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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인터넷뉴스 | 입력 2009-05-08 | 수정 2009-05-08 | 관련기사 건
인류 역사상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빈번한 유전자 변이를 통해 다양한 유전자형을 나타내면서 종간 장벽을 넘어 일정한 주기로 유행성 독감을 일으켜왔다.
이번의 변종 독감바이러스는 유전자 구성 때문에 처음에는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오인되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돼지, 사람, 조류 인플루엔자의 유전자를 모두 가지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다.
현대과학은 자연계 속에서 일정 주기에 따라 다양한 유전자형을 획득하며 진화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출현 원인에 대하여 아직 명확한 답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질병 발생상황으로 보면 이번의 H1N1 신종 바이러스는 돼지가 아닌 사람의 A형 독감바이러스라고 보는 것이 옳다.
특히 이번 바이러스는 1918년 스페인에서 시작하여 전세계적으로 몇 천만 명을 사망하게 한 H1N1 인플루엔자와 동일한 유전자형이고 양쪽 모두 노약자가 아닌 비교적 건강한 젊은이의 사망이 관찰된 점, 그리고 1918년 스페인 대유행 당시에도 미국 일리노이주의 돼지에서 H1N1 유전자형의 독감바이러스가 동시에 유행한 사실도 알려져 있어서 세계 각국은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급속한 전파력으로 전세계적인 발생양상을 보이던 이번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병독성 면에서는 그렇게 강력하지는 않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일반적인 겨울 독감바이러스 정도로 보이기도 한다.
현대사회 전염병의 정치경제학
하지만 이 독감이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파될 뿐만 아니라 사람에서 돼지로 감염되었다는 캐나다의 보도는 주목해야 한다. 사람으로 인해 감염된 돼지로부터 다시 인간이 재감염되는 경우의 위험성은 누구도 단언하기 어렵다. 종간 장벽을 넘어 감염되는 병원체는 에이즈나 광우병처럼 그 과정에서 강력한 인체 병독성을 획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재 신종 독감 발생국 대부분은 조만간 여름을 맞을 북반구에 있지만, 그 반대편인 남반구는 독감이 유행하기 좋은 조건인 겨울로 접어드는 상황이라 전세계적 유행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은 아직 내리기 어렵다.
물론 독감의 대유행으로 몇 천만 명이 사망하던 과거와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2차 감염에 의한 폐렴을 치료할 페니실린조차 없던 시절에 비해 지금은 다양한 항생제와 항바이러스 제재, 독감백신 같은 치료기술에 더하여 의료 방역체제나 사람의 주거환경이 많이 개선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질병의 발생과 유행은 단지 생물학적 이유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활양식이나 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수전 손택이 강조했듯이 질병의 과학적 실체와는 달리 `은유로서의 질병`은 어느 시대나 존재하며, 현대사회의 발달된 교통망과 인구가 과도하게 밀집된 대도시 환경은 급속한 전염병 확산에 기여한다.
더욱이 신자유주주의 시대 양극화된 사회구조 속에서는 발전된 의료체제의 혜택이 만인에게 평등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도시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빈곤층은 그러한 의료혜택이나 고가의 신약을 감당하지 못하기에 전염병에 취약한 피해자이자 질병의 급속한 전파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가 된다.
인간중심의 과학이 불러온 변종의 재출현
특히 신종 인플루엔자나 에이즈, 광우병같이 동물의 종간 장벽을 넘나들어 발생하는 전염병의 창궐에 대해 현대사회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대량소비를 위한 가축의 열악한 인위적 집단사육 환경은 그러한 환경에 적응하는 변종 병원체의 등장을 가속화하고 있다.
또한 의료기술의 발달에 따른 고령화로 전염병에 취약한 노약자의 인구 비율이 끊임없이 높아진다. 더욱이 지구온난화까지 겹쳐지면서 현대사회는 이제 특정 전염병 창궐의 임계상태로 접근하고 있다고 과학계는 경고하고 있다.
신종 병원체의 등장을 조장하는 또 다른 위험요소는 인간중심의 과학기술이다. 최근의 이종장기 개발연구가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사람에게 무균 돼지장기를 이식했다고 생각해보자.
돼지에서 법정 전염병을 일으키는 치명적인 병원체가 인체 속 돼지장기를 감염시킨 후 주변의 인체조직에 적응하면 인간에 대해 새로운 병원성을 지닌 신종 인수공통(人獸共通) 병원체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항생제 내성균의 등장에서 보듯이 생명체는 언제나 주위환경에 적응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인간은 새롭게 등장한 병원체에 대해 면역이 없기 때문에 치명적인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이처럼 신종 H1N1 인플루엔자의 등장은 방역과 장기적 대책 면에서 우리의 사회구조적 취약성과 함께 자연에 대한 인간중심의 시각이 지니는 한계점을 성찰하게 한다.
생태계의 동료인 사람, 동물, 바이러스
이런 면에서 흔한 오해 중의 하나가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이 인류의 적이라는 생각이다.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병원성이든 아니든 같은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인간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존해왔다.
지금까지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해서 독감을 유행시킨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역시 사람이나 동물과 함께 진화해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현재 과학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어떤 요인에 의해 사람과 동물, 그리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간의 안정된 관계가 변하면서 인플루엔자의 새로운 변종이 등장함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나타난 신종 바이러스는 생태계를 구성하는 기존 집단 간의 새로운 관계 형성을 유도하며, 이때 인간은 신종 인플루엔자와 새롭게 형성된 안정된 관계를 이루게 된다.
아직 생태계의 총체적 모습을 파악하지 못하는 현대과학은 전염병 관리와 방역에서 미생물을 인간의 적으로 여기고 인간만이 지구상의 유일한 생물종이 되어야 한다는 식의 오만함을 버려야 한다.
신종 전염병에 대한 종합적 이해와 대책을 위해서는 인간중심의 시각을 버리고 생태계라는 큰 틀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사태처럼 새로운 변종 병원체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등장해 인류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 것이다.
미국 쇠고기 사태의 교훈, 사전예방주의
신종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국제적인 돼지고기 무역갈등이 생겨나는 것처럼 전염병의 발생은 과학의 영역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방역이나 질병관리 정책에서는 과학적 측면과 함께 정치와 경제, 문화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고려된다.
여기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아무리 작은 질병의 전파 가능성에 대해서도 철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사전예방주의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이다.
작년 미국 쇠고기 수입과정은 정치경제적 측면만 내세우고 과학적 측면은 무시함으로써 사전예방주의가 완전히 무너진 사례이다. 외국에서 안심하고 소비하는 농축산물도 공항에서 국내 반입을 철저히 금지하는 이유는 그만큼 이 원칙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번 신종 독감의 경우에는 종전의 인체 감염을 보인 조류독감에서처럼 철저한 사전 예방주의적 접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과도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일단 방역당국에 맡기고 그 추이를 지켜보자.
<창비주간논평>
저자 소개
우희종 |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면역학 교수
토오꾜오대 약학부 석사 및 박사를 마치고, 펜실베니아대 의대 분자질병학 교실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역임. 미국 Harvard University 의과대학 외과 종양학교실 강사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면역학교실 교수로 재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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