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 작품 전시발표회-가슴 먹먹해지는 글들

> 뉴스 > 영상뉴스

문해 작품 전시발표회-가슴 먹먹해지는 글들

한창식 발행인  | 입력 2014-12-10 오전 06:10:27  | 수정 2014-12-10 오전 06:10:27  | 관련기사 3건

 

 교육차원 중고등생 관람해야

 

 

고성박물관에서는 지금(129) 아주 특별한 작품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들 작품들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자신의 어머니가 살아 계시다면 당장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들어보거나 달려가 어머니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지게 되고, 이 세상에 안 계시다면 어머니 생각에 눈물짓게 되는 그런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19일까지 열리는 문해 작품 발표전시회가 열리는데, 지난날 한글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아예 받을 수 없었던 어머니들에게 그 배움의 기회를 주기 위해 고성군청에서 마련한 것이다.

 

이번에 문해작품을 발표한 어머니들은 교육이 이뤄지는 마을별로 학당이라 불리는 곳에서 고성군에서 파견한 문해 교육사들로부터 지난 한 해 동안 한글을 배우며 더러는 그림도 그려보고 가벼운 요가도 배우기도 하면서 자신들의 마음을 글이나 그림으로 나타냈다. 난생 처음 자신의 생각을 이 세상에 남기게 된 것이다.

 

나는나는 당동학당 진영순(79)

 

나는나는 보고 싶어

선생님 얼굴이 보고 싶어

나는나는 듣고 싶어

자식들 목소리가 듣고 싶어

나는나는 먹고 싶어

밥 고기 나물 과일 모두 다

나는나는 가고 싶어

내 고향을 언제 가려나

나는나는 되고 싶어

학자가 되고 싶어

 

2

 

80, 90평생 살아오는 동안 존재가치 조차 없었던 여자아이로 살다가 생면부지의 남자를 만나 자식을 길러내며 죽도록 일만하다 자식들도 영감도 모두 떠나고 이제는 인생의 황혼 길에 들어서 자신의 존재 한 번 세상에 알리지 못하고 그렇게 마감하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바로 문해교육을 받고 새 세상으로 나온 나를 발견한 것이다.

 

추수 두호학당 최정수(83)

 

콩밭에 콩은 익었건만

누가 와서 날 거들어줄꼬

우리 영감 날 먹고 살라고

밭 한 떼기 달랑 남겨 주었건만

이왕이면 좋은 땅도 천지던데

하필이면 거칠고 어신땅을

날 보고 어쩌라고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콩아 콩아 널 거두어서 장에 내다 팔라쿠모

내 몸이 말을 안 들어서 어찌할꼬

 

8

 

소녀시절 꿈, 아득한 기억 저편에서 떠오르는 소녀의 꿈이 당신의 눈앞에서 마치 어제처럼 살아나고, 살아온 동안 수 십 년 표현하지 못하고 묻어두었던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 마구 솟아올라 예쁜 글들로 다시 살아나 눈앞에 펼쳐지니 새 삶이 아니고 무엇이랴!

 

작은아들 식량 최낙임

 

화요일, 학당에 안 가고

방아 찧으러 갔다

작은 아들에게 쌀을 보내줘야 하니깐

그런데 아직 택배가 오지 않는다

에이 공부나 하러 갈 걸

 

10

 

세상을 읽어내는 눈도, 마음의 눈도 모두 다 밝아져 새 세상을 맞이했건만 자꾸만 나약해지는 육신과 붙잡지 못하고 저만치 가는 무심한 세월에 대한 하소연은 어디다 할까.

 

산골버스 오산학당 김정이

 

버스야 너는 이리저리 잘도 나니는 구나

세월 흘렀는데 버스는 그대로 잘도 다니고

나만 변하는 구나

 

12

 

인생을 차분히 되돌아보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과 아직 끝나지 않은 생에 대한 마음가짐이 예사롭지가 않다. 어머니들이 풀어 놓은 글 속에는 깊고 깊은 생의 철학이 담겨있다. 수 십 년 머릿속을 맴돌고 가슴 속에 머물렀던 말들은 짧은 글 귀 속에 진하게 녹아 있다.

 

세월 두호학당 이두선 (91)

 

남들은 날보고 아흔 살이라 한다

하지만 내 마음은 아직 청춘인데

학교에서 공부하고 1, 2, 3, 4도 배우고

내 마음은 청춘인데

언제 세월이 그렇게 지나 갔나

남들은 날보고 아흔 살이라 하지만

내 마음은 아직도 청춘이란다

 

 

13

 

어머니들의 이번 전시회는 정말 뜻밖의 작품들이 많았다. 매우 교훈적인 글들과 짧은 문장 속에서 촌철살인을 느끼는 철학적인 글들도 있었다. 80~90평생을 살아오면서 입에서 뱉으면 허공에 사라져버리는 표현 말고는 내 생각을 남겨 둘 길이 없었던 어머니의 생각을 당신 스스로가 쏟아내 직접 쓴 글이라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충격적인가.

 

나의 꿈 오산학당 황순자(74)

 

내 나이 열일곱에

막내 동생과 같은 아이들과 함께 공부를 하다 보니

놀림을 받았던 내 별명은 키다리 박사

어려운 집안 형편에 석 달을 못 넘기고 그만 두었네

이제 내 나이 칠십에 학당 입학하여

배움의 기쁨에 가슴이 콩닥콩닥

군에 간 손자에게 위문편지 써

알콩 달콩 묻어 두었던 나의 꿈이 새록새록

배움이 우리들에게 건강 찾고 꿈 찾고

오산학당 친구들 오래오래 같이하세

선생님 사랑해요

 

6

 

19일까지 전시되는 이번 전시회는 특히, 관내 중고등학생들이 모두 좀 관람할 수 있으면 좋겠다. 매우 훌륭한, 살아있는 교육이 될 것 같다.

 

學而時習之 不亦悅乎(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면 재밌지 않겠는가!)

공자 論語 學而편의 이 문장은 어머니들의 글에 하나같이 들어있었다.

 

 

 

한창식 발행인 gsinews@empas.com

ⓒ 고성인터넷뉴스 www.gsinews.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네티즌 의견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작성자 :
  • 비밀번호 :

칼럼&사설전체목록

[기고] 인구감소 해결책, 외국인 유학생에 답이 있다

최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