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조국의 명예를 짓밟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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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조국의 명예를 짓밟은 자?

고성인터넷뉴스  | 입력 2009-10-03  | 수정 2009-10-03  | 관련기사 건

박원순 변호사는 변호사라면 생계 걱정은 접어도 되는 시절에 본업을 뒤로한 채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들겠다고 세월을 다 보낸 사람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를 버린 결과 세상이 알아주는 인물이 되었으니 남는 장사 아니었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것은 결과론일 뿐이다. 아니 그렇게 살면 온세상이 알아주는 인물이 될 수 있다고 한들 난 그렇게 안 산다. 한번뿐인 인생, 그렇게 살기에는 너무 아깝다. 더군다나 그 결과가 대한민국으로부터 조국의 명예를 짓밟은 자라는 이유로 2억원을 내놓으라는 소장(訴狀)을 받아야 하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 소송을 두고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법 좋아하는 원고 대한민국이 과연 법을 제대로 알고는 있는지 따져보자. 법률상 명예훼손은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규율된다. 하나는 형사적으로 제재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민사적으로 손해배상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민사법의 원리와 형사법의 원리가 차이가 있기 때문에 민사상 명예훼손과 형사상 명예훼손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거의 모든 경우에 민사적으로 명예훼손이 성립되면 형사적으로도 성립된다고 보아야 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대한민국이 박원순 변호사에게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일단 민사적으로 손해배상하라는 뜻이다.

 

비록 현 단계에서 대한민국이 박원순 변호사를 형사 고소한 것은 아니지만 우선 형사적으로 명예훼손이 성립하는지부터 살펴보자.        


국가에 대한 명예훼손, 과연 성립하는가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핵심은 여기서 말하는 사람에 대한민국이 포함되는가 하는 점이다.

 

이 단계에서 법률가가 아닌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무슨 사람이야, 말도 안되네"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에는 먹고 자고 사랑하는 진짜 사람 외에 회사 같은 법인도 포함된다고 해석한다.

 

심지어 법인이 아니더라도 일정한 조직을 갖추고 사회적으로 행동하는 실체가 있으면 여기서 말하는 사람으로 해석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은 사회적 실체로 활동하기 때문에 사람에 해당된다고 주장해볼 수는 있겠다.

 

이 사건 소송을 실무적으로 검토한 공무원들의 생각이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 안타깝게도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법의 이념과 체계에 대해서 더 연구가 필요하다.


형법상의 범죄들은 침해되는 이익의 성질에 따라서 크게 세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개인적 법익에 대한 죄이고, 둘째는 사회적 법익에 대한 죄이며, 셋째는 국가적 법익에 대한 죄이다.

 

즉 형법은 개인들이 있고, 개인들이 살아가는 전체로서의 사회가 있으며, 다시 그 사회와 구별되는 국가기구가 있다고 상정한다. 그리고 형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그중에 무엇인지를 명백히 하고자 한다.

 

살인이나 강도는 개인에 대한 범죄이고, 방화죄나 음란물에 관한 죄는 사회에 대한 범죄이며, 내란죄나 공무집행방해죄는 국가에 대한 범죄다.

 

형법에 명시적으로 그렇게까지 써놓은 것은 아니나 명예훼손죄는 그 체계상 명백히 개인, 즉 사람에 대한 범죄로 이해된다. 그 사람이 생물학적인 사람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은 앞에서 본 바와 같다.


한마디로 여기서 말하는 개인 또는 사람은 공동체 내에서 사적(私的)으로 살아가는 주체를 가리킨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원칙적으로 그런 사적(私的)인 주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형법에서 예정한 사람이라는 범주에는 대한민국이 포함되지 않는다. 만일 국가에 대한 명예훼손도 형법으로 처벌하려고 한다면 국가에 대한 명예훼손을 규정하는 별도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유신시절의 국가모독죄가 바로 그러한 발상이고, 만일 그 조항이 아직 남아 있다면 국정원은 흡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조항은 남아 있더라도 헌법이 보호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지나친 규제로서 위헌임이 분명하다.

 

독일의 경우에는 국가 자체에 대한 것은 아니고 관청에 대한 명예훼손에 관해서는 형법상 처벌규정을 두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선진국의 제도라 해도 그런 규정이 바람직한지는 별개 문제지만.


국가에 대한 진실이라도 공공연히 밝히면 명예훼손?


게다가 한가지 문제가 더 있다. 명예훼손죄는 적시된 사실이 허위인 경우에는 더 강하게 처벌하지만 진실인 경우에도 처벌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의 명예는 진실한 사실이 공공연히 밝혀짐으로써 훼손되는 것으로부터도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과거에 전과자였다 하더라도 그것을 공공연하게 폭로하는 행위는 명예훼손이라고 보는 것이다. 다만 형법 제310조는 "그것이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라고 규정하여 표현의 자유와 조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박원순 변호사 같은 경우에는 그런 사실을 밝힌 것이 개인적인 억울함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비록 진실일지라도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결과는 가공할 만하다.

