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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순 / 자유기고가 | 입력 2014-11-28 오후 12:56:25 | 수정 2014-11-28 오후 12:56:25 | 관련기사 57건
성범죄는 일제시대의 잔재다. 성범죄를 제대로 다스리지 않고 위안부 할머니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국가는 성범죄에 대해 강경하게 처벌해야 될 것이다.
최근 사회가 음란해지고 음란에 대해 처벌이 가볍다는 이야기가 많다. 선조들의 유산이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대법원에서 15세 여중생과 관계를 맺은 연예기획사 대표에 대해 무죄를 선고해 논란이 이는 가운데, 전직 국회의장, 전직 검찰총장 성추행 사건, 제자들을 상습 성폭행한 국립 서울대 교수사건, 계약직 여직원을 성추행한 서울대공원 공무원들 등 세상에 알려진 것 빼고도 무수히 진행되는 성 사건들이 연일 불거지고 있다.
성범죄에 관대한 것은 일제 식민통치의 유산일 뿐 우리 선조들의 법 정신과는 사뭇 다르다.
(1)강간범은 사형, 미수범도 중형
대명률(大明律)에 따라 성범죄를 처벌했다. 여성이 정을 나누기를 원치 않는데도 강간했을 경우는 교형(絞刑ㆍ교수형)에 처하고, 강간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 경우는 장(杖) 100대에 유형 3,000리에 처했다.
(2)결과 뿐만 아니라 과정도 엄하게 다스렸다.
범죄의 동기를 ‘벨 주(誅)자’를 써서 주심(誅心)이라 했다. 춘추시대 노(魯)나라 선공(宣公) 2년(서기 전 607)에 조천(趙穿)이 진(晉)나라 영공(靈公)을 도원(桃園)에서 죽였는데, 당시 정권을 잡은 조순(趙盾)이 토벌하지 않았다.
노나라 소공(昭公) 19년(서기 전 523)에 허(許)나라 도공(悼公)이 병중에 있을 적에 세자(世子) 도지(悼止)가 부왕의 약을 맛보지 않아서 도공이 죽은 적이 있었다. 이들이 직접 임금을 죽인 것은 아니지만 그 동기가 불순하다고 해서 임금을 시해한 죄로 논죄해야 한다는 뜻에서 ‘주(誅)자’를 쓰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동기를 처벌하는 것을 주심지법(誅心之法)이라 한다. 공자가 쓴 춘추(春秋)의 필법(筆法)이 이를 따른 것이다. 물론 동기가 좋은 뜻이면 정상참작이 되었다. 범죄의 결과보다 동기를 보는 주심(誅心) 처벌의 논리가 역경(易經)에 나오는 이상지점(履霜之漸)이었다. 서리를 밟으면 곧 얼음이 얼 때가 닥칠 것을 안다는 뜻으로 어떤 일의 징후를 보고 큰일을 미리 예방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명률(大明律) ‘형률(刑律)’의 ‘범간(犯奸)’ 조항
강간뿐만 아니라 화간(和姦)도 처벌했다. 합의에 의해 성행위를 한 화간(和姦)은 장 80대인데, 여성에게 남편이 있으면 90대로 올라갔다.
조간(刁奸)도 처벌했다. 조(刁)자는 조두(刁斗ㆍ징의 일종)라는 뜻과 간사하다, 머리가 헝클어졌다는 뜻 등이 있었다. 대명률에 조간에 대한 형벌이 화간보다 무거운 100대였는데, 율학해이(律學解頤)에는 ‘조(刁)는 조두(징)라는 뜻이니 음악으로 여성의 마음과 눈을 현혹시켜 간통하는 것’이라 풀이했다.
음악으로 여성을 유혹한 것이 왜 화간보다 더 강하게 처벌을 받는 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율학해이에는 그렇게 풀이되어 있다.
조간에 대해 선조 6년(1573) 유희춘이 조강(朝講)에서 정확한 뜻을 풀이했다. 세종 때 중국 사신 예겸(倪謙)이 오자 세종이 성삼문(成三問)과 신숙주(申叔舟)를 보내서 접대하게 했는데, 평소 조간의 뜻에 의구심을 갖고 있던 성삼문이 예겸에게 “율문에 조간이라고 한 것이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었다.
예겸은 “간부(奸夫)가 간녀(奸女)를 남의 집에 데려다 두는 것을 뜻합니다”라고 답했다.
유희춘은 조(刁)는 곧 이끌다(引)는 뜻이고, 여성을 다른 집에 데려다 두는 것이므로 화간보다 더 무거운데 율학해이(律學解頤)가 잘못 뜻풀이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린 아이를 강간하거나 꾀어서 성폭행했을 경우에는 더 강하게 처벌했다.
‘12세 이하 어린 여아를 강간했을 경우는 화간이라 하더라도 강간과 같이 논죄(和同强論)’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어린이 성폭행범은 예외 없이 교수형에 처했다.
개국 초인 태조 7년(1398) 윤5월 잉읍금(芿邑金)이 11세 여아를 강간했다가 교형(絞刑) 당했다. 세종 17년(1435) 강원도 철원의 사노(私奴) 문수생(文守生)도 11세 된 여아를 강간했다가 사형 당했다.
중종 18년(1523) 윤4월 해주(海州)의 죄수 이천산(李千山)이 아홉살 여아 검주리(檢注里)를 강간한 사건도 사형으로 다스렸다. 조선이 강간범을 사형으로 다스린 것은 여성의 정조를 목숨처럼 소중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어린 여아의 경우 아직 채 피지도 못한 꽃이었기에 더욱 강하게 처벌했다.
김흥순 / 자유기고가 gsinew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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