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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인터넷뉴스 | 입력 2009-11-13 | 수정 2009-11-13 | 관련기사 건
10·28 재보선에서 세인의 주목을 가장 많이 끌었던 안산 상록을의 선거연합 시도가 실패로 끝났다. 진보개혁진영에 속하는 많은 이들이 내년의 지자제선거와 2012년의 총선 및 대선 과정에서의 정치연합 가능성도 낮아졌다고 한탄하고 있다. 그러나 한탄만 하고 있을 건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정치연합의 공고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작업은 무엇을 위한 정치연합인지를, 즉 연합의 내용을 분명히 하는 일이다. 아마도 핵심 내용에는 작금의 민주주의 위기 상황에 대한 단기 및 중장기적 해법이 포함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당위성은 물론 현실성도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진보개혁진영의 정당들 모두가 참여할 수 있을 것이며, 국민의 지지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강조하고 있다. 말하자면 `(신)민주연합`을 이루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낡은 틀이다. 설득력도 떨어진다. 현 상황에서는 민주주의의 질과 양을 논할 수는 있어도 민주주의의 진위 여부를 논하기는 어렵다.
문제를 삼아야 할 것은 민주주의의 테두리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합법적인` 독선과 독주다. 그러나 이렇게 합법한 독선과 독주가 가능한 것이 `다수제 민주주의`(majoritarian democracy) 혹은 승자독식형 민주주의의 특징이기도 하다.
승자독식형 민주주의, 대안은 없나
사실 독선과 독주는 MB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예컨대, 노무현정부의 한미FTA 추진도 매우 독선적이지 아니했는가. 그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삼권분립제 등의 권력견제 장치가 우리보다 훨씬 뛰어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왕적 대통령제 국가라는 비판을 받는 다수제 민주주의 국가다.
따라서 정부의 독선과 독주를 문제 삼아 정치연합을 형성하자는 것이라면 단순히 민주주의의 회복을 외칠 것이 아니라 지금의 승자독식형 민주주의가 아닌 `다른 유형의 민주주의`, 이를테면 `합의제 민주주의`(consensus democracy)의 발전을 제창하고 나설 일이다. 합의제 민주주의에서는 행정부의 독선과 독주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념과 정책기조가 분명한 셋 이상의 유력 정당들이 주요 사회경제 집단들의 이익을 행정부와 입법부 내에서 효과적으로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부의 일반 형태는 이 다수 정당들에 의해 구성되는 연립정부다. 물론 입법부에서도 어느 한 당이 단독다수당의 지위를 차지하기는 어렵다.
요컨대, 어느 세력의 독식도 허용하지 않는 민주주의 체제인 것이다. 이 방향으로의 정치연합은 단순한 `민주연합`이 아니라 `합의제 민주연합`으로 구체화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일각에서는 `반MB연합`을 주창한다. 정치연합의 구심력 확보 차원에서는 매우 탁월하고 현실적인 연합 틀이다. 그러나 그 내용이 현직 대통령 개인(과 그의 정책)에 대한 반대에만 머문다면 모처럼 마련된 정치연합의 기회를 낭비하는 것일 수도 있다. 반MB연합은 형성 그 자체만으로도 민주주의의 질적 후퇴에 대한 효과적인 경종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만 그칠 경우 단기적 처방에 불과하다. 대통령의 독선과 독주에 의한 (MB 이후에도 여전히 발생할 수 있는)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근원적 해법이 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기왕이면 중장기적 처방도 연합의 내용에 포함돼야 한다. 상기한 `합의제 민주연합`의 내용이 중시될 까닭이다.
현실성이 약한 `반신자유주의연합`
`반신자유주의연합`도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대안 제시까지도 그 내용에 포함될 수 있다면 이 움직임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요청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문제다. 제1야당인 민주당이 이 연합에 참가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민주당에는 신자유주의자로 구분할 수 있는 의원들이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별 정치인 차원의 연합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면, 반신자유주의를 내세워 정치연합을 구성해내기는 어렵다. 보다 일반화해서 말하자면, 지금의 한국 정당구도에서 이념적 요소가 분명한 정치연합의 형성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같은 소수정당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지역 혹은 인물 중심 정당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는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의 소위 `민들레연합` 혹은 `사회경제민주화연합`도 매력적이기는 하나 현실성은 떨어지는 제안이다. 그가 강조하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발전 필요성과 당위성에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신자유주의 문제의 궁극적 해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는 혹은 사회경제적 민주화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는, (지금의) 민주당과의 연합은 어려우리라는 것이다.
