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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희 숲해설가 | 입력 2013-05-20 오전 07:33:58 | 수정 2013-05-20 오전 07:33:58 | 관련기사 18건
- 여름은 흰색으로 시작된다
초여름으로 들어섰습니다. 확실히 여름입니다. 사람들은 3, 4월의 생각은 잊은 채 봄도 없이 여름이 왔다고 합니다. 아시잖아요. 이미 풀꽃들의 세상에는 봄부터 늦봄, 그리고 여름으로의 이행이 분명하잖아요.
봄은 노란색으로 시작돼 분홍으로 만개하는 듯 합니다만, 여름은 하얀색으로 시작 되는 것 같습니다. 나무들이 피우는 꽃들은 대부분 하얀색이랍니다. 아카시나무로 부터 칠엽수며, 층층나무며, 고광나무며, 미처 소개 못한 노린재나무에 산딸기며 모두 하얀색 꽃입니다.
여전히 풀들은 다채로운 색감을 자랑합니다만 나무는 흰색이 대세랍니다. 짙은 녹음으로 우거진 산속, 여전히 풍매화 송홧가루는 세상을 뒤덮습니다. 그사이 써래질로 분주한 우리네 논, 벌써 모내기는 시작됐습니다.
고광나무
몇 년 전인가 산림청에서는 매월 그 달의 꽃을 선정했습니다. 7월의 꽃으로 고광나무가 선정됐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고광나무는 이맘때 산에서 많이 만나는 꽃입니다. 그런데 좀 늦은 시기에 선정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답니다. 어쩌면 5월은 선정해야 할 꽃나무가 너무 많았기 때문일 겁니다. 일 년 중 가장 많은 꽃들이 피어오르는 계절인거죠. 다 소개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봄비내리고 난 후 산에 올랐다가 빗방울 맺혀있는 고광나무를 발견했습니다. 구름 잔뜩 낀 흐린 날씨에 산속 녹음우거진 곳, 하얀색 고광나무의 꽃은 흰색으로 자체 발광하는 듯 보였습니다. 워낙 꽃이 아름답기도 했지만 빗방울과 함께 한 청초한 모습에 바지자락이 젖는지도 모르고 카메라를 들이댔습니다. 줄기에 솜털이 난 고광나무가 최근에는 조경수로도 활용된다는군요. 꽃이 예쁘고 작은 키 나무이니 나름 활용가치가 높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꽃구경 이거 하나로도 대 만족입니다.
산사나무
얼마 전 장예모 감독의 "산사나무아래"라는 영화를 추천받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첫 장면에서 혁명가의 피를 먹고 자라 빨간 꽃이 피는 산사나무라는 영화 속 설명을 들으며 도저히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산사나무 꽃은 하얀 꽃인데 웬 빨간 꽃? 열매는 물론 빨간색입니다.
영화는 첫사랑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중국의 산천을 배경으로 이어가는데 여기에서 남녀 두 주인공의 몰래하는 만남이 다른 이들에게 발각돼 처벌을 받지나 않을까 노심초사 영화에 집중하지 못해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결국 영화 보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추천해 주셨던 선생님께는 무지 미안했답니다.
산사나무는 여러 가지 약재로도 쓰이고 열매로는 과실주도 만든다고 합니다. 봄비 내리고 난후 산에 갔다가 활짝 핀 산사사무를 찍고 싶었습니다. 멀리서는 그나마 괜찮았습니다만 접사를 시도하려했더니 비에 꽃잎이 뭉개져서 꽃술과 꽃잎의 아름다운 속살은 포기해야 했습니다. 허긴 오늘 포기한 풀꽃 참 많았습니다. ㅎㅎ
목백합나무
청남대 아시죠? 대청호변 대통령 별장 말이에요. 노무현 대통령이 충청북도에 기부하고, 문재인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가끔씩 활용해서 관광가치를 높이겠다는 공약을 했었지요. 말머리가 길었습니다. 바로 이 청남대 들어가는 길이 드라이브 코스로도 아주 멋지죠. 양쪽의 커다란 나무가 바로 "목백합나무"입니다. 튤립나무라고도 합니다. 큰키나무에 백합, 혹은 튤립 같은 꽃이 핀다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지구온난화 이후 가로수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데요. 도시 열을 식혀주고 산소 방출량이 커야 좋은 가로수입니다. 이미 플라타너스(버즘나무)의 생산과 식재가 중단된 상황에서 새로 발굴한 나무가 바로 "목백합나무"입니다.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이 탁월해서 "탄소통조림" 이라는 별칭까지 붙였다나요. 요즘 튤립 닮은 꽃이 한창입니다. 큰키나무라서 꽃을 보기 쉽지 않지만 잘 보시면 어여쁜 꽃이 커다란 나무에 활짝 피어있답니다.
요즘 순천에 가면 정원박람회가 한창이죠? 소프라노 조수미씨 탄생목이 목백합나무라는데 정원박람회에 이 나무를 기증했다는군요. 이래저래 새로운 가로수로 조명 받는 목련과의 목백합나무입니다.
