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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인터넷뉴스 | 입력 2007-01-02 | 수정 2007-01-02 오전 9:29:57 | 관련기사 건
그런 현상은 지난해에도 이미 흔했다. 예컨대 `선진화`와 `통일`을 흑백으로 갈라놓는 논리를 비판하며 양자의 병행 가능성을 주장하기만 해도 주요 신문들은 즉각 이를 `좌우 이념대결`로 부각시키곤 했다. 단순한 상업주의였는지 아니면 한쪽을 띄워주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흑백논리와 소모적 갈등을 더욱 부추기게 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앞날이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흑백논리를 약화시키는 능력을 꾸준히 키워왔으며, 새해에 그러한 전진을 계속할 여지가 없지 않은 것이다.
적백 양분법의 쇠퇴
한국사회의 흑백논리 중 가장 강력하게 작동해온 것은 조금이라도 진보적 성향이나 비판의식을 가진 사람을 적색(赤色)으로 칠해버리는 논법이다. 요즘도 곧잘 들이대는 ‘친북좌파’라는 딱지가 이 논리의 끈질긴 생존을 증거해준다. 그런데 이 낯익은 딱지를 애용하는 사람들로서는 불행하게도 그 약효가 영 예전 같지 않아졌다.
결정적인 계기는 역시 2000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과 공동선언이었다. 물론 그에 앞서1987년의 6월항쟁으로 군부독재의 야만성에 타격이 가해진 것이 근본원인이고 분단체제의 흔들림도 이때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아무튼 6·15를 기해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은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되었을뿐더러 남북접촉의 대대적인 확대로 `붉은 북녘`과 `흰색 남녘` 주민들 사이의 적대감이 크게 줄어들었다. `친북좌파` 딱지 붙이기가 여전히 횡행하고는 있지만, 6·15선언 이후로는 합법적으로 당선된 대통령과 국군 최고통수권자도 `친북좌파`로 몰아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아니, 논리적 일관성을 지키려면 `87년체제`의 출범 이후 대북접근과 지원정책을 본격화하기 시작한 노태우 정권마저 동렬에 놓아야 하는 부담도 안아야 한다.
게다가 한국사회에는 적어도 1980년대 중반 이래로는 `반북좌파`도 엄연한 하나의 세력으로 자리잡았다. 그뿐인가. 고 정주영 회장처럼 좌파도 중도파도 아닌 인사를 굳이 분류한다면 `친북우파`라고 일컬을 수밖에 없다. 한 보수 일간지의 회장도 언젠가 대통령을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자신은 `친북이자 친미`라고 밝힌 바 있다. 우리 사회 이념 및 담론 지형의 이런 다양성을 외면하고 아무데나 `친북좌파`를 들이대는 한에는 새로운 우익을 자처하는 논객들이 낯익은 수구우파 이상의 신용을 국민들로부터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대중정서의 차원에서 적색에 대한 혐오나 두려움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은 것은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전국을 붉은색으로 물들인 응원 물결이었다. 지금도 대한민국 대표팀이 출전하는 체육경기가 벌어질 때면 이런 `붉은이들`(Reds)이 어김없이 대거 출동하곤 한다.
이렇게 반공 일변도의 논리가 쇠퇴하면서 한국사회에도 다양한 담론이 싹트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2, 30년 사이 눈부시게 성장한 녹색담론이다. 공해반대는 곧 용공이라던 박정희시대와 견준다면 세월의 변화가 실감되는데, 그렇다고 녹색사회가 얼마나 실현되었느냐는 것은 딴 이야기지만 아무튼 녹색이 빠진 사회가 결코 선진적일 수 없음에는 폭넓은 합의가 이루어진 셈이다. 검은색, 갈색 피부의 노동자나 이민자에 대한 사회적 책임감이나 이해도 예전보다는 향상되었으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아직도 처벌대상이긴 해도 즉각 빨강색으로 덧칠되지는 않는다.
한반도식 통일의 개방성과 다원성
이렇듯 구석구석에서 싹트고 있는 다양한 담론이 더욱 자라고 영롱하게 꽃피려면 개방성과 다원성을 원리로 하는 어떤 미래 설계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한반도식 통일`의 독특한 성격을 되뇌게 된다.
6·15공동선언은 한반도의 통일이 평화적이고 자주적이어야 한다는 기왕의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그 진행이 남북연합(또는 `낮은 단계의 연방`)이라는 단계를 거친다는 점을 새롭게 명시했다. 그런데 한반도식 통일을 특징짓는 이 조항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크게 미흡한 실정이며, 그 때문에 6·15선언이 불필요한 논란에 휩싸이는 경우도 많다고 본다. 실제로 공동선언 제2항의 국가연합 대목을 소홀히한 채 제1항의 `우리 민족끼리` 통일하자는 선언적 조항에 지나친 무게를 두는 것은 친북 이데올로기의 혐의를 자초하기 십상이며, 다른 한편 제4항의 경제협력과 사회문화교류에만 몰두하다 보면 북으로부터는 기능주의적 흡수통일 시도라는 의심을, 남녘에서는 흡수도 안하면서 `퍼주기`만 한다는 비난을 사게 마련이다.
