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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인터넷뉴스 | 입력 2008-12-20 | 수정 2008-12-20 오전 8:11:44 | 관련기사 건
남북대화는 일찌감치 끊겼다. 굶주리는 북한 사람을 위해 인도주의 차원에서 매년 북한에 지원하던 쌀을 주기 않기로 한 지는 꽤 되었다. 2008년 7월 11일에는 금강산관광이 중단되었다. 2008년 11월 12일에는 남북간 판문점 적십자 직통전화가 차단되었다.
2008년 11월 28일에는 개성관광이 중단되고, 남북을 오가던 열차가 멈춰 섰다. 2008년 12월 1일에는 개성공단에 상주하던 남측 인력의 절반가량이 철수했다. 이렇게 남북경협 3대사업인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남북 철도연결사업은 차례로 위기를 맞았다.
10년에 걸쳐 이루어놓은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결실이 무너지는 데 1년도 걸리지 않은 것이다.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남북관계는 왜 갑작스레 10년 전으로 돌아 가버린 것일까?
북한 때문인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그렇다고 한다. 남북관계 단절조치를 내린 최종행위자가 북한이라는 사실에 근거한 판단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북한이 남북관계 차단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동어반복의 비논리적 언술에 불과하다. 결과를 원인으로 간주하는 환원론이다.
대남 강경조치는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에 대한 반작용
남북관계는 상호작용의 체계이다. 북한의 행동은 남한의 행동을 반영한다. 남한의 대북정책, 대북조치, 대북발언은 북한 반응의 강약, 속도와 방향을 좌우하고 그런 북한의 대응은 다시 남한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남북관계의 성격을 염두에 두면서 남한이 무엇을 했는지 살펴보자.
우선 대북정책의 방향을 보자. 모호하다. 상생과 공영의 비전을 추구한다면서 포용정책을 계승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분명치 않다. 10·4남북공동선언의 이행문제를 남북간에 논의하자고 하면서도 그 선언을 수용할지는 명료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정책의 방향이 모호한 것에 비해 구체적인 대북조치들의 성격은 분명하다. 우발사건(금강산 피격)은 국제무대에 올려 대북공세의 수단으로 삼고, 쌀 지원은 중단했으며, 인권압박은 강화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 문제를 놓고 비상대응을 논한다며 북한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자극했다.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당국자들은 어떤 경우에는 부주의하게, 어떤 경우에는 의도적으로, 어떤 경우에는 무의식적으로 부적절한 발언을 잇달아 했다.
북핵문제에서 때로는 한·미·일 공동으로, 때로는 한국 단독으로 대북공세적 태도를 취했다. 미국이 북한을 테러국에서 해제한 것에 불만을 표시하고, 북핵 신고내용에 대한 검증계획서에 합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대북 중유제공 유보를 주장했다.
북한의 대남 강경조치는 이런 이명박 정부의 행동에 대한 반작용이다. 혹자는 북한은 이미 이명박 정부 출범 전부터 남북관계를 경색시키려는 씨나리오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남북경색은 이명박 정부의 책임이 아니라고 한다.
이는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이 대선정국 때, 인수위원회 활동 때 어떤 대북신호를 보냈는지를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다. 10·4선언을 격렬하게 비난하고, 통일부 폐지를 밀어붙이며, 남북관계를 한미동맹에 종속시키려 했던 일련의 행태를 무시한 주장이다.
남북관계 경색이 북한과 `잃어버린 10년` 탓인가
북한이 이런 이명박 정부에 대해 어떤 수준으로 대응하는 게 적절했는지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이런 대결적 대북자세와 북한의 대응 간의 등가를 따질 객관적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대응이 지나쳤다고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북한 때문이라는 논리는 틀린 것이다. 그 논리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북한이 남한의 대북정책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한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남북관계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주장을 빨리 거두어들이는 게 좋다. 증명되지 않은 가설일 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발등을 찍는 자가당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김대중·노무현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며 `잃어버린 10년` 담론을 유포해왔다. 남한의 대북정책이 북한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전제로 한 주장이다. 이는 북한이 남한의 대북정책과 상관없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존재인 듯, 최근 남북간 경색국면의 책임을 북한에 전가하는 행태와 배치된다.
이명박 정부가 계속 그렇게 주장하고 싶다면 `잃어버린 10년`의 책임을 김대중·노무현정부에 물어서는 안 되며, `잃어버린 10년론`을 고수하고 싶다면 같은 논리로 남북경색의 책임도 인정해야 한다.
남북 대치국면은 민간단체가 북한 지역에 삐라를 살포한 사건 그리고 금강산 피격사건처럼 이명박 정부와 상관없거나 이명박 정부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는 설명도 설득력이 그리 높지 않다.
그런 사건이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은 남북관계 악화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한반도에 이미 남북대결이라는 가스가 가득 차 있지 않다면, 우발적 사건이 한반도 전체로 번져가는 불꽃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새 정부 출범 초기에는 으레 남북간 경색국면이 왔기 때문에 최근 남북경색을 이명박 정부의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 임기 초에 남북관계가 나빴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이전 정부의 대립상태가 이월된 것이지 새 정부가 새로 조성한 것은 아니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그런 대립국면을 풀기 위해 적극 노력했고, 그 결과 남북관계를 발전시켰다.
이와 달리 이명박 정부는 전례 없이 진전된 남북관계를 물려받으면서도 기록적으로 짧은 기간에 남북관계를 훼손했으며, 훼손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임기 초반에는 다 그랬다는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기다리기`로 일관하는 이명박 정부
북한보다 이명박 정부를 더 비판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미국산 쇠고기 무조건 개방 때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한 이유와 같다.