불두화
부처님오신날. 불두화가 한창입니다. 부처님의 머리를 닮아 불두화라 한답니다. 속새에서는 또 이렇게 해석도 하지요. 불두화를 절에 많이 심은 이유는 이 꽃이 중성화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답니다. 수정을 할 수 없는 꽃이라서 이런 이야기가 나도는 거지요
수많은 꽃들이 송이를 이뤄 주변까지 환하게 만드는 폭발적 꽃 나라를 만들면서도 정작 이 모든 꽃잎이 꽃받침뿐일 그냥 "꿈"이라는 거지요. 그렇다고 혹시나 꽃들의 수정 때문에 수행에 지장 줄지도 모를 용맹정진 수도승을 배려함 때문일까요, 아님 삶의 화려함조차 꿈속의 삶일 뿐 이라는 가르침의 꽃이기에 그렇다는 건가요.
어쨌든 오늘, 모든 분들께서는 성불하십시오.
아카시나무
나와 같은 또래 딸 부잣집 셋째 딸 미순이 역시 십리쯤 되는 우리학교를 다니던 몇 안 되던 소녀였다. 왜 그랬는지 눈만 마주쳐도 화끈 붉어지는 볼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아버지와 미순이네 아버지가 같은 직장을 다녔기에 왕래가 있어서 가끔 그 집에 갈 때도 있었고, 유난히 시끄러운 언니들의 귀엽다는 얘기도 별로 싫지만은 않았다.
언젠가는 학교에 같이 가자고, 혹은 집에 같이 가자고 하고 싶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말붙이기가 어려웠다. 하루는 큰맘을 먹고 그 집을 찾아가려했는데 딱히 그 말만 하려고 간다는 것이 쑥스러워서 뭔가 핑계가 필요했다. 당시 나무 잘 오르는 다람쥐 같다는 소리 듣던 내가 겨우 생각한 것이 아카시아(당시에는 그렇게 불렀다)를 한 아름 따다가 주는 상상이었다. 당시에도 퀴퀴한 집안 냄새도 없애고, 나 같은 경우 달콤한 꽃을 좋아해서 아카시나무 꽃다발은 비교적 좋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저기 상처를 내가면서 한 아름 따가지고 방문한 미순이네 집 앞에서 누구냐고 문 열어주러 나온 미순이네 둘째 언니에게-미순이어야 했는데-아카시 꽃을 안기고는 도망치듯 돌아 뛰던 그 아카시나무 향기를 잊을 수 없다. 지금도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으나 얼굴 붉어지던 그 기억이 여전하다. 어쩌면 수놈으로 구실하려던 첫 번째 느낌이 당시의 아카시향기로 기억되던 그 시절이 아니었을까? 여전히 어린 시절 미순이의 미소처럼 아카시 나무는 부끄러움처럼 기억된다.
다시 87년 봄,
아카시 향기 가득할 즈음 교정에 퍼지던 그 향기는 아련한 추억보다 핏빛향기로 내게 다가왔었다. 최루탄으로 가득하던 교내 피해 들어간 도서관까지 최루연기와 아카시 향기가 섞여 묘한 대비를 이루는 기억으로 남게 됐다. 광주 시민들을 학살한 자를 대통령으로 인정치 못하겠다던 그 절규와 아카시 향기는 늘 함께 찾아왔다. 지금도 아카시 향기는 광주를 떠오르게 했고, 대학교정의 민주주의 투쟁을 떠오르게 한다.
아카시 향기는 이렇게 두 개의 기억으로 내게 남아있다.
층층나무 꽃
층층나무는 이름그대로 성장할 때 한 칸씩 자랍니다. 언뜻 보기에도 가지가 한 층씩 자라서 아파트나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어요. 산속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보은에서 청주가는 새로 난 길가 가로수로 층층나무를 심었더군요. 실험적이라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는데 잘 자랄지 걱정스럽습니다. 산속에서도 꽤 비옥한 토양과 습지 많은 계곡 쪽에 많이 나는 녀석이라서요. 어쨌거나 새롭게 도전하는 실험이 잘 됐으면 합니다.
요즘 층층나무가 하얀 꽃을 가득 피어내고 있습니다. 도청 마당 커다란 층층나무도 꽃을 피웠어요. 층층나무는 열 살 이상 쯤 돼야 꽃을 피웁니다. 작은 묘목 심었다고 바로 꽃을 볼 수 있지 않아요. 조경수로 새롭게 조명 받는 층층나무를 주목해 주세요.
병꽃나무
두릅을 따러가거나 혹은 고사리를 뜯으러 산속으로 들어갈 경우가 있죠. 지금은 조금 늦은 감은 듭니다만 이맘때 산속으로 들어가는 길가에 병꽃나무가 한창 피어있습니다. 병꽃나무가 활짝 피어 색이 달라져 있으면 이미 두릅이든 고사리든 심이 들어 채취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제 경험입니다.
