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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희 숲해설가 | 입력 2013-04-01 오전 07:44:18 | 수정 2013-04-01 오전 07:44:18 | 관련기사 18건
봄비가 오십니다. 많이 메말랐던 대지에는 단비가 되겠지요.
이 비 그치고 나면 완연한 봄꽃의 잔치가 시작됩니다.
산속에서는 비가 진눈깨비로, 밤새 눈으로도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봄꽃은 피어오르고 세상은 생명의 잔치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저 멀리 메타세콰이어 마른 가지에도 물이 오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별꽃
작고 앙증맞다고 해야 적당한 표현이 될 것 같은 별꽃이랍니다. 자세히 보면 열장처럼 보이는 꽃잎이 사실 한 장뿐인데 또 한 장은 토끼의 귀처럼 두 쪽으로 갈라져 곤충들을 유혹합니다. 이른 봄 양지바른 곳부터 피어나 일찍 가루받이를 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두 장처럼 보이는 꽃잎 전략인거지요.
하나 더, 별꽃의 씨앗 표면에 돌기가 돋아있어 흙과 함께 사람의 신발바닥에 붙어서 종자를 멀리 보낼 수 있답니다. 작아도 생존전략은 최고 입니다. 여기에 생장방식이 유별난데요. 일단 한줄기의 끝 꽃이 피어나면 다시 꽃 아래 있던 줄기양쪽으로 뻗어나가 꽃을 만들고 다시 그 아래쪽 두개의 나눔가지들을 만들어 뻗어가는 방식입니다. 오히려 작은 꽃이 생존전략인 꽃, 그러나저러나 자세히 볼수록 예쁜 꽃이랍니다.
올괴불나무
햇살이 나기에 올랐던 산속 정상쯤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진눈개비 같은 봄을 시샘하는 차가운 빗속에서 올괴불나무꽃을 발견했습니다. 인동과 이른 봄 피기 시작하는 올괴불나무는 빨간 꽃술을 매달고 있다가 수정이 끝나면 검은 자줏빛으로 변합니다. 꽃은 두개씩 한 가지에서 피어나고 땅을 바라봅니다. 아름다운 꽃의 자태는 나풀거리는 무대 위의 무희를 연상케 합니다. 나중에 하트모양의 열매를 만들어 내겠지만 오늘 올괴불나무꽃은 조용히 봄비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꽃다지
냉이와 함께 들녘가득 피어나는 꽃다지입니다. 십자화과 식물로 한 포기에서 여러 꽃대가 피어납니다. 나물로 먹기도 합니다만 같은 시기 피어나는 냉이 맛에는 못 미치는 것 같아요. 무리지어 폭발적으로 피어나는 꽃답지 않게 꽃말은 "무관심" 이라는 군요. 들녘 10~20센티의 크기로 자랍니다. 다른 이름으로 모과정력, 정력자, 코딱지나물이라고도 한답니다. 익숙한 모양의 꽃다지가 들녘에 한창입니다.
냉이
냉이 캐러 산으로 들로 나가는 계절입니다. 꽃대가 올라오기 전에 나물로 먹어야 제 맛이겠죠. 냉이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송이에서 수십 개의 꽃이 매달려 있습니다. 나름 화려합니다. 우리네 사람들 냉이와 관련한 추억꺼리 하나 없는 사람은 보기 어려울 겁니다. 이맘때 따듯한 봄 햇살 속에서 논둑이며 밭둑 냉이캐던 어머님의 뒷모습이 아련합니다. 냉이의 시원하고 달달한 맛이 나는 냉이된장국에는 늘 어머님의 손맛이 녹아있지요. 아이들과 함께 냉이 캐러 나가보세요. 아이의 어린 시절 기억 남는 추억꺼리 하나쯤 더 만들어 주게 될 겁니다.
민들레
요즘 민들레가 지천에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민들레 몇 뿌리만으로도 저녁 한 끼 무침나물로 충분합니다. 민들레만 보이면 열명 중 한 두 사람은 꼭 토종민들레냐고 묻기 일쑤입니다. 그때마다 웬만하면 외래종이라고 대답합니다. 토종민들레는 일 년 중 딱 한번 꽃피우고 수정하고 맙니다. 외래종은 지금부터 시작해서 첫눈 오기 전까지 계속 피어나기를 반복하지요. 더욱이 토종민들레와 외래종이 수정하면 외래종만 번식이 가능하다는 군요. 생명력 끝내줍니다. 이제 귀화식물이 된 외래종 민들레라도 좋게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이제는 산나물 축제기간 중 한쪽 귀퉁이를 차지하게 된 민들레나물.. 장아찌로 만들어도 맛있더군요. 지금부터 민들레는 시작입니다.
제비꽃
오랑캐꽃이라고도 합니다. 작고 앙증맞은 이 녀석이 필 때쯤 오랑캐가 침범해 들어와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군요. 그런 거 보면 풀꽃들조차 사람들의 삶과 역사를 함께 해왔답니다. 폐쇄화로 번식이 가능하구요. 안되면 뿌리로도 번져 나가는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합니다. 오늘 우리 동네 밭둑에서 피어나는 제비꽃을 보았습니다.
쇠뜨기
속새 속에 속하는 양치식물종류 쇠뜨기가 싹을 피워내기 시작했습니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여되고 나서, 가장 먼저 싹을 피워낸 녀석이 바로 이 쇠뜨기였답니다. 고생대 데본기에서 부터 존재 했다는 쇠뜨기의 생명력이 얼마나 끈질긴지 알 수 있는 거지요. 그래서였는지 한때 만병통치약처럼 회자되자 온 세상 쇠뜨기가 수난 당하던 사건을 "쇠뜨기신드롬"이라고 했답니다. 수만 년 전 기후변화에도 굳건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쇠뜨기도 사람들 몸에 좋다는 소문하나로 잘 못하면 씨가 마를 수도 있었던 절체절명의 순간이 이었답니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이 녀석을 뱀 밥이라고 불렀는데 생긴 것이 뱀처럼 생겨서 일까요? 쇠뜨기라는 이름은 소가 잘 뜯어먹는다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늘 친근하게 우리 곁을 지켜주던 녀석이 싹을 틔우고 있답니다.
이광희 숲해설가 gsinew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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