입장에서는 또 다르다. 자신의 솔직한 소견이며 정당한 비판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소비자들을 위한 유용한 정보제공 행위일 수도 있다.
이처럼 어떤 글이 악성 댓글인지에 대한 판단은 대부분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악성 댓글에 대한 객관적 기준이란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을 누가 임의로 정할 수도 없는 일이다.
둘째, 악성 댓글이 정말 인터넷의 익명성 때문인가의 문제이다. 많은 사람들이 악성 댓글은 익명성의 가면 뒤에 숨은 무책임한 악플러들의 만행이라고 거의 무비판적으로 믿고 있다.
이번 최진실 씨 자살사건 역시 익명의 악플러들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살인자라고 지목받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악플러들은 익명의 가면 뒤에 숨어 있을까? 사실은 이와 많이 다르다.
최진실 씨를 비롯해 유명 연예인들을 겨냥한 악성 댓글이 주로 올라오는 공간은 당사자들의 미니홈피와 포털 및 언론사 뉴스게시판이다. 미니홈피는 진작부터 완벽한 실명제로 운영되는 공간이며, 포털 및 언론사 뉴스게시판도 작년부터 법적으로 실명제가 의무화된 공간이다.
최진실 씨를 괴롭혔다는 악성 댓글들 역시 실명이거나 최소한 본인확인 절차를 거친 후에 씌여진 것들이다. 인터넷의 익명성을 제거한다고 해서 악성 댓글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와 여당이 악성 댓글 문제 해결방안이라며 이른바 `최진실 법`이란 카드를 내밀었다. 이 법은 싸이버모욕죄 신설과 인터넷실명제 확대를 골간으로 하는데, 앞서 말한 이 두 가지 문제와 직결되는 사안들이다.
먼저 싸이버 모욕죄는 악성 댓글 피해당사자의 고발 없이도 정부가 처벌을 강행하겠다는 내용이다. 즉 주관성에 따를 수밖에 없는 악성 댓글 여부를 정부가 직접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판단주체가 된다면 앞으로 정부 비판적 댓글들은 모두 악성 댓글로 간주되어 처벌받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합법`이란 미명으로 버젓이 자행될 수도 있다.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큰 위험한 악법인 것이다.
한편 인터넷실명제 확대는 실효성 측면에서 의문이 제기된다. 정부·여당에 따르면 현재 하루 평균 이용자 30만 명 이상의 포털싸이트 및 20만 명 이상의 언론사싸이트를 대상으로 적용되고 있는 실명제를 법개정을 통해 하루 평균 이용자 10만 명 이상의 싸이트로 확대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실명제 의무적용 싸이트가 현재 37개에서 178개로 늘어난다.
앞서 지적했듯이 이미 실명제 적용 싸이트에서 악성 댓글이 여전한 마당에 적용대상 수만 늘린다고 이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 이미 효과가 없음이 경험적으로 입증된 제도라면 빨리 폐기하고 다른 대안을 찾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오히려 더 확대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진정 정부가 악성 댓글 문제에 대한 해결의지를 갖고 있는지 아니면 혹시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비판 여론을 잠재우려는 정부의 불순한 의도
사실 싸이버모욕죄 신설이나 인터넷실명제 확대는 최진실 씨 자살보다 훨씬 앞선 촛불집회 때부터 정부와 여당에서 이미 논의되고 있던 것들이다. 그 동기가 인터넷에서 촉발된 촛불민심에 화들짝 놀라 정부 비판적 여론을 통제하려는 목적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최진실 씨 자살사건을 계기로 똑같은 알맹이가 포장지만 바꿔 다시 나왔다. 속셈이 빤히 보인다. 개인 피해자 구제를 강조함으로써 지금의 인터넷 규제정책이 네티즌들의 정부 비판 여론을 막으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애써 은폐하려는 것이다.
때마침 언론이 나서서 최진실 씨 자살이 악성 댓글 때문이라고 기정사실화해버리는 놀라운 마법까지 부려줬으니, 이 기회에 그녀의 이름을 빌린다면 인터넷 규제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쉽게 얻을 수 있으리라는 얄팍한 계산을 한 모양이다.
악성 댓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물론 어느 정도 규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미 규제를 위한 법률적 장치도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형법, 민법, 정보통신망법, 심지어 청소년보호법에까지 관련 조항들이 제정되어 있다. 규제가 필요한 부분은 현행 법체계 내에서도 얼마든지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법적 규제로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악성 댓글은 법적인 문제이기 이전에 인터넷 문화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문화는 법으로 제정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자율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자율규제의 중요성이 꾸준히 거론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자율규제가 공허한 이상론일 뿐이라는 반박이 있다. 하지만 인터넷 곳곳을 잘 살펴보면 이미 네티즌들간 자율규제가 모범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사례도 많다.
일례로 어느 중고장터 싸이트에서는 게시판에 물건 가격에 대해 싸다 비싸다 하는 댓글은 달지 못하도록 규칙을 만들어 적용하고 있다. 누군가 이런 댓글을 달면 금방 다른 이용자들이 경고성 댓글을 올린다. 거래를 하다 보면 흥정하는 맛도 있는데 이를 막는 것이 어찌 보면 지나치게 엄격하고 가혹한 규제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용자들 어느 누구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모두가 이 규칙을 준수하면서 가격시비 없는 게시판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어차피 가격정보는 인터넷의 다른 경로를 통해 얼마든지 얻을 수 있으니 스스로 생각해서 비싸다고 판단된다면 안사면 그뿐이다. 괜히 가격시비로 분란을 빚을 필요가 없다는 정서가 이용자 모두에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곳 자유게시판에도 재미있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자신이 자유게시판에 퍼 옮긴 글이 근거 없는 뜬소문이나 논란이 될 만한 사안이라는 것이 확인되면, 본인 스스로 일주일 동안 글을 쓸 권한을 제한한다. 누구 하나 강요하는 사람도 없는데 본인이 스스로를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네티즌의 자율규제,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자율규제의 미학이다. 정부가 모든 싸이트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규칙을 만들어 강제 적용하는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실효성도 없다. 모두에게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규칙이란 애초부터 인터넷 공간에선 불가능하다.
어떤 기준, 어떤 내용으로 규제할 것인가를 논하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규칙을 만드는가이다.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각각의 싸이트마다 저마다의 성격과 목적에 맞게 스스로 기준과 규칙을 만들고, 이용자들의 동의를 얻어 이를 적용하면 되는 일이다.
이렇게 운영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싸이트만의 문화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이것을 따르는 이용자들은 계속 이용하고 그렇지 않은 이용자들은 다른 싸이트로 떠나면 그뿐이다. 전세계 어디에서든 지금껏 인터넷은 이렇게 운영되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유지될 것이다.
정부가 인터넷상의 모든 표현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모든 싸이트에 획일적인 규칙을 적용하려는 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게다가 그것을 한 인기스타의 안타까운 죽음을 등에 업고 추진하려는 것은 졸렬하기 이를 데 없는 발상이다.
‘최진실 법’이 정부와 여당에 대한 비판여론을 통제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제2, 제3의 최진실을 막아주지는 못할 것이다. 진정으로 또 다른 불행한 자살을 막고 싶다면 인터넷 규제 법률보다 차라리 우울증 대책이나 자살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훨씬 시급하고 현명한 일이다.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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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민경배 / 경희사이버대학교 NGO학과 교수.
저서로 『사이버스페이스의 사회운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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