최근에 병꽃나무가 화단에 많이 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꽃이 워낙 예쁘고 향기도 좋은데다가 폭발적으로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비교적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녀석이라 우리아파트 뒤편 생태통로에도 활짝 피어있답니다. 산속에서나 보던 꽃나무들을 아파트 주변에서 볼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저에게 이 꽃이 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나무가 바로 이 병꽃나무에요.
블루베리
몇 년 전 부터 블루베리가 유행입니다. 특히 귀농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작물중 하나가 바로 블루베리 입니다. 아예 블루베리를 베란다에 키우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일단 몸에도 좋고 꽃도 예쁜데다가 열매라도 맺으면 뭔가 뿌듯하면서 풍요감이 든다더군요. 몇 년 전 농림부의 귀농귀촌 매뉴얼을 제작하는 일에 참여한 적이 있어서 귀농귀촌하신 분들 인터뷰를 다닌 적이 있었는데 블루베리로 성공하신 분들이 계시더군요.
저에게 늘 풀꽃 이름을 알려주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수목원근처에 까페를 열더니 그 주변에 블루베리 농사를 지으시더군요. 아예 농사꾼이 돼버리셔서 가끔 같이 가던 풀꽃 사진 찍으러 다니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돼 버렸습니다. 주말에 방문했는데 블루베리가 꽃을 피웠더군요. 열매가 열리면 그것으로 스무디를 만들어 판매하신다고 하니 그때쯤 맛을 봐야 겠어요.
살갈퀴
콩과 꽃은 이제 척 봐도 알겠죠? 지금 무심천변에 한창인 살갈퀴입니다. 꽃이 아주 앙증맞아요. 연두색 줄기와 잎, 그리고 꽃이 아름답습니다. 무리지어 피어나는 특성이 있어 조깅용 우레탄 깔린 길옆으로 드문드문 피어있습니다.
어느 풀꽃이라도 생태계의 경쟁은 피할 수 없습니다. 연약해 보이는 녀석도 나름의 생존전략을 가지고 있답니다. 생태계의 구성조건상 동일한 생태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녀석이 같은 시기, 같은 공간에 공존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한 종류만 살아납니다. 지금 무심천변에는 살갈퀴를 포함해 몇 종류가 동일공간의 생태계를 점유하기위해 거의 전쟁 중입니다. 주로 햇빛경쟁이므로 하늘부터 점령해야 합니다. 키가 일단 큰 녀석이 유리합니다. 그래서 밑으로 기는 녀석도 있죠. 아예 사람들이 다니는 길 쪽 밟혀도 생존 가능한 전략을 택한 녀석도 있습니다.
무심천변으로 출근을 하면서 살갈퀴의 전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일단 키 경쟁으로 맞서고 있구요. 여기에 번식을 위한 꽃까지 피워 올렸습니다. 벌 나비를 어떻게 유혹할 것인지, 씨앗은 또 어떻게 퍼뜨려 나갈 것인지. 나는 이 전쟁의 관찰자입니다. 벌써 삼년 째 보고있습니다. 살갈퀴가 씨앗을 만들 무렵 사람들이 개입하겠죠. 다 잘라버리고 맙니다. 살갈퀴는 그 전에 씨앗 번식하는 것 까지 끝낼 수 있을 것인지. 일단은 유리합니다. 흥미진진한 풀꽃들의 전쟁, 결과는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뽀리뱅이
주정뱅이, 앉은뱅이, 가난뱅이 등 "뱅이"라는 단어는 사전적으로 "좋지 않은 행동이나 성질을 나타내는 말 뒤에 붙어, ‘그러한 특징을 가진 사람’의 뜻과 얕잡는 뜻을 더해 명사를 만드는 말"이랍니다. 그렇다면 "뽀리뱅이"의 뽀리는 알려진 바에 의하면 "보리필 때 피는 풀꽃"정도로 해석을 한다고 해도 뭔가 낮춰 부르던 단어가 이름이 돼버린 사례 같습니다.
사실 이른 봄나물로 먹을 때만 해도 겨울의 언 땅을 이겨내고 잎을 넓게 펼치면서 호기롭게 보입니다만, 줄기가 올라오면 말 그대로 그냥 삐쭉 큰 키로 올라와서 볼품없어 보이는 작은 꽃송이 몇 개를 피워 올릴 뿐이죠. 그래서 이름이 이렇게 붙여졌나요.
사실 지칭개도 그렇고 고들빼기도, 왕고들빼기도, 씀바귀도 비슷하게 잎을 펼치다가 줄기를 세울 때면 모두 다른 모양으로 성장합니다. 뽀리뱅이도 그중 하나구요. 모두 나물로 먹습니다. 가을에 한 번 더 피어납니다. 그래서 겨울을 로제트상태로 견뎌 내는 거죠. 그래서 가을철 뽀리뱅이 김치를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씁쓸한 맛은 봄철이 더 강하다고 하네요. 먹어보긴 한 것 같은데 비교는 못해봤습니다.
이광희 숲해설가 gsinew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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