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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인터넷뉴스 | 입력 2009-03-02 | 수정 2009-03-02 | 관련기사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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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신뢰위기론이 무성했던 지난 1년을 여성의 눈으로 되돌아본다면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2009년 여성부의 첫 번째 정책목표는 `여성의 힘으로 경제 살리기`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바로 이 표현 속에서 여성정책의 불투명한 좌표가 상징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물론 여성도 엄연한 경제주체이기에 경제위기 극복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부는 경제부처가 아니며, 사실 경제회생에 기여할 만한 뚜렷한 정책수단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경제 살리기` 지도를 따라가면서 과연 `性평등 길찾기`에 성공할 수 있겠는가.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이미 지난주 現정부의 여성정책 1년을 검토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평가는 매우 냉정했다. 性평등 정책의 실종, 여성인권 의식과 젠더 거버넌스 부재, 가족·보육정책 후퇴, 구호뿐인 여성 일자리 창출을 지적하면서 주저 없이 낙제점을 매겼다.
사실 이런 평가는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 정권 초기부터 폐지론이 불거졌다가 가까스로 존치된 여성부의 조직과 예산이 모두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性평등 정책의 방향성과 의제가 뚜렷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정책도, 마인드도 없는 이명박 정부의 여성정책
지난 정부의 경험을 반추해본다면, 여성정책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전체 정책기조와 결합되는 씨너지 효과가 필요하다. 김대중 정부는 여성정책의 산파 역할을 하면서 중앙부처 수준의 여성정책 전담기구를 탄생시킨 족적을 남겼다. 민주화와 인권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았던 김대중 정부의 정책기조와 여성부 창설은 잘 들어맞았다.
특히 여성부에 남녀차별개선위원회를 신설하여 성차별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고 구제절차를 밟을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한 것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야심차게 출발한 남녀차별개선위원회는 오래 존속되지 못하고 우여곡절 끝에 국가인권위원회로 기능이 이관되었으며 근거법인 남녀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법률도 폐지되고 말았다.
한편 노무현정부의 여성정책은 복지지원과 사회써비스를 확대하고자 하는 `참여복지`의 기조와 맞물려 전개되었다. 여성부를 여성가족부로 확대 개편하고 보육예산을 대폭 늘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부터 보육료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사적 영역에서 여성들이 주로 전담해온 아동과 노인 돌봄을 사회적 써비스로 체계화하고, 아울러 그 영역의 여성 일자리를 확대해야 한다는 논의가 무성했다. 장기요양보험이 도입되고 자녀양육비에 대한 소득공제 등 일부 지원이 늘었지만, "아이를 낳으면 키우는 것은 정부가 지원해준다"는 말은 여전히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그렇다면 현재의 여성정책이 이명박 정부가 지향하는 전체 정책흐름과 어떤 접점을 이루고 있는지 물어야 할 차례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접점, 즉 전체 정책기조와 맞물려 돌아가는 여성정책 의제가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몇 가지 눈에 띄는 변화를 짚어본다면, 첫째로 가족과 보육정책이 복지부로 이관되었다. 현실적으로 가족과 보육문제는 한국 여성들의 일과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직접적 정책 수요자인 여성에 대한 고려가 약화되거나 배제될 경우, 가족정책이나 보육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둘째, 여성부의 조직과 예산이 축소됨에 따라 이른바 집행업무가 대폭 줄어들었다. 성차별을 개선하고 여성을 지원하는 다양한 정책들을 여성부가 일일이 직접 펴나가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다른 중앙 부처나 지자체가 性평등을 지향하는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점검하는 역할이 여성부의 주된 업무로 부각되는 것인가? `性주류화`(gender-mainstreaming) 정책, 좀 더 구체적으로는 성별영향평가나 성인지 예산제도가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여기에 모순이 있다. 초미니 부서가 되어버린 여성부가 타 부처나 지자체의 정책에 무엇을 지렛대 삼아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지, 자칫 性주류화 정책 자체가 주변화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셋째, 이미 위헌판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군 가산점제 부활론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군 가산점을 둘러싼 많은 쟁점들은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아무튼 性평등 정책에 대한 함의는 분명하다.
