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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희 숲해설가 | 입력 2014-07-16 오후 05:52:53 | 수정 2014-07-16 오후 05:52:53 | 관련기사 63건
박석무 지음 / 민음사
‘다산은 당대의 여러 학자들로부터 《상서》연구에 대한 평가를 받아 지적된 부분을 고치고 보완해 흠이 없는 저서로 만드느라 고령의 나이에도 학문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성실성과 열정을 알아볼 수 있다. 유배지에서 1810년에 완성했던 저서들을 24년이 지나 노령에 수정하고 가필한 정성은 높이 평가할 일이었다.’
지방의원으로 재선된 이후 첫 번째로 집어든 책이 박석무 선생의 최근작『다산 정약용 평전』이다. 예나 지금이나 지방의원으로 스스로를 점검하고 앞으로 할 일을 구상하면서 멘토로서 떠올릴 사람은 역시 ‘다산 정약용’선생이다. 마침 고대하던 정약용평전이 2014년 4월에 발행되어 다행스러웠다. 박석무 선생에게 감사드린다.
다산에 대한 회고는 홍길주가 쓴 《정다산승지회근수서》라는 글에서 되돌아 볼 수 있다. “다산 정대부는 박식함이 우주를 꿰뚫고, 널리 깨달음이 미세한 부분에까지 투철했다. 쌓아둔 것이 드넓고 다루는 것이 많아서 무엇이든 훤히 알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버린 지 몇 십 년, 강가에서 여유롭게 노닐고 있었지만 벼슬을 내리는 임명장은 한 차례도 오지 않았다....중략...궁하게 살면서도 늙도록 저술을 멈추지 않아 위로는 도서와 상수의 오묘함으로부터 구경과 백가, 문자와 명물의 풀이, 병법과 농사, 정치제도, 백성을 다스리고 수사와 재판을 처리하는 제도에 까지 미쳤다네. 전문 분야별로 책을 쌓아 놓더라도 자기 키와 거의 맞먹을 정도라네.”
개혁군주 정조의 신임으로 22세에 처음 알현한 이후 28세에 7품관 희릉직장에 제수되고 초계문신으로 ‘대학’을 강의하고,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에 제수된 이후 수원성의 규제와 ‘기중다도설’을 지어 4만냥을 절약케 했다. 그 후 33세에 성균관 직강에 제수, 경기 암행어사로서 네 개의 고을을 시찰하고 34세에는 동부승지에 제수됐다. 병조 참의에 제수됐다. 다산은 이후에도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되는《목민심서》의 현장이었던 곡산 부사로 제수돼 3년 동안 목민관으로서 활약 한다.
다산의 일생은 18년간의 정조치세에서의 활동과 이후 18년간의 유배생활, 그리고 그의 저작활동으로 이야기 할 수 있다. 다산의 정의로움과 약자를 위한 배려, 민중에 대한 애정은 그의 일생과 그의 저서 속에서 생생히 살아 숨 쉰다. 늘 공부하던 마음가짐과 자식과 가족에 대한 사랑, 나이와 지위고하 관계없는 토론과 학문논쟁은 본받아 마땅하다. 다산이 꿈꾸었던 나라에 대한 실행은 바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다. 또 다산 정약용선생에게 배움을 받는다.
이광희 숲해설가 gsinew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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