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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식 기자 | 입력 2009-12-08 | 수정 2009-12-08 오후 6:44:07 | 관련기사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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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히 비싸지 않은 장급 호텔, 영하로 내려가 상당히 추웠지만 따뜻한 온천수를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다. 피트니스와 사우나 는 새벽부터 다음날 밤 12시까지 무료. |
창녕은 경남 내륙지방으로, 경남의 여느 농촌도시와 다를 바 없이 산업화에 밀려나면서 흔히들 말하는 성장속도가 더디기만 한 그런 곳이다.
창녕은 우포늪과 양파의 고장으로도 유명하지만 지난 1973년 1월 창녕군 부곡면 거문리에서 70℃에 이르는 온천수가 처음 발견된 후 급속하게 이 일대가 개발되면서 온천의 고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77년 구마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창녕군 부곡면 일대가 국민관광지로 지정됨에 따라 일대 약 1.65㎢를 관광휴양지로 개발하고, 고급 호텔과 여관·대중탕 등의 온천시설과 공원녹지를 비롯한 각종 위락시설을 갖춘 종합관광단지로 조성돼, 매년 360만 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는 우리나라 유수의 관광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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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곡면 일대, 갑작스러운 한파로 영하로 뚝 떨어지자 거리가 한산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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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의 참맛은 이런데서 찾아야 제대로다. 좋은 흑돼지를 안주삼아 소주 한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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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 주차장 옆, 펌핑해 올리는 온천수에서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 |
창녕군은 놀랍게도 우포늪과 양파의 고장, 부곡 온천, 영산 줄다리기 등으로 흔히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산재해 있는 문화유적지가 많아 매우 소중한 가치를 지닌 우리역사의 보배 같은 곳이다.
우선 창녕시내만 해도 걸어서 10 ~ 20분 내에 눈으로 보고 확인 할 수 있는 역사유적지가 한 두 곳이 아니다.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겠지만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진흥왕 순수비’가 아닌 국보 제33호 ‘진흥왕 척경비’가 시내 창녕경찰서 바로 옆에 서 있고, 창녕 객사와 창녕 척화비 등이 나란히 있는 만옥정 공원이 그렇다.
또, 창녕 성당에서 3 ~ 4분 정도 걸어 내려가면 보물 제310호인 ‘창녕 石氷庫’가 있고, 또 10여분 남짓 걸어가면 술정리 東 3층석탑이 자리하고 있으며, 거기서 다시 10여분을 걸어가면 술정리 西 탑이 자리하고 있는 등 여러 곳에 문화유적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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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가 너무 추워 아침을 좀 든든히 먹으려고 국물 있는 음식을 찾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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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비찜을 푸짐하게 준비해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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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여행지에서 종교 의식에 참여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필자는 카톨릭을 신앙으로 하고 있어 창녕성당을 찾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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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의 본당들이 비슷비슷한 연령대로, 창녕성당은 60년의 세월을 보냈다. |
창녕 문화공원이 지역민들의 깔끔한 휴식공간으로 잘 준비돼 있고, 창녕공설시장은 작은 규모지만 깨끗한 아케이드로 구태를 벗고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특히, 공설시장주차장은 최고로 준비돼 있어, 장을 찾는 손님들에게는 매우 편리할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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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310호로, 창녕읍 송현동 288번지에 소재하는 창녕 石氷庫 |
석빙고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겨울에 채집해 두었던 얼음을 봄 여름 가을까지 녹지 않게 효과적으로 보관하는 지금의 냉장고 역할을 하는 인공적 구조물이다.
외견상 고분과 같은 형태를 띠는데, 빙실이라는 공간이 주변 지반과 비교해 절반은 지하에 있고 나머지 절반은 지상에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고, 바깥 면은 보온을 위해 흙으로 두껍게 덮여있기 때문이다.
주로 강이나 개울주변에 만들어지는데, 창녕 석빙고 역시 서쪽으로 흐르는 개울과 직각이 되도록 남북으로 길게 위치하고 있으며, 입구를 남족으로 내어 얼음을 쉽게 옮길 수 있도록 했다.
입구 안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밑바닥은 경사졌고, 북쪽 구석에는 물이 빠지도록 배수구멍을 두었으며, 바닥은 네모나고 평평하다. 내부는 잘 다듬어진 돌을 쌓아 양옆에서 틀어 올린 4개의 무지개모양 띠를 중간 중간에 두었다. 각 띠 사이는 긴 돌을 가로로 걸쳐놓아 천장을 마무리했다.