즉, 군필 남성을 우선 배려하기 위해 여성(그리고 군대에 가지 않은 남성)의 노동시장 진입을 일부 제한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는 여성 일자리 창출과도 배치되며 시장논리에 맞는 정책수단도 아니다.
여성부 축소가 아니라 청사진이 없는 게 문제
지난 1년 동안 性평등 정책에서 방향이나 핵심 의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청사진이 제시되지 못했다. 여성부 축소 그 자체가 아니라, 性평등 정책의 청사진이 없는 채로 조직개편이 상황논리에 따라 편의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지난 10년간 추진되어온 주요 의제들, 예를 들면 性주류화, 돌봄에 대한 사회적 지원 강화 등을 그대로 취하는 것인지 아니면 버리는 것인지, 바꾼다면 어떻게 달라지는 것인지 아직 분명하지 않다. 여성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최근 추진되고 있는 최저임금 조정이나 비정규직 고용기간 연장 등이 여성 고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검토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방법론에서도 `현장상황에 따라 신속 대응`하는 방식만으로 性평등 정책을 추진하기는 어렵다. 性평등 문제는 노동시장, 교육과 인력양성, 인권, 정치참여, 성폭력과 성매매, 보육, 가족, 문화, 지역사회 등 삶의 전 영역에 걸쳐 있으며, 법과 제도를 바꾸더라도 일상생활까지 그 변화의 여파가 미치는 데 긴 시간이 걸린다.
성차별과 여성문제가 전봇대처럼 일거에 뽑혀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性평등 정책에서는 청사진의 제시와 중장기 목표 및 행동계획의 지속적 추진 외에는 별다른 왕도가 없다. 이미 국제기구의 활동이나 외국의 경험에서 이러한 사실은 여러 차례 확인되었다.
세계적 경제위기가 여성정책의 청사진 부재를 정당화하는 변명이 될 수도 없다. IMF 경제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여성부의 모태인 여성특별위원회가 설치된 바 있다. 경제위기 상황이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는 데 유리한 환경은 아니었겠지만, 여성운동의 노력에 힘입어 경제위기 극복의 와중에서 性평등 개선을 위한 법과 기구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온 것이다.
그런데 실제 경제위기로 인해 심화된 여성문제에 정책이 탄력적으로 대응했는지는 다시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면 호주제 폐지, 공무원 양성평등 채용목표제 도입, 국회의원 비례대표 명부에서 여성할당제 도입 등 많은 제도적 변화가 있었지만, 빈곤 여성, 여성 비정규직, 여성 가장 등에 대한 지원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역설적이지만 여성정책이 확대된 기간은 사회 양극화와 여성빈곤이 심화된 기간과 중첩된다.
性평등에서의 실질적 개혁을 위하여
여기서 性평등 정책에서 `상징적 개혁`과 `실질적 개혁`을 구분한 에이미 마주어(Amy Mazur) 교수의 개념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性평등을 천명하는 많은 법과 제도를 신설함으로써 상징적 변화는 이끌어낸다 하더라도, 실제 일상생활의 권력관계를 변화시키고 약자의 삶을 바꾸어내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더 남아 있는 것이다.
호주제 폐지 이후 또다시 친권 문제가 제기되어 새로운 민법 개정이 요청되고 있으며,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되었지만 성폭력 범죄자의 구속율이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온 민주노총 안에서 성폭력이 발생하고 또 은폐되는 사건에서 보듯이, 실질적 개혁이 실현되기까지는 여전히 많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위기가 절박할수록 우리는 멀리 내다봐야 한다. 목전에 닥친 위기, 당장 먹고살기 어렵다는 초조함을 변명 삼아 권위주의적 과거로의 회귀나 약육강식의 야만을 못 본 척 묵과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性평등 정책은 위기 시대에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경제 살리기의 수단이 아니라, 性평등과 인권 신장을 목표로 하는 여성정책의 청사진이 본격적으로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창비주간논평>
저자 소개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음. 서울대 여성연구소 선임연구원 역임. 현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한국여성학회 이사, 『페미니즘 연구』 편집위원. 저서 『우리 안의 이분법』(공저), 역서 『현대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공역)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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