합의제 민주주의 발전으로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사실 한국의 신자유주의 문제의 해법 역시 민주주의의 유형 문제와 연결된다. 신자유주의 문제의 해결은 상기했듯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진전 정도에 달려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이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진전은 사회경제적 약자를 대변하는 이념 혹은 정책 정당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한국형 승자독식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이념이나 정책 정당들이 부상하기 어렵다. 따라서 지금의 민주주의 체제로는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신자유주의화는 단지 MB정부 하에서만이 아니라 (그 의도와는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지난 10년간의 민주정부 하에서도 지속적으로 진행돼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민주정부 시절에도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달성을 본연의 사명으로 하는 이념 및 정책 정당들이 부재했거나 무력했음을 의미한다.
이념 및 정책 정당 부재의 일차적 원인은 승자독식 선거제도인 소선거구 일위대표제에 있었다. 이 선거제도가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와 결합함으로써 지역기반이 취약하기 마련인 이념이나 정책 정당들이 들어설 자리를 내주지 않았던 것이다.
설령 어렵사리 국회에 진출한다 할지라도 위임대통령제라는 승자독식 권력구조 하에서 군소야당에 불과한 이념이나 정책 정당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이 같은 승자독식형 민주주의 제도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정당 견제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신자유의화의 진행을 억제하거나 그 폐해를 최소화하고자 한다면 현실적으로 어려운 `반신자유주의연합` 혹은 `사회경제민주화연합`의 성사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우선은 (좀 돌아가는 듯 하더라도) 합의제 민주주의의 발전을 목표로 하는 정치연합의 형성을 위해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의 (정치)민주주의 체제가 비례대표 선거제도와 의원내각제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합의제 민주주의 유형으로 발전해간다면 사회경제적 약자를 대변하는 이념 및 정책 정당들의 국회 진출은 용이해질 것이며 그들의 정책결정권 역시 상당 정도 보장받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사회경제 민주주의는 그때에야 비로소 안정적인 발전궤도에 올라설 수 있다.
단기 및 중장기적 처방이 포함된 현실성 있는 정치연합
이 글의 결론을 진보개혁진영의 정치연합은 더도 덜도 아닌 `합의제 민주연합`이 돼야 한다고 내릴 수 없음이 안타깝다. `합의제 민주연합`은 `반신자유주의연합`과는 다른 이유로 (아직) 현실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도자들 중의 상당수는 우리 사회의 획기적 개혁을 위해서는 현행 승자독식형 민주주의 체제가 오히려 유리한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 좋은 대통령이 나타나 자신의 막강한 힘을 좋게 쓰면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국민의 상당수도 아마 같은 생각일 게다. 더구나 우리 국민에게 합의제 민주주의라는 것은 여전히 매우 낯선 개념이기도 하다. 이 상황에서는 설령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 `합의제 민주연합`을 주창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실현될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고 `민주연합`이나 `반MB연합` 혹은 `반신자유주의연합`의 어느 하나로 만족하자고 할 수도 없다. 각각 상당한 약점 혹은 맹점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최소주의 강령을 따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듯싶다. 각 연합안의 내용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최소부분들을 골라내고 그중 참여 정당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정치연합을 구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합의제 민주연합`에서는 비례대표제를 뽑아낼 수 있다. 합의제 민주주의 작동의 핵심기제는 어차피 비례대표제다. 비례성이 충분히 보장되는 선거제도가 도입되면 이념과 정책 중심의 다정당정치가 활성화되기 마련이며, 권력구조 역시 종국에는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 등과 같은 합의제형으로 전환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비례대표제의 전면 도입이나 획기적 확대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기왕에 주장해온 내용이다. 연합을 성사시키고자 한다면 민주당이 이에 대해 크게 반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반MB연합`이나 `반신자유주의연합`에서도 비정규직 급증, 부자 감세, 토건국가화 등의 문제에 대한 해법은 각 정당의 동의하에 정치연합의 내용으로 들어올 수 있다.
요컨대, 단기 및 중장기적 처방이 포함된 필요 최소한의 정책 혹은 제도 대안 패키지를 구성하여 그것을 내용으로 하는 현실성 있는 정치연합을 이루자는 것이다. <창비주간논평>
저자 소개
최태욱 /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국제정치학. 한미FTA 감시단 운영위원. 미래전략연구원 세계화위원회 대표. 외교통상부 자문위원.
저서로 『세계화시대의 국내정치와 국제정치경제』, 주요 논문으로 「대외통상정책의 국제정치와 국내정치: 한일FTA를 중심으로」「지역주의의 제도화에 끼치는 국내정치변수의 영향력: 동아시아 중심의 이론적 고찰」「한국의 FTA 확산전략과 정당체계의 개혁」「한국의 FTA 정책결정과정」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