또한 천장의 곳곳에는 요철을 가진 환기구멍을 두어 바깥공기가 드나드는 것을 조절해 냉기가 오래가게끔 만들었다. 창녕 석빙고는 입구에 서 있는 비석의 기록을 통해 조선 영조 18년(1742) 당시 이곳의 현감이었던 신서에 의해 중수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 부분의 양식 또한 조선 후기 모습이 잘 담겨져 있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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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차비를 받지 않는 공설시장 주차장은 재래시장 고객을 유인하는 또다른 요소다. 잘 정비돼 있고 질서가 있어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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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다지 화려한 아케이드는 아니지만 실속있게 개선한 재래시장으로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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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보 제34호 술정리 東삼층석탑과 西삼층석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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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보 제34호인 동삼층석탑을 지킴이 혜일 스님, 동탑과 서탑에 대한 내력과 창녕군에 소재한 여러 역사유적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주셨다. |
이 탑은 이중기단 위에 삼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크기와 조각수법으로 보아 불국사 석가탑과 비교될 만한 통일신라 초기 석탑의 위풍이 있는 아름다운 탑이다.
1965년에 해체 수리 과정 중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는 용기가 발견됐다. 현재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으나 탑이 크고 짜임새가 장중하며 훤칠해 기품 있게 보인다. 이 탑의 명칭에 東자를 붙인 것은 한 절터 안에 2개의 탑이 세워져 있어서가 아니고, 술정리에 두 개의 탑이 있기 때문에 구분하기 위해 붙여진 명칭이다. 현재 탑의 높이는 5.75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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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녕 客舍 |
객사는 외부의 관원이나 외국 사신이 묵는 숙소이자, 임금과 대궐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는 곳이다. 그러므로 객사는 왕실의 권위를 반영하는 중요 지방 공공시설의 하나였다.
창녕현 관아의 부속 건물이었던 이곳 객사는 언제 세워졌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300 ~ 400년 전에 지어졌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일제시대 때인 1924년에 시장을 세운다는 구실로 객사를 창녕읍 술정리로 옮겼다가, 1988년에 이곳으로 이전해 보수했다.
객사의 전형적인 건물 배치는 종묘의 건물을 모델로 했기 때문에 중앙에 주 건물이 있고, 좌우에 익사가 있는 구조이다. 주 건물로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이 건물에는 벽채나 창호도 없이 기둥과 지붕 구조만 남아 있고, 또 좌우의 익사도 없어서 원래의 형태를 알 수가 없다. 더구나 지붕도 일반적인 객사에 비해 매우 낮고 건물의 방위조차 원형과 달라 권위 있던 객사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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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진흥왕 척경비, 국보 제3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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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 642자 중 400자만 판독이 된 상태다. |
이 비는 삼국시대 신라 진흥왕(540~576, 재위)이 세운 기념비이다. 흔히 순수비로 통칭되나 북한산, 황초령, 마운령에 있는 순수비처럼 순수관경이란 말이없고 다만 왕이 새 점령지를 다스리는 내용과 이에 관련된 사람들을 열거했으므로 따로 척경비라 일컫는다. 단양 적성의 진흥왕비와 비의 성격이나 형태가 거의 비슷하다.
비문 첫머리의 “辛巳년 2월 1일 立”은 진흥왕 22년(561)으로 추정돼 기존 3개의 순수비보다 수년 앞서 건립했음을 알 수 있다. 매끄러운 화강암의 자연판석을 약간 다듬어 비문을 새겼으며, 개석이 없고 인명과 관등의 표기 방식이 독특하며 고졸한 해서체 등을 지녀 신라 비석 중 가장 오랜 형식을 보여 준다.
전문 642자 가운데 400자 정도가 판독됐다. 앞 부분은 마멸이 심하고, 뒷 부분은 관련인사가 나열돼 있다. 모두 27행인데 대개 한 줄에 26자씩 적었고 끝줄은 3자 이다. 돌의 크기는 높이 178cm, 폭 175cm, 두께 약 30cm이다. 본래 화왕산 기슭에 있었던 것을 1914년에 발견했고, 1924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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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객사, 척경비, 척화비 등이 모여 있는 창녕 만옥정 공원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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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넘쳐나는 재고량과 쌀값 폭락에 항의하는 성난 농심들이 지난 11월 항의의 표시로 농협중앙회 창녕군 지부앞에 나락가마를 쟁여놓은 모습이다.
농민들은 쌀값 해결을 위해 대북지원 40만 톤을 요구하고 있으나, 책임있는 사람들은 까마귀 활 보듯 하는가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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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녕 시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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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녕 제일고등학교 뒤, 등기소 앞인데 자그마하고 운치있는 공원이 있었다. 봄 가을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나들이 나올 만한 곳으로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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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抗眉亭(항미정) |
창녕읍을 벗어나 만년교와 항미정, 영산줄다리기로 유명한 영산면으로 향했다. 예부터 영산 고을의 진산인 영축산은 불덩어리의 형상을 띈 산이므로 고을에 화재가 자주 일어날 수 있다하며 “불은 물로 다스린다”는 오행 사상에 의거, 화재를 예방하고 또 농사에도 이로운 治水口(치수구)로 벼루모양의 못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硯地(연지)라 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동안 가꾸지 않아 못 구실을 못하다가 1889년 신관조 현감이 다시 파고 막아 개울물을 끌어들이고 하늘의 五星(오성)을 본따 다섯 개의 섬을 만들었다.