이제는 누구도 이명박 정부 때문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 북한이 이런 경색국면에 대해 얼마만큼의 책임을 나눠져야 할지 알 수 없지만, 이명박 정부의 책임이 분명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명료성 때문인지, 겉으로 하는 말과 달리 한나라당도 책임을 어느 정도 의식한다는 낌새가 느껴진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말했다. "우리 쪽에는 그 정도 공단 수백 개가 있습니다. 그거 하나 우리 경제에 무슨 악영향을 미치겠습니까." 개성공단 폐쇄의 사소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솝우화의 신포도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발언이다. 실패 책임을 북한에 전가하는 일이 여의치 않을 때, 자기들의 실패가 얼마나 작은 것인지 설득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아무튼 이명박 정부는 현재의 상태를 바꾸기보다 감수하기로 작정한 것 같다.
그것은 사실 이명박 정부 최고의 대북정책이기도 하다. `기다리기`. 굶주리는 북한 동포에게 줘야 할 쌀을 주지 않는 이유라는 것이 아직은 식량난이 심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인도주의 사업이라면 쌀을 줘서 굶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굶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한다. 남북경색을 풀기 위해 나서지 않는 것도 기다리기 때문이다. 남북 대결상황이 아직은 견딜 만하다는 판단의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의 정책 전환을 위해서는 더 심각한 남북대결의 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걸 두고 북한의 도발을 기다리는 정책이라면 지나친 누명일까. 아닐 것이다. 이미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에서 남북간 무력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오마바 정부 출범을 앞두고 북미관계 진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는 역시 기다려보자고 한다. 아직 시간이 많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북미관계의 급진전을 목격하고 나서야 기다리기를 끝낼 것이다.
북한과 미국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명박 정부의 `기다리기 노선`이 지닌 치명적 결함을 발견할 수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을 때 정책을 전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으로 스스로를 몰아가는 것, 이것이 한 나라가 선택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또 이 기다리기의 끝은 어떨 것인가. 이명박 정부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로 결심할 때 바로 남북대화가 재개되는가? 그런 갑작스런 남측의 태도변화에 북한이 그렇게 신속하게 대화로 호응하고, 적대하던 남측을 북한이 그렇게 너그럽게 대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인내심 있게 기다릴 수 있다고 쳐도, 북한과 미국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가 인기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대북정책이 비판받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이렇게 활용하기 좋은 정세가 없다. 단계적으로 남북관계 차단을 확대하고 압박해 들어갈 것이다.
그로 인한 남북관계 악화가 북한의 책임이라고 항변하겠지만 잘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반면 남한내 대북정책 전환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그럴수록 북한 개입의 효과는 커질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결국 남북 양측의 협공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보수 세력이 그토록 싫어하는 북한의 전략에 스스로 놀아나는 꼴이 될 수 있다. 이렇게 `기다리기`는 북한과의 거리두기를 지속 가능하게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북한과의 연계성을 더 높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기다리든 안 기다리든, 선의의 무시든 악의적 무시든 북한과의 얽힘에서 남한이 해방될 길은 없다. 그것은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걸 거부하는 정책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오바마 정부는 어떨까? 기다려줄까? 대북정책 재검토 기간이 필요하므로 일정기간 기다려줄 것이다. 그러나 재검토가 끝나면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한미공조를 통해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를 조율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이 남북대화를 하도록 압력을 넣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의 압력을 받고 얼마나 성의껏 남북관계에 회복에 나설지 의문이다.
다른 하나는 북미관계 속도를 남북관계에 맞추는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가 그리할지 알 수 없고, 그런다 해도 `남북관계가 개선될 때까지 기다리는 미국`을 의식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정부에 또 다른 압력이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反포용정책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기다리기가 지금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해도, 이명박 정부가 그 끝을 낙관하며 나름의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그렇게 낙관적인 것 같지도 않고 뭔가 준비하고 있다는 낌새도 없다.
이도 저도 되는 일이 없으니 그렇게라도 하지 않을 수 없어 마지못해 끌려가는 게 기다리기의 본질이다. 이렇게 결과가 예견되는 길을 계속 가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계속 가야 하는 이 모순은 도대체 왜 발생한 것일까.
그것은 지난 10년간 해온 대북정책과 다른 것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북정책에서 다른 것은 없다. 포용정책은 오랜 시행착오를 통해 정립되고 사회적 합의를 획득한 대북정책이다. 특정 정권이 만들어낸 한시적 정책이 아니다.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는 것도 아닌 현상유지 정도는 쉬울 것 같지만, 그 정도를 위해서도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남북관계의 특성이다.
공짜는 없다. 기다리기를 선택했다면 좋다. 그러나 전략적 후퇴가 있듯이 기다리기도 전략이 있어야 한다. 물론 바람직하기로는 정책을 전환하는 것이다. 이미 너무 나갔다고 체념해서는 안 된다. 돌아설 명분이 없다고 포기할 필요도 없다.
대통령 산하에 좌우를 막론한 대북정책 점검 특별위원회를 구성해보라. 그게 싫으면 합리적 보수인사들로 구성해도 좋다. 그래도 결론은 예견 가능하다. 그 권고를 받아들여라.<창비주간논평>
저자 소개
이대근 / 경향신문 정치·국제에디터
북한대학원 대학교 겸임교수.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신문』 정치국제부장 및 논설위원으로 일했고, 미 UCLA 객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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