 

만일 대한민국이 법률상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면 국민들은 대한민국에 대하여 어떤 사실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공공연히 밝히면 명예훼손으로 처벌될 수 있다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지는 더 자세히 살펴보지 않겠다. 아무튼 대한민국은 이 소송을 검토하면서 형법상 처벌을 주장하는 것이 설득력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민사소송만 제기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민사적으로는 말이 되는지 역시 살펴보자.


민법 제750조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라고 규정하여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일반적 원리를 천명하고 있다.

 

여기서 위법하다는 것은 전체 법질서에 비추어 허용되지 않는 것을 말하는데, 형법에 어긋나는 행위는 당연히 위법한 행위가 되고 피해자는 가해자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앞서 본 것처럼 국가는 명예훼손죄가 예정하고 있는 피해자가 아니므로 형법상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형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하라고 주장할 방법이 없다.


국가의 명예가 민법의 보호를 받지 않는 이유


한편,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이 가해자의 행위가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경우만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은 형사상 처벌받지는 않더라도 사회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으면 위법한 것으로 판단되어 손해배상을 해야 할 수는 있다.

 

그렇다면 형법이 범죄로 인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명예는 별도로 민사상 보호받을 필요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 민법(民法)은 용어 그대로 백성간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 법이며, 국가는 그러한 백성, 시민 또는 개인으로 볼 수 없다.

 

국가와 시민 간의 법률관계는 원칙적으로 행정법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며, 민법이 다루는 대상이 아니다. 다만, 비록 국가라 하여도 일반 시민과 다를 바 없는 계약이나 재산권의 주체로서 행동하는 경우에 민법상의 개인과 동일하게 다루어질 수도 있으나, 적어도 명예훼손에 있어서 개인과 같이 다루어질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당연하다. 첫째, 국가는 일반 시민과 달리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처할 모든 인적, 물적 수단과 강제력을 가지고 있다. 민사재판으로 보호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둘째, 일반적으로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것을 명예훼손이라 하는데 국가는 국제사회의 일원인지는 몰라도 인구와 영토와 주권을 그 구성요소로 하여 스스로 한 사회를 포괄하는 주체다.

 

그런데 국가의 내부에 속한 사회에서 어떻게 국가 자신에 대한 평가가 저하된다는 말인가. 이것은 어떤 사람이 자기 손을 보고 왜 나를 손가락질하느냐고 시비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이야기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지칭하는 의학용어를 알고 있다.


이와 관련한 판례를 굳이 찾자면, 지방자치단체는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권한이 없다는 영국의 1993년 판례가 있다. 외국의 판례를 바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그 취지는 음미할 만하다.

 

"중앙정부이든 지방정부이든 정부기관이 명예훼손의 소(訴)를 제기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볼 아무런 공공의 이익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기관은 제한 없는 공공의 비판을 받도록 함이 가장 중요하고 정부기관에 명예훼손의 소를 제기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에 대하여 바람직하지 못한 족쇄를 채우는 것이다."(박용상 《명예훼손법》, 현암사 2008, 59~60면 참조)


스스로 명예 저버린 국가, 말할 자유 잃는 국민


국정원이 박원순 변호사 말대로 그런 어리석은 활동을 했다면 그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명예를 짓밟는 행위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은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며 법률 실력이 보잘것없음을 스스로 폭로함으로써 그 명예가 또 땅에 떨어졌다.

 

대한민국은 국민의 자유와 재산을 지켜야 할 고귀한 지위를 내버리고 자신의 명예를 일개 시민과 똑같이 보호해달라고 칭얼대며 법원으로 달려가야 할 만큼 가녀린 존재가 됨으로써 스스로에 모욕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은 스스로 명예를 잃어가고, 우리는 조금씩 대한민국에 대하여 말할 자유를 잃어간다. 대한민국은 명예도 잃고 소송에도 지겠지만, 국민들에게 말을 못하게 하려는 목표는 충분히 달성할 것이다. 누구의 대한민국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분하다. 글을 쓰다 보니 박원순 변호사가 눈물을 흘린 심정을 이제 알 것 같다. <창비주간논평>

 

저자 소개

 

조광희 / 변호사, 영화제작자

  

영화제작자, 변호사.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차장 역임. 명필름, 봄, 싸이더스 등의 영화제작사에서 고문변호사로 활동했으며, 영화 〈카라〉 관련 사건을 시작으로 〈하얀방〉 〈범죄의 재구성〉 등 상영중지 가처분 사건을 상당수 수임했다. 현재 영화사 봄 대표이사,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필름마켓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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