삼년 뒤, 그 중 큰섬에다 여섯 기둥과 굽은 난간에 한칸의 초가 정자를 세우고 중국의 유명한 항주 호수의 眉亭에 비겨 현판을 항미정이라 한 것이 최초의 이 정자다.
그후 1920년대 두 칸 사각의 기와정자로 개축했다가 1971년 다시 육각정자로 크게 중건해 오늘날의 항미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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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마음을 묘하게 하는 못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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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거위와 오리들이 이 못의 걸작 중 하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새*깡`을 던져 줬길래 사람을 보면 환장을 하고 달려와 뭔가를 던져 줄때까지 `꽦꽦`거린다.
그 큰 연못을 한바퀴 다 돌때까지 빨리 뭐 먹을 것 달라고 시끄럽게 따라와서 하는 수 없이 인근 가게에서 `새*깡`을 사주고서야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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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간 구경하느라 서면 달려와서 뭔가를 내놓으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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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미정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마련한 화장실인데, 조명은 꺼져있었고, 좀 지저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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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옛모습을 찾을 수 없는 만년교 |
영산 만년교는 마을 실개천 위에 무지개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돌다리로, 실개천이 남산에서 흘러내린다 하여 ‘남천교(南川橋)’라고도 불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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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튼튼히 하려는지,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다. |
개천 양쪽의 자연 암반을 바닥돌로 삼고 그 위에 잘 다듬어진 화강암 석재를 층층이 쌓아 무지개 모양의 홍예(虹霓)를 이루고 있다. 그 위로는 둥글둥글한 자연석을 쌓아 올리고 맨 위에 얇게 흙을 깔아 다리 위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았다. 노면은 곡선을 그리며 양 끝을 길게 늘이고 있어 다리의 분위기를 한결 아늑하게 해준다.
조선 정조 4년(1780)에 처음 쌓은 것을 고종 29년(1892)에 다시 쌓아 놓은 것으로, 지금도 마을 사람들이 통행할 만큼 튼튼해 홍수 등에도 전혀 피해가 없다고 한다.
이 다리는 홍예(虹霓) 석교(石橋) 옆에 교비(橋碑)가 서 있어 고종(高宗) 29년(1892)에 중축한 만년교임이 밝혀졌다. 홍예교는 개울 양 기슭의 자연 암반에 기대어 쌓았으며 반원의 홍예는 화강석(花崗石) 각재(角材)를 이용했으나, 그 밖의 교벽(橋壁)은 자연 잡석을 쌓아 메꾸웠다.
교상에 난간을 설치한 흔적이 없으며, 흙을 얹은 양변에는 지상 통로처럼 풀이 자라고 있다. 다리 길이는 13.5m, 폭은 3m이며 홍예를 이룬 안쪽 반원의 지름이 11cm, 높이는 5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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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운날, 그저 어묵국물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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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이곳에 서 있는 느낌을 어떻게 나타내야 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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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과 같이 할때에는 2인용 자전거가 안성마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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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포 늪 둑을 따라 달리노라면 스트레스를 말끔히 날릴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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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늪 둑에서 바라본 화왕산, 지난 2월 88명을 죽거나 다치게한 화왕산이 정상부분 갈대가 있었던 것을 확인해 주듯 누렇게 변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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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를 돌리면 또 다른 풍광에 넋을 잃고 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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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동요 `산토끼`의 고장 창녕군 |
국민동요 `산토끼`는 1928년 일제시대 이일례 선생이 창녕군 이방 초등학교 근무당시 학교 뒷산 고장산 기슭에서 평화롭게 뛰놀던 산토끼 모습을 보고 되찾고자 하는 항일사상과 동심이 담긴 산토끼 노래를 작사 작곡해 전국으로 전해졌다.
이에 국민동요 산토끼 노래의 탄생지인 창녕군을 널리 홍보하고 군민의 자긍심을 드높이기 위해 우포늪에 산토끼를 길러 노래의 뜻과 국민동요 산토끼 발생지를 재조명하고자 한다고 안내판에는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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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포늪 생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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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태관 앞 미니 우포늪에 모형물을 설치해 놓은 모습인데, 이날 날씨가 추워 강이 얼어붙은 상태다. 고둥줍는 아주머니도 고기잡는 어부도 추워 보인다. |
한창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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