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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순 자유기고가 | 입력 2015-05-24 오후 04:24:06 | 수정 2015-05-24 오후 04:24:06 | 관련기사 57건
김흥순 / 자유기고가
“과거에는 수많은 기회와 자원이 청년에게 제공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기회와 지원이 사라졌습니다. 우리 사회는 박탈당한 청춘을 얼마나 방기할 수 있을까요? (중략) 청년들이 위험하면 민주주의가 사라집니다.” -147쪽
헨리 지루(HENRY A. GIROUX)의 『일회용 청년: 누가 그들을 쓰레기로 만드는가』(DISPOSABLE YOUTH: RACIALIZED MEMORIES, AND THE CULTURE OF CRUELTY)은 미래를 냉혹하게 내다본다.
(1)신자유주의서 소비 무능력자로 이미지화
(2)미국 보수 언론은 혐오 대상으로 그려
(3)기본적인 생존여건 보장 등 하위 계급 청년들 위한 복지 필요
(4)공동체 회복, 결국 사회 구하는 일
등록금 인상, 늘어나는 빚, 높은 실업률. 어느 나라 청년이 직면한 현실일까. 전 세계다. 오랜 불황과 제도의 후퇴로 인해, 현재 유럽 청년들이 치르고 있는 대가며, 그보다 약간 상황이 낫다고는 하지만 미국 청년들 또한 맞서 싸워야 하는 고통이다. 한국에서도 칠포세대니 뭐니 하면서 신문에 자주 오르는 단골 뉴스다..
일본에서도 낮은 소득에 맞춰 욕망을 억제하고 효율적으로 소비하는 ‘사토리 세대’가 나타났다. 이탈리아에서는 소설 제목으로 ‘1,000유로 세대’가 등장했다. 이 소설은 20대 청년 네 명이 한 달에 1,000유로(약 121만원)를 벌어들이며 간신히 살아가는 이야기다.
미국 교육학자 헨리 지루에 따르면 미국 청년들의 상황은 더 나빠 보인다. 그는 미국의 신자유주의 체제가 청년들을 ‘일회용’으로 취급한다고 지적한다. 잠재된 성장 가능성을 키워 미래를 만들 인재의 역할을 부여하기는커녕 싸구려 노동상품으로 본다는 것이다.
자연히 소비 무능력자일 수밖에 없다. 미국 대학생들은 평균 2만4,000달러(약 2,600만원)의 부채를 지고 졸업하지만 10명 중 한 명(8.9%)은 취업을 하지 못한다. 이들을 구할 수 있는 사회보장 제도는 미국에서 악으로 취급된다. 보수주의자들은 복지를 비효율이라 공격하며 강도 높은 감세 정책을 주장한다.
취업난과 복지 논쟁이라는 세계 공통의 여건 외에 특히 미국은 급속한 경찰 국가화가 청년들을 겨냥하고 있다. 가난하기 때문에 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운 학생들이 교육 당국의 무관용 정책으로 인해 학교에서 쫓겨나고 잠재적 범죄자로 전락한다. 경찰이 학교에까지 들어와 문제아를 체포 구금하는 사례도 늘어났다. 책에 따르면 미국에서 최근 3년간 200여명의 아동이 전자총에 맞았고 그 중 5명은 사망했다.
언론은 이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취급한다. 폭스 뉴스와 우파 라디오가 최전선에 서서 자유주의 운동가와 페미니스트, 환경주의자, 가난한 유색인종에 대한 혐오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사실 진짜 폭력적인 것은 헐리우드 영화, 격투기 같은 극한 스포츠, 1980년대부터 유행한 외설 방송 ‘쇼크라디오’ 같은 것인데 말이다. 이런 매체를 소비하는 대중은 소수자와 하위 계급에 점점 공격적이 된다.
책 속 ‘미국’을 ‘한국’으로 바꿔 읽어도 무방해 보인다. 원인과 결과에 있어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저자가 심층적으로 분석한 미국의 ‘청년 문제’는 한국의 그것과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인다.
비판적 교육 이론가로 잘 알려진 미국 대표 교육학자 헨리 지루는 신자유주의를 오늘날 청년들이 맞닥뜨린 ‘불행’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사회는 청년의 정체성을 소비자로 조직하고, 그들의 모든 자율적 공간을 사실상 말소 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시장이 선호하는 가치와 욕망, 욕구를 벗어나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상실한다.” (9쪽)
저자가 청년으로부터 담론을 이끌어 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사회가 미래에 대한 책임을 꿈과 욕망, 약속의 형태로 청년에게 투사하기 때문. 책에 따르면, 이는 일종의 ‘사회 계약’이다.
지금은 더 이상 그 계약이 유효하지 않은 시대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보편적인 사회적 투자·상상력·미래를 지향했지만, 그것은 멀고 먼 추억이 되었다. 오늘날 청년은 사실상 아메리칸 드림에서 추방되었다.” (26쪽)
개인적 노력을 통한 출세의 상징, ‘개룡남(개천에서 용이 된 남자)’이 사라진 한국 사회의 현실과 매우 흡사한 풍경이다. 특히, 책은 가난한 소수계 청년이 철저하게 잉여나 일회용으로 취급받는 것에 주목했는데, 저자는 이들이 ‘사회적 죽음’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책은 후속 세대를 폐기하는 이런 사회를 비판하면서, 여전히 ‘청년 운동’이 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 청년들은 유럽에 비해 덜 저항적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실제로는 빚더미에 앉아 있고, 게다가 스펙 쌓기와 구직 활동에 여념이 없다”며 이들에게 약간의 변명거리를 준다. 물론, 여기에는 서유럽이 미국보다 더 가혹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에 동기 부여의 강도가 다르고, 또 이들이 아직 다양한 비판적 공론장에 접근할 기회가 더 많다는 이유도 있다.
헨리 지루는 학교와 가정뿐 아니라 일상의 수많은 영역에서 비판적 교육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청년들이 스스로 노동자나 소비자로 고정된 정체성을 극복하고 사적 문제를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확장 시켜야 한다는 것. 그가 이 책을 쓴 이유도 그 때문이다.
김흥순 자유기고가 gsinew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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