아파트값이 폭등하고 실업자와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당장의 민생 난국에서 국가연합 이야기가 뜬금없다 느껴질 수 있다. 물론 구체적인 정책을 담론으로 대신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당면한 여러 난제를 풀기 위해 중지를 모으고 미래전략에 합의하는 데 필수적인 담론이라면 성공적인 정책입안에도 긴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통일과정에 대한 시민참여·민중참여는 평화적이고 자주적이며 점진적인 통일일 때만 그 공간이 제대로 확보된다. 민주화와 경제발전에 상당한 성공을 거둔 한국의 경우 이렇게 주어지는 공간을 활용할 저력은 충분한데,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어서 저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국가연합(confederation 또는 union of states), 즉 남북 각각이 주권국가로서의 실체를 유지하되 양자의 관계가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특수관계`(남북기본합의서)임을 제도화하는 장치를 만들자는 구상, 더구나 시민참여에 의한 실질적 통합작업이 축적되었을 때 비로소 남북의 당국자가 합의하고 선포하는 국가연합 구상이야말로 수많은 소모적 갈등을 해소할 길을 열어준다.
예컨대 우리 사회의 쓸모없는 담론 중 하나가 `평화 대 통일`의 양분법이다. 물론 전쟁방지가 최우선이라는 의미로는 살벌한 휴전상태에서의 공존일지라도 최소한의 `평화공존`이 우선이다. 그러나 진정한 평화정착은 남북의 화해와 통합이 꾸준히 진전하는 가운데서만 가능한데, 이럴 때 국가연합의 성립은 평화론의 견지에서는 하나의 주권국가로 통합되기 전에도 아름다운 공존이 이뤄지는 셈이고 통일론의 입장에서는 `1단계 통일`로써 비로소 가능해진 평화공존임이 확인된다. 공연히 싸워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표방하는 민주주의와 북측의 `우리식 사회주의`가 판다른데 이 기본원칙의 문제마저 제쳐두고 통일을 추구할 수 있느냐는 논란도 쉽게 잠재울 수 있다. 시민참여를 통해 1단계 통일을 성취하고 이를 통해 더욱 활발해진 참여로 2단계, 3단계의 내용과 시기가 결정된다는 발상이야말로 그 자체로 가장 민주적인 것이며, 국가연합으로 가는 과정에서 남북 각각의 사회가 어떻게 얼마나 변할지는 일차적으로 해당사회의 주민들에게 맡길 일이다. 그리고 국가연합 및 연합 이후의 한반도 사회가 어떤 민주주의(또는 사회주의)로 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모든 시민이 각자의 소신과 역량에 따라 최대한으로 개입하면 된다. 남북대결을 계속하자는 의도가 아니라면 처음부터 내 식으로 해야 된다고 우길 일이 아닌 것이며, 시민참여형 통일의 궁극적 결과가 두려워서 배격하는 것이라면 민주주의 정신의 결핍은 물론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도 약한 상태라고 볼 수밖에 없다.
때로는 체제생존을 최우선시하고 때로는 연방제로의 자주통일을 부르짖는 북의 입장에서도 국가연합을 통해 주권국가 체제를 보존하면서 `더 높은 단계의 연방`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 유일한 논리적 타개책이다. 실은 국가연합 단계에도 안착하지 못할까 염려하는 것이 현재 북측 지도층의 내심이라 짐작되지만,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핵무기 포기를 댓가로 안전보장과 경제지원을 제공해야 하며 북은 북대로 그런 조건이라면 국가연합이라는 타개책에 따르는 모험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분단체제의 안정화가 불가능해진 시대에 남이건 북이건 다른 선택이 없기 때문이다.
새해에 거는 희망과 기대
2006년 10월 북측의 핵실험 발표 이후 최악의 긴장상태로 치닫던 한반도 정세는 12월 뻬이징 6자회담의 재개로 어쨌든 한숨 돌린 형국이다. 선거철은 유난히 흑백논리가 시끄러운 세월이기 마련이지만 우리 국민이 온통 소음에 휩쓸릴 만큼 미숙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6자회담이 조기에 속 시원한 성과를 못 거두더라도 北美間에 극한적인 대결이 재연되지 않는 한, 냉전기와 개발독재시대의 단순논리를 구사하는 정치세력이 국민의 지지를 받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한반도식 통일과 그것이 요구하는 우리 자신의 선진화 노력을 새해에 더욱 활기차게 추진해야 한다. 담론 차원에서는 흑백논리를 넘어서되 검은색과 흰색도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며, 붉은색도 다양한 색조와 농도로 끼어들 일이다. 녹색도 온 세상을 진녹색으로 덮기보다 다양한 발전의 청사진과 공존하는 녹색이 되며 특히 돋아나는 어린잎의 연두색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2007년을 형형색색의 담론이 피어나는 한해로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하며 기대해본다.
백낙청 | 문학평론가,《